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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4-01-27 04:30:12, Hit : 411)
Film2.0 인터뷰


맞는 말이다.   일은 즐겁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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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의 아직도 남은 긴장

2003.11.26 / 한선희 기자  

<올드보이>의 최면에 걸려 심각하게 사랑에 빠진 네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끝없는 신뢰와 존경심, 열린 의사 소통으로 영화를 완성한 이들은 질투가 날 정도로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 <올드보이>가 남긴 신열에 아직도 들떠 있는 상기된 얼굴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지난해 11월 말, 개봉을 앞둔 <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 소녀>의 일반 시사회장.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이 함께 영화를 보러왔다. 지난해 12월 초, 여중생 압사 사건 무죄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박찬욱 감독이 삭발을 하는 자리에도 최민식이 나타났다. <취화선> 이후 두문불출했던 최민식이 박찬욱 감독과 동행하는 모습은 영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이들은 <올드보이>에 눈이 맞아 불꽃 튀는 연애를 시작했다. 최민식은 체중 감량에 나섰고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줄거리, 캐릭터, 상대역 모두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건 이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비밀 많은 영화가 기자들의 뒤통수를 강타한 지난 주.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최민식은 그간의 지독한 사랑을 고백했다. “아주 ‘징한’ 여자 만나 지지고 볶다가 나온 기분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미리 배우를 정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작업이 “처음 해봐서 그런지 재미있었다”고 한다. 최민식을 알아가면서 이전의 영화에서 미처 보여지지 않았던 멋진 매력을 불어넣은 것은 물론이다. 박감독은 대강의 줄기를 구상한 뒤 최민식에게 보여줬고, 최민식의 의견을 반영해 상황을 수정하거나 디테일을 보충해나갔다. 최민식으로 인해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오프닝 부분이다. “처음에 오대수는 지금처럼 주책맞은 인물은 아니었고, 비행기 안에서 서툰 영어로 옆에 앉은 외국인에게 말을 건넨다는 설정이 있었죠.” 그러나 최민식은 감금되기 전의 오대수를 보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경찰서에서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리는 영화 초반부의 오대수는 최민식이 내키는 대로 연기해 찍은 장면이다. “알아서 편집해 쓸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보시라고 했어요. 최선배는 ‘아니 그래도 대강은 정해줘야 하지 않아?’라며 징징거렸지만 ‘아유, 알아서 하세요’ 그랬죠.” 최민식은 배우가 감독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을 이번에 아주 풍요롭게 실현시켰다고 덧붙인다. “박찬욱 감독의 연기 지시를 불편하게 느낀 적은 없었어요. 매 컷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독선적이지 않고 설득력이 있었으니까.”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의 조화는 유지태와 강혜정의 굳은 어깨를 풀어줬다. 배우들이 무척 행복하게 작업한 것 같다고 하자, 박찬욱 감독은 농담으로 응수한다. “내가 영화는 못 만들어도 현장은 재미있거든. 왜냐? 즐겁게 할 만한 배우와 스탭을 뽑으니까.” 박찬욱과 최민식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유지태와 강혜정이라는 젊은 배우들이 작품에 더욱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유지태 역시 <올드보이>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대학원에서 박찬욱 감독의 수업을 통해 단편 <자전거 소년>을 연출했던 그는 제작 발표회 당시 “이런 멋진 영화에 캐스팅된 것만으로도 떨린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우진이라는 독특한 악인이자 조커를 연기하는 게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스물여덟 살의 배우”인 그에게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유지태는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는 극중 이우진의 억양 그대로 이렇게 말한다. “감독님이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자신감은 연기에 좋다.’ 워낙 명쾌하셨기 때문에, 감독님이 지시하면 무조건 해보려고 했고요.” <올드보이> 촬영 당시 <거울속으로>와 <내츄럴 시티>의 홍보를 함께해야 했던 그는 밀려드는 스케줄에 짜증스럽기도 했다. “한번은 최선배님이 손을 잡아주시면서 ‘네가 좋아야 우리 영화가 산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오대수의 연인 미도를 연기한 강혜정은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쟁쟁한 남자들의 철옹성에 합류했다. <나비> 이후 오랜만에 영화를 한 그는 <올드보이>에 캐스팅된 게 “백수로 지내다 갑자기 대기업에 취직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출연 분량이 없어도 촬영이 있는 날이면 늘 현장에 나가곤 했다. “가지 않으면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강혜정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실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건 단지 오랜만에 출연하는 영화라서가 아니었다. 강혜정은 자신의 부족한 영화 경험이 <올드보이>에 누가 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최대의 난제는 “오대수에게 미도가 사랑하고 싶게끔 보여져야 하는 것”이었다. 미도의 아파트 세트장 촬영 초반부 강혜정이 실수를 연발하자 박찬욱 감독은 강혜정에게 몇 마디 말을 적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먼저 공간에 익숙해지고, 인물의 감정 상태에 익숙해지라는 충고였다. “제가 평소에 술자리에서 쪽지에 뭐 써서 돌리고 그러거든요. 그게 제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셨나봐요. 그 쪽지는 코팅해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요.” 왜 아니었겠는가. 강혜정은 <올드보이>가 끝났다는 게 도저히 실감이 안 난다고 덧붙인다. “이 사람들과 헤어져서 또 다른 영화를 굶주려 해야 한다는 게 현실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올드보이>라는 주술사의 강력한 최면에 이들은 저절로 사랑에 빠졌고 뜨거운 열병을 앓았다. 지금 이들은 한국영화의 영토를 성큼 확장시킨 이 강렬한 작품을 함께 완성했다는 성취감에 짜릿해 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가 모두 마음에 든다”며 웃고 최민식은 “좋은 아이템으로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같이 만들어가는 바람직한 작업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유지태는 “<올드보이>가 멋있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하고 강혜정은 “관객들이 선입견을 갖지 말고 봐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이들 모두는 <올드보이>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사랑한 것 같다.

사진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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