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oang Choi 2nd solo exhibition
최수앙 조각展
2007_1113 ▶ 2007_1127

최수앙_The Between_레진에 유채_28×40×9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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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13_화요일_06:00pm
갤러리 LM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65-18 자스미 빌딩 지하1층
Tel. 02_3443_7475
www.gallerylm.org
한 남자가 힘없이 쓰러져있다. 그의 머리 위에서는 잎사귀가 다 떨어져나간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솟아있다. 〈The Vegetative State〉, 즉 식물인간은 사고와 성격을 지배하는 두뇌 부분에 심각한 손상의 결과이다. 식물인간은 깨어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반사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인간은 주변을 전혀 지각하지 못한다.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나 신체의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식물인간은 스스로 숨쉴 수 있으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심지어는 이를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장을 조절할 수도 없으며, 음식을 삼킬 수도 없다.

최수앙_The Vegetative State_혼합재료_120×40×20cm_2007

최수앙_The One_레진에 유채_50×50×78cm_2007

최수앙_The Entangled Couple_레진에 유채_150×120×240cm_2007
최수앙은 스컬피(sculpee)라는 재료를 사용한, 인형과 같은 작은 크기의 사실적인 인체 조각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4년 개인전과 그 외 다수 그룹전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최수앙은 현대 인간의 모습을 만화적 상상력과 풍자의 방법으로 묘사한다. 때로는 혐오스럽기도 한 그의 작은 인간상들은 자신들이 놓여있는 환경에 비해 너무나도 왜소하고 그 환경에 스스로 압도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환경을 지배하는 강한 주체가 아닌, 알 수 없는 힘에 위협받는, 부조리한 상황에 빠진 힘없고 고독한 주체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중심주의와 주체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최수앙은 작가 본인이 살고 있는 한국의 “역사와 사회 환경을 작품에서 하나의 실험 조건으로 가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 놓여있는 개인들을 “식물적 상태(Vegetative State)로 간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한국 현대 사회에서의 모순, 그 안에서 부정되는 개인의 정체성을 그의 인체조각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최수앙_The Awkward Age_레진에 유채_24×17×82cm_2007

최수앙_The Awkward Age_레진에 유채_25×24×80cm_2007

최수앙_The Noise_레진에 유채_100×100×25cm_2007
식물 인간으로부터의 회복은 뇌에 대한 손상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달라진다. 회복되더라도 영구 두뇌 손상이 남아있을 수 있다.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경우 주변인들이 내려야 하는 결정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다.
최수앙의 현대인에 대한 이러한 식물인간으로의 비유는 꽤나 잔인하다. 그의 작품은 사회에 의해 말살당한 무기력한 개인을 보여준다. 머리에서 자라는 나무, 거대한 식물이 점령한 인간의 모습은 한 순간 그 잔인함을 잊게 하는 재치를 보여주지만, 그 잔인함을 숨기지는 않는다. 아마 의사나 친지가 내려야 할 그 최후의 결정을 그는 관객에게 유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갤러리 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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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Korea
김우임 개인展
2007_1114 ▶ 2007_1127

김우임_한국인 오이 마사지_장지에 채색_162×13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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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14_수요일_05:30pm
갤러리 도스 기획전
갤러리 도스 운모하 terr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4-7
Tel. 02_735_4678
www.gallerydos.com
Welcome to Korea ● 한국인이 느끼는 한국의 일상은 오히려 특별하지 못하다. 이것은 이상에 의해 특별함을 잃어가는 우리의 일상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특별하지 못한 상황들에 월드스타 이미지를 대비시키며 특별함과 특별하지 못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한국이라는 가정의 공간은 일상이 되고 월드스타 이미지로써의 가상의 대상은 이상이 되며 ‘나의 일상을 느끼고 있는 ‘느낌의 주체’를 과연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Welcome to Korea展의 특색이다.

김우임_강경 어리굴젓_장지에 채색_32×96cm_2007

김우임_금강산 구룡폭포_장지에 채색_40×65cm_2007

김우임_한국인 먼지_장지에 채색_162×130cm_2007
일상 ● 과정이 일상이라면 결과는 이상으로 대변된다. 과정과 일상이 흘러가야 한다면 결과와 이상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은 결과에 의해 이끌려가고 결과는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삶의 모습처럼 떨어뜨려 보게 되는 떨어질 수 없음으로 일상과 이상이 표현된다. 동전의 양면성이 삶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삶에 있어 예술은 환상이다. 일상과 이상이 공존하는 삶과 동질선상에 있으면서도 이질성을 띄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런 예술 안에 이상으로 가는 일상의 모습들을 환상으로 그려낸다. 환상에만 존재하는 배경으로써의 현(玄)과 상상에만 존재하는 소재로써의 부분적 얼굴만이 이상으로 가는 일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우임_한국인 마스크 팩_장지에 채색_130×97cm_2007

김우임_한식 추천메뉴_장지에 채색_32×48cm_2007
보여짐이 아닌 보여지기 위한 일상의 모습들은 완벽하지 않다. 전체가 아닌 부분에 의한 집중이기도 하고 단체가 아닌 개인에 의한 습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면화판 안에 결과로 가기 위한 과정의 순간들을 멈춰 세웠다. 보여지기 좋은 순간들이 아닌 이어지기 좋은 순간들로 1초의 절묘함에 생동감을 가미한다. 이러한 순간들은 음악의 엇박자와도 닮아있다.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느린 매 순간순간들이 그림의 속도감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속도감이 모여 연속성을 띄게 되었을 땐 영화적 프레임과 그 성격을 같이 하나 수동적 전개 방식의 그것과는 달리 평면작업 안에서의 능동성이 오히려 특색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일상 안에 관람객의 일상이 더해져야 작품이 완벽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작품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장 대중적으로 소화하고자 함에 집중한다. 보편적인 재료를 통한 특수한 표현 양식을 생성하고 친근하고 치밀하게 다가간다. 이 모든 것 또한 동전의 양면성으로부터의 시작이다. ■ 김우임
약도 : http://cafe182.daum.net/_c21_/bbs_read?grpid=z1l7&mgrpid=&fldid=5xPi&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02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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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인 통로 Hidden Corner
정직성 회화展
2007_1107 ▶ 2007_1120
정직성_성내동-입구들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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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07_수요일_05:00pm
스페이스 아침 서울 종로구 화동
138-7번지 Tel. 02_723_1002 mooze.co.kr
골목길에서 다세대주택으로 ●
사회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면 무언가를 열심히 쌓는다. 작은 돌멩이를 정성껏 쌓은 사찰 입구의 돌탑은 종교적 내용이 담겨있으니 그렇다
치자. 2007년 우리는 어떠한가. 집을 간절히 원하다 못해 집으로 50층도 쌓고 70층도 쌓는다. 건물 층수만 쌓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쌓은
집으로 자식 유학 보내고 좋은 곳에 시집 장가보내고 노후대비까지 하는 꿈도 쌓는다. 만약, 누군가 골목길을 간절히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골목길의 꺾인 길, 그 속에 너부러지듯 편하게 앉은 집들, 집 앞에 내놓은 평상이며 화분 같은 소품거리들. 이런 것들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이 있어왔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중장비를 앞세우고 그 뒤에서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오는 철거 깡패에 분기탱천하며
돌도 던져보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볼 수도 있다.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무기력하게 방구석에서 덜덜 떨며 하느님을 찾을 수도 있다.
1990년대까지는 분명 이랬다. 골목길 속 소중한 꺼리들을 돈으로 바꾸려는 횡포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더 극렬해지지만, 이런 꺼리들을 지키려는
시도는 중요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순수하게 예술적 수단으로 항거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결과를 내놓기 시작한다. 골목길을 그리고 찍고 쓰고
녹음하고 대화하고 걸어서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 기실 이런 시도를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벌떡 일어나 시작하지는 않았으리라. 모두 몇 년씩, 십
수 년씩 혹은 수 십 년씩 골목길 속 꺼리들을 지켜야 될 간절한 이유들을 씹고 또 씹으며, 이런 꺼리들이 돈으로 바꿔치기 되는 현실을 수 없이
지켜봐 왔으리라. 투쟁일 수도 있고 감수성일 수도 있고 추억일 수도 있고 건축적 당위성일 수도 있고 문화적 명분 일수도 있고 사회적 논쟁일 수도
있다. 포기도 했을 것이고 다짐도 했을 것이고 좌절도 했을 것이고 분노도 했을 것이고 참여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아파트의 넓디넓은 투명한
유리벽 위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창도 작품거리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한편에서, 그것보다 먼저 있었던 한국 현대사의 서민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 현실의 힘이다. 기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내성적인 사람들이 참 많아서 자신들의
작업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법인데, 정직성은 용기 내어 골목길의 기록을 연작으로 발표해오고 있다. 이것이 그의 그림이 갖는 사회적 의미이다.

정직성_꺾인 통로 3_캔버스에
유채_50×130cm_2007
역사 ● 기록은 역사이다. 역사의 의미는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건물을 쌓아 그린 선례는 제법 있다. 서양의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자. 조반니 파니니는 <로마 안티카, 1755>와 <로마
모데르나, 1755>라는 두 장의 쌍둥이 그림에서 로마 유적을 쌓고 또 쌓아 화면을 꽉 채웠다. 이것을 이어받은 것은 19세기의 조셉
간디였다. 간디는 역사 속 건물들을 빼곡히 쌓아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인생의 황혼에서 바라본 어릴 적 환상과 꿈에 대한 건축적
비전, 1820>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등 개인의 기억을 역사성과 오버랩 시키고 있다. 19세기 영국 기독교 사회주의자 퓨긴은 1843년까지
자신이 설계한 고딕 풍의 성당 22채를 한 번에 모아 가톨릭이 지배하는 천국의 예루살렘(heavenly Jerusalem)을 표현했다. 이
그림은 당시 산업 자본주의에 찌들대로 찌들어 깊은 병에 걸린 영국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제시한 정신적 유토피아였다. ● 이런 선례들은 미술사에서는
신고전주의나 고딕 리바이벌 같은 역사주의로 명명되는데 그 뜻은 모두 같다. 산업기계문명이 기치를 내걸기 시작한 때부터 성공적 안착을 이룬 시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역사와 기억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완전한 반(反)문명론은 아니지만 기계문명시대에도, 아니 기계문명시대일수록 역사와
기억의 자리를 확실하게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역사와 기억 없이 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산업화의 단 독에 취한 기억상실증을
예방하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열심히 쌓아서 간절히 표현함으로써 이런 주장을 큰 목소리로 내고 있다. ● 2000년대 한국. 기억상실증은
매우 심하다. 우리의 근대사의 기록들은 철저하게 지워진다. 사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역사니 기록이니 하기 이전에 수 십 년 살아오던
터전을 지키는 당연한 권리의 문제이다. 이것을 예술가의 눈에서 보면 시대성이 담긴 해석의 대상이 된다. 정직성은 이런 작업에 동참한다. 한국의
근대사 가운데 소시민들의 일상적 생활터전을 예술적으로 기록하는 일이다. 이런 작업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정직성은 이 흐름에 중요한 변화를
가한다.

정직성_꺾인 통로 4_캔버스에
유채_50×130cm_2007
현실 ● 이전 작업들은 사실적 기록에 가까웠다. 물론 이런 사회성 짙은
주제는 사실적 기록도 강한 예술성을 띨 수 있다. 흑백 골목길 사진 속에선 어린아이가 뛰어놀고, 초저녁 골목길 어귀에 어렴풋한 가스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장면을 애잔한 수채화로 그리고, 테라코타로 만든 골목길 동네를 위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고, 울퉁불퉁한 계단이 안내하는 막다른 골목길
모습을 다다풍의 칼라 사진으로 찍어내는 작업 등은 소재가 지닌 사회적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예술성을 확보할 수 있다. ● 이제
다음 단계의 해석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전까지의 작업들에는 안타까움이 많이 남아있었다. 한국 근대사의 기록들이 무기력하게 지워져가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술적 저항이었다. 세월이 흘러 사회적으로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보다 골목길 중에도 지킬 곳과 헐 곳의 두 종류가
있다는 사회적 동의가 미미하긴 하나 조금씩 형성되어 가고 있는 점이 소중한 변화이다. 철거에서 살아남은 얼마 안 된 골목길은 아파트와는 다른
나름대로의 진화를 시작했다. 기존의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이 어우러진 새로운 질서체계가 나타난다. ● 아직은 시작 단계이다. 지금 잡힌 방향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한다. 건축가들은 침묵하고 있다. 다세대주택은 다시 한 번 이름 없는 중산층 소시민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한국
현대사가 되었다. 이렇게 막 잉태되어 자라기 시작한 새로운 사회현상에 대해 예술가들 쪽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기록하고 해석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정직성은 골목길 예술 2기 정도로 부를 수 있는 변화를 보인다. 이전의 1기와는 분명히 다른 인식이다. 다세대주택을 소재로 삼아
수직으로 강렬하게 쌓으며 화면을 온통 붉은 색으로 채운다.

정직성_꺾인 통로 5_캔버스에
유채_50×130cm_2007
형태:유형 ● 정직성의 출발은 유형(type)이다. 다세대주택을 몇 개의
유형으로 단순화시킨다. 창, 지붕, 계단이 중요한 기준이다. 창의 기준은 크기, 개수, 면적 등에 따라 한 번 세분된다. 지붕은 평지붕과
경사지붕 두 종류이다. 계단은 계단실의 형태, 방향, 꺾인 회수 등이 세부 기준이다. 이런 기준들에 따라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수 십 개의
다세대주택 유형이 만들어진다. ● 유형을 이용한 주제-변주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다세대주택의 형태성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방법론이다.
다세대주택은 철거에서 살아남은 단독주택이 스스로 진화를 시작한 결과이기 때문에 골목길 속 단독주택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주제-변주 개념이 그것이다. 정직성은 이것을 찾아내어 정리해서 출발점으로 삼았다. ● 사이버 건축에서 얘기하는
‘변형(transformation)’이라는 개념과도 유사하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증거이다. 도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도시가
기본형태(archetype)의 끊임없는 변형결과의 총합이라고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이것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멍청하기만
한 컴퓨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동일한 작업의 반복인 ‘복사(copy)' 기능인데 변형은 여기에 변수 기준을 몇 가지 더해서
활용하는 개념이다. ● 이런 작업은 서양건축가들이 자신들의 도시 및 조경 등을 가지고 먼저 시작했다. 한국 건축가들은 다시 이들이 하는 작업을
모방해서 국적 없는 대상을 열심히 변형시키고 있다. 우리 주변을 보자. 컴퓨터의 변형 기능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대상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다세대주택이다. 정직성은 이것을 붓과 물감과 캔버스라는 전통매체로 하고 있다. 매체 전환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일은
일정한 수양의 의미를 담는다. 캔버스에 두껍게 물감을 칠해놓고 그것을 수 없이 많은 선으로 긁어내 골판지처럼 만들던 화가들도 자신들의 작업을
구도에 비유했다. 기실, 사람들이 컴퓨터에 카피 기능을 넣은 이유부터가 양면적이다.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효율이라는 기능적 목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동일한 작업의 반복이 갖는 신비로운 힘을 탐하는 은밀성도 있다.

정직성_꺾인 통로 8(△◁), 10(△▷), 11(▽◁), 9(▽▷)_캔버스에 유채_각
45×45cm_2007
공간:옥외 계단 ● 다세대주택이 간직하는 단독주택의 다양성 가운데 으뜸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다. 골목길의 최대 매력은 공간이다. 골목길은 상대주의 공간의 총 집결체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다음 단계의 문명현상이라는 그 상대주의의
모범적 전형을 우리는 이미 수 십 년 동안 만들어오며 살아왔다. 골목길 속에서 집이 갖는 형태성이 살아나는 것도 사실은 공간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 골목길 공간은 수평구도이다. 다세대주택은 이런 골목길의 공간을 수직 구도로 바꿔 기억한다. 주 역할은 계단이 맡는다. 다세대주택은
말 그대로 여러 세대를 수직으로 쌓은 주거 형식이기 때문에 각 세대별에 독립성을 주기 위해 진입도 독립적 방식으로 처리한다. 한편 기존의 필지는
여전히 비정형으로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계단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 가장 큰 특징은 계단이 옥외 계단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골목길의
공간 기억을 담아내기에 더 적합하다. 아파트처럼 동선을 현관에 한 번 모은 다음 실내 계단으로 분배하는 경우 골목길의 공간구도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세대주택에서는 수직이동을 실내로 들여오지 않고 외부에서 옥외계단을 통해 끝내버린다. 이 과정에서 골목길의 상대주의 공간을 수직으로
옮길 수 있다. 같은 옥외 공간이기 때문에 이식이 용이하다. ● 다세대주택의 옥외 계단도 형태처럼 유형-변형 방식을 형성한다. 다세대주택의
계단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외로 다양하다. 골목길에서 진화한 한 몸이기 때문에 그 기억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양함의 차이는
매우 정밀하다. 이것을 찾아내어 그 뿌리를 캐고 다양함을 즐길 수 있으려면 날카로운 예술적 관찰력이 필요하다. 정직성은 그 차이를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계단은 그 자체로 일차적 공간단위가 된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유형 단위를 수직으로 쌓았기 때문에 계단은 골목길의
상대주의 공간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정직성_꺾인 통로 6, 7_캔버스에 유채_각 53×65cm_2007

정직성_성내동-연립주택 5, 6_캔버스에 유채_각
100×100cm_2007
형태-공간 ● 다세대주택의 최대 장점은 형태와 공간이 하나로 합해져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옥외계단이 갖는 비밀이기도 하다. 형태와 공간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적어도 건축에서는 그러하다. 형태 윤곽
없이 공간은 있을 수 없으며 형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공간도 그 속에 함께 만들어졌다는 말이 된다. 서양에서는 둘을
자꾸 분리하려 든다. 피라네시-에셔-콩스탕(상황주의)-마타클락-포르나세티 등은 서양미술사에서 상대주의 공간을 다룬 대표적 인물들인데 모두 형태와
공간을 분리해서 표현했다. ● 이런 차이는 동서양의 세계관의 차이이기도 하다. 이항대립의 갈등 속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찾는 서양문명에서는 안과
밖을 다른 것으로 보았다. 안은 공간이 되었고 밖은 형태가 되었다. 캔버스의 2차원 평면인 미술에서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더욱 두드러졌다.
반면 동양에서는 둘을 같은 것으로 보려는 불이(不二) 사상이 지배적이다. 불이 개념을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옥과 같이 안을 기준으로 삼아 외부공간과의 연속성을 얻어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골목길의 상대주의 공간과 다세대주택의 옥외 계단처럼 밖을
기준으로 삼아 형태와 공간 사이의 동체(同體)를 얻어내는 것이다. ● 정직성은 이런 비밀을 잘 찾아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형식을 잘 갖추었다. 진화는 형태와 형태가 만나고 형태와 공간이 만나고 공간과 공간이 만나면서 진행된다. 이쯤 되면 사실 형태와
공간을 분리해서 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제 남은 것은 진화의 끝이 어딘가 하는 문제뿐이다. 아직은 진화 중에 있다. 데리다 식으로
표현하자면 ‘진행과정 중(becoming)' 자체가 독립적 개념이다. 완결된 결과를 찾는 것 자체가 불이에 어긋난다. 그 답은 정직성이 해줄
것이다. ■ 임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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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_net Asia 2007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2007_1009 ▶ 2007_1111 / 월요일 휴관
FUJII Takehito_NAKAJO
Naohito_YOSHIMOTO Sakuji HIRAMATSU Nobuyuki_TAKAHASHI Nobuyuki_TOMINAGA
Yoshihide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전시개막_2007_1009_화요일_05:00pm관람시간 10월 평일_10:00am ~
10:00pm 11월 평일_10:00am ~ 09:00pm 10월 주말 및 공휴일_10:00am ~ 07:00pm 11월 주말
및 공휴일_10:00am ~ 06:00pm
관람료 일반_700원(단체 20인 이상 550원) 청소년_300원(단체 20인
이상 250원) 13세 미만 어린이 및 6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은 무료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Tel. 02_2124_8800 www.seoulmoa.org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City_net Asia 2007〉展이 10월 10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다. 이것은 아시아 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아시아 미술의 미래와 발전 가능성을 모색해 봄으로써, 아시아가 서구 중심의 미술에 하나의 커다란 문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격년제로 진행되는 아시아 현대미술전이다. 국내에서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아시아 무대에서 소개하고, 세계무대에 동시대
아시아 미술의 움직임을 소개하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는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있는 전시이다. 최근, 아시아의 현대미술이 국내를 비롯한 해외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소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주요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동시대 미술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대형
프로젝트는 국내외 전시를 종합해 볼 때, 〈City_net Asia〉展이 진행방식과 참여 도시 측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아시아 동시대 미술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주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전시는 그동안 상하이, 베이징, 도쿄,
오사카, 타이페이 등 아시아 주요 도시의 미술을 통해 지역적 정체성을 점검해 보고, 아시아의 작가들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왔다.

ARIMA
Kaoru_KATO Manya_OHTSUKA Yasuko SUGIYAMA Keniji_AOTA Shinya_KIMURA
Mitsunori

KAWAMI Shun_OGURI Sayako_HAYAKAWA Chikako OGAWA
Kenichi_TAKEUCHI Takakazu_HAYASHI Shigekii SATO Katsuhisa_MORIKITA
Shin
2003년, 2005년에 이어, 3회째를 맞이하는 〈City_net Asia 2007〉에는
광저우(Guangdong Museum of Art), 나고야(Aichi Prefectural Museum of Art),
싱가포르(Singapore Art Museum), 서울(Seoul Museum of Art) 등 4개 도시가 참여, 그 도시의 정체성과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점검해보고, 아시아 미술의 미래를 조망해 보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 일본의 참여도시인 나고야의 하이토(Masahiko
HAITO) 아이치 현립미술관 큐레이터는 ‘틈(Rips and seams)’이란 주제로, 도쿄(일본의 수도이자 정치경제의 요지)와
교토/오사카(제2의 경제도시이자, 전통적인 문화관광 도시) 사이에 위치해 있는 나고야의 사회, 문화, 경제적 위치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향 및 예술적 관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도쿄의 상업적 문화와 교토의 전통문화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나고야 지역은 일본문화예술의 상징적인
곳이다. 나고야 지역의 좋은 작가란 개인적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들로, 마치 미약한 빛을 받은 갈라진 틈 사이에서 자생하는 식물과 흡사하다.
이러한 나고야 지역의 작가들은 유럽과 미국미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동시대 아시아 국가들처럼 일본의 제3세계 예술에의 욕망을 꿈꾼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1960년에서 80년 사이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 20명이 제작한 작지만(사소하지만), 일상의 응축된 사물들을 pop류의 회화나
설치작품들 118점이 전시된다.

Qin
Qi, Yang Jie No.1_Xie Nanxing_Yu Hong Wang Yin_Liang Wei_Cheng
Guangfeng

Feng
Qianyu_Liu Wei_Cheng Shaoxiong_Dong Bingfeng Aniu_Wang Ningde_Zhang
Anding_Wang Jianwei
중국의 참여도시 광저우의 구어 샤오옌(Guo Xiaoyan) 광동미술관
큐레이터는 ‘도시의 생존자(Urban Survivor : Another Art Reality)’란 주제로, 중국의 도시화과정에 있어서 도시연구의
중요한 사료들을 이미지의 기록과 그림, 예술적인 텍스트들을 통해 보여준다. 도시 연구와 관련한 예술적 사례를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학적 인류학적 측면에서 가져온 실험물과 조사자료, 그리고 작가 개개인의 경험과 표현들이 어우러진 형태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것은
도시화로 야기된 중국의 사회계층, 소비사회, 윤리체계, 가족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들과 그 영향에 대해 가시적인 측면에서 집중 조명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도시 네트워크에 있어서 중국의 위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14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24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Ye
Shufang_Terence Lin Tang Ling Nah_Vincent Leow

Tan
Kai Syng_Rizman Putra Michael Lee_Jeremy Sharma
싱가폴의 전시를 기획한
조이스 팡(Joyce FAN) 싱가폴미술관 큐레이터는 싱가포르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DomestiCITY’라는 주제로 담아
보여준다. Domesticity는 가정적인 상태와 가정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주제는 싱가포르가 하나의 집이자 국가로서 가지는 의미인데,
여기에는 인종적,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도시의 특성과 더불어 참여 작가들 개개인의 정체성이 반영된다. 선정된 작품들은 급변하는 사회로
야기된 생산물이자 향수/기억이며, 누군가와 모두, 어떤 것과 모든 것과의 관계, 혹은 개인의 환상 속으로 도피하거나 이 같은 딜레마에 꾸밈없이
솔직하게 직면함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과 두려움, 욕망 등에 대한 양면성에 공감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싱가폴은 8명의 작가가 참여, 총
1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김상균_정직성_이득영 안세권_김영섭_방명주 정재호_김지은_임민욱
마지막으로,
서울의 전시는 ‘도시의 흔적(Traces in City)’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도시, 사물, 발견, 흔적, visible, invisible
등의 키워드를 가진 이 주제는 도시에 살면서 생활 주변의 일상들을 자신의 언어로 담아내고 있는 작가들을 통해 우리(도시)의 정체성을 끄집어내어
동시대의 아시아 지역 작가들과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하는 취지를 지닌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의 일상들을 담아내는 작품들은 그것의 외적, 내적
본질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 안에서 고민하고 사유하며, 꿈틀거리는 우리의 삶들을 건져 올려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사물을 의인화시키거나 은유적
기법을 통해 도시를 새로운 공간으로 재해석하기도 하고, 흔한 일상의 사물이나 풍경들을 확대 혹은 구체화시킨 이미지 안에서 새로운 발견을 통한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작품들로 ‘동시대의 작가들은 왜 도시에 주목하는가? 우리에게 도시의 존재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서울은 15명의 작가가 40여 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 이들 4개 도시 큐레이터는 각각의 지역적 이슈를 통한 정체성과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기회를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점차 아시아 지역 각 미술관의 큐레이터 및 작가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며, 그 위상을 확립해가고 있는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City_net Asia〉는 점차 다양한 도시의 미술관들과 연계하여 양적 질적
향상을 보여주고 있다. ■ 서울시립미술관

유근택_강홍구_문형민 정정주_정국택_최진기
■ 각 도시별 주제 및 참여 작가 ○ Nagoya(일본) - 틈 Rips and seams 참여
큐레이터_HAITO Masahiko(아이치 현립미술관) 참여작가_FUJII Takehito_NAKAJO Naohito_YOSHIMOTO
Sakuji_HIRAMATSU Nobuyuki_TAKAHASHI Nobuyuki_TOMINAGA Yoshihide_ARIMA Kaoru_KATO
Manya _OHTSUKA Yasuko_SUGIYAMA Keniji_AOTA Shinya_KIMURA Mitsunori_KAWAMI
Shun_OGURI Sayako_HAYAKAWA Chikako_OGAWA Kenichi_TAKEUCHI Takakazu_HAYASHU
Shigeki_SATO Katsuhisa_MORIKITA Shin
○ Guangzhou(중국) - 도시의 생존자 Urban
Survivor: Another art reality 참여 큐레이터_GUO Xiaoyan(광동미술관) 참여 작가_Liang
Wei_Qin Qi_Xie Nanxing_Yu Hong_Wang Yin_Cheng Guangfeng_Feng Qianyu_Liu
Wei_Cheng Shaoxiong_Dong Bingfeng_Aniu_Wang Ningde_ Zhang Anding_Wang
Jianwei
○ Singapore(싱가폴) - 가정생활 DomestiCITY Of places and spaces 참여
큐레이터_Joyce FAN(싱가폴미술관) 참여작가 -Ye Shufang_Terence Lin Qing Jiang_Tang Lin
Nah_Vincent Leow_Tan Kai Syng_Rizman Putra_Michael Lee_Jeremy Sharma
○
Seoul(한국) - 도시의 흔적 Traces in City 큐레이터_LEE
Eun-ju(서울시립미술관) 참여작가_정재호_임민욱_김지은_정정주_정직성_김상균_이득영_최진기_문형민_강홍구_방명주_유근택_안세권_정국택_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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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할 線(선)
송영희 개인展
2007_1107 ▶ 2007_1113
송영희_착할 線-실뜨기Ⅰ_흑,백 PVC스펀지에
바느질_198×143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학고재아트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107_수요일_05:00pm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학고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善한 線, 한 땀 한 땀
치유를 꿈꾸다. ● 새롭고 참신한 시도들로 주목 받고 있는 신예작가 송 영희 가 “착할 線” 이라는 이색적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동음 이의어인 “선(線, 善)” 이란 글자의 언어적 중의를 함축한 제목이다. ● 첫 번째 기의(記意)로서의 선 (線) 은 송영희 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작품들에 있어서 주된 조형언어를 의미한다. 선행 작품들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욕망으로 가득 찬 현대인의
형상을 얼기 설기 얽힌 선 그물을 통해 표현하고 있음에 반해, 본 전시의 첫 선을 보이게 될 최근의 작업에서는 첨단 테크놀로지라는 매체 대신,
부드럽고 탄력 있는 PVC 폼 위에 작가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새겨지는 인간적인 손 바느질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선이 등장한다.

송영희_착할 線-실뜨기Ⅲ_흑,백 PVC스펀지에
바느질_143×186cm_2007

송영희_착할 線-나비놀이_흑,백 PVC스펀지에
바느질_132×157cm_2007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기의로서의 “선(善)”은 송영희 의 본 전시작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작가가 전작들에서부터 꾸준히 다루어 왔던 주제는 소유를 향한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과 첨단 기계문명의 빠른 발전속도에 휩쓸려
자동인형처럼 소외되어 살아가고 있는 존재의 뿌리를 잃은 현대인의 모습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현대인의 부정적인 자화상은 전작의 욕망
시리즈와 유사하게 흥겨움, 화합, 조화 같은 긍정적 의미를 떠올리게 되는 아이들의 천진스런 놀이라는 소재를 통해 표현되고있다. ● 그 첫 번째
예는 실 뜨기 연작이다. 아이들의 정겨운 놀이인 실뜨기는 송영희 의 작품 속에서 화면에 중구난방으로 두서 없이 등장하는 크고 작은 여러 쌍의
손의 형상들을 통해 소통의 단절과 소외 그리고 맹목적인 분주함으로 표현되고 있거나 뒤엉킨 실타래를 움켜쥔 손의 이미지를 통해 욕망의 메타포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손을 휘감은 선은 온전하게 연결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며 끊어진 채 단절되어있다. ● 현대인의 자화상은 또한
“꼭두각시 놀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그려진다.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 인형의 움직임은 물질 만능의 현대 사회에서 오로지 욕망의
법칙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맹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한 은유이다. 꼭두각시의 공허한 움직임의형상은 서양
미술사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인 “죽음의 춤(Totentanz)” 을 연상시킨다. 욕망의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간의 모습은 생명력을 잃은
죽음의 모습일 수 밖에 없다. ● 샹들리에와 화려한 벽지로 장식되어 있지만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비좁은 공간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소녀는
놀이 중의 흥겨운 모습으로가 아닌 외부로부터 단절된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 이렇듯 욕망의 법칙에 지배당한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감은 “나비 놀이”에 등장하는 인물의 -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 히스테리컬한 비명으로 표현된다.
또한 “테이블 위 화병 속 꽃” 이라는 정물에서는 더 크고 더 화려한 것을 소유하기위한 끝없는 욕망과 그로 인해 위협받는 현대인의 실존의 위기가
테이블의 크기에 비해 과도하게 큰 화병, 그리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화병에 담기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꽃의 불안정한 형상을 통해
은유되고 있다.

송영희_착할 線-꼭두각시_흑,백 PVC스펀지에
바느질_135×160cm_2007

송영희_착할 線-포커Q_흑,백 PVC스펀지에
바느질_154×119cm_2007
이처럼 놀이라는 긍정적인 소재에 부정적인 현대인의 자화상을 중첩시키고 있는
아이러니한 방식은 기의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기표적 차원에서도 송영희 의 작품의 중요한 기조를 이룬다. 즉 주 재료인 PVC 폼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업 생산물이지만, 그 재료가 주는 부드럽고 탄력 있는 속성은 작가로 하여금 인간의 따듯한 피부를 연상케 하였고, 작가는 이 재료의
이러한 이중적 속성에 매료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이러한 인공적인 산업재료에 그려지는 현대인의 부정적 자화상은그와 상반되는 인간적인 방식인,
작가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아지는 손바느질을 통해 이미지로 형상화 된다. 이렇듯 역설에 역설을 거듭하지만 송영희 의 이번 전시작은 기존의
작품과는 달리 궁극적으로는 긍정을 향하고 있다. 즉, 기존의 작품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진 線들이 욕망의 그물로 형상화 되며 부정의 의미를
내포했다면, 이제는 線 구조가 손바느질이라는 정성이 깃든 인간적인 방식을 통해 주조되면서 그 의미 또한 새롭게 변화한다. 여기서의 線은 냉소와
고발을 넘어서,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을 한 땀 한 땀 희원하는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착한 線” 인 것이다. ● 여성 고유의
창작 방식인 손바느질은 지금껏 '고급예술"에 속하지 못하는, 격이 낮은 수공예로만 인식되며 홀대 당해왔다. 여성의 수예작품은 미술사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남성 예술가의 도안이 여성에 의해 손바느질로 수행된 경우만이 간간히 짧게 언급되는 정도이다. 이때에도 물론 관심의 대상은
도안을 고안한 남성 작가이며, 바느질을 수행한 여성은 대부분 언급되지조차 않는다. 바느질 특유의 매체적 특성이나 고유의 조형성에 대해서는 물론
주목하지 않는다. 이렇듯 오랫동안 경시되어왔던 여성 특유의 표현 매체를 송영희 는 자신의 주요 표현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부피감과 탄력성이 있는
PVC 폼과의 결합을 통해 바느질 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효과를 창조한다. 즉 만지고 싶게 하는 재료의 폭신함과 탄력성이 더욱
강조되며작품에 입체감을 선사한다. 또한 한 땀 한 땀의 정성이 배어있는 바느질이 주는 인간적인 의미들은 그 자체로서 작가의 인간성의 회복에 대한
희원을 담고 있다. 이렇듯 송영희 의 이번 전시회는 페미니즘 미술의 한 가능성을새롭게 제시하는 의미로서도 신선함과 새로움을 선사한다.

송영희_착할 線-숨바꼭질Ⅰ_흑,백 PVC스펀지, 천에
바느질_100×66cm_2007

송영희_착할 線-숨바꼭질Ⅱ_흑,백 PVC스펀지, 천에
바느질_100×65cm_2007
송영희 의 이번 전시작들은 전작인 욕망 시리즈와 같이 흑과 백이 주조를 이루는데,
몇몇 작품들에서 화려한 색상의 텍스타일 꼴라쥬와 색실을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 색채의 확장이 조심스레 시도되고 있다. 또한 간간히 바느질의 선들이
이미지의 윤곽을 아플리케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전작의 선 그물과 유사한 독립적인 선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부디 작품의
내적 필연성이 결여된, 쓸데없는 군더더기나 장식적인 요소로 전락하지 않고 조형언어의 다양한 효과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가기를 바란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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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삶의 전투를 천 송이 꽃으로 말하다
김혜연 회화展
2007_1107 ▶ 2007_1113
김혜연_의자에 앉은 여자Ⅰ(거리의 여자)_한지에
채색_149×106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혜연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학고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치열한 삶의 전투를 천
송이 꽃으로 말하다 ●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담은 김혜연의 그림 내용은 알고 보면 무척 쉽다. 하지만 이국적인 표정과 복잡한 질감은 그
단순한 내용과 상반되는데, 이는 작가의 화법이자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로 일하는 여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성장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부산하게 일하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유심히 지켜본 작가에게 이러한 시선은
붓을 손에 쥐기 한참 이전에 정해진 세계관이다. 한(恨)없는 인생을 나열한 소설이 따분하듯, 온실에서 자란 아티스트의 그림 또한 밋밋하다. 이에
반해 치열한 삶의 전투를 일찌감치 맛본 작가에게 과거란 감사하게도 평생의 그림 밑천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다는 말이 아직 소멸되지
않는 것일까?

김혜연_은반의 여왕_요철지에 채색_204×146cm_2007

김혜연_가족사진_요철지에 채색_204×146cm_2006

김혜연_화분과 소녀_요철지에
채색_147×101cm_2007
김혜연이 그림 그리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
작업하는지 보다, 그리는 즐거움 말고 무슨 다른 즐거움이 있냐고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다방면에 취미가 많은 여느 작가들과 달리 그리는 것
말고 도대체 할 게 없다는 농담 아닌 습관이 작품의 순도(純度)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순도가 빛을 내기 시작하고 있다. 작품이
팔리고 큐레이터로부터 온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대학을 다니던 시절 누구나 해봄직한 소망……. 끼니 걱정하지 않고 평생 그림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예술가의 초심(初心) 아니었던가. 대박을 터뜨려 황제 예술가로 등극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연이은 소박으로 소박하게 작업하는
꿈 말이다. 대다수의 동료들이 자의반타의반 붓을 꺾는 것에 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모든 아티스트는 헛된 노력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스스로 운이 좋기를 언제나 기도한다. 밑지지 않는 장사를 하려는 것은 예술가 이전에 인간의 피에 흐르는 본능이다. 아직까지도 ‘예술가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표현으로 주위를 혼란스럽게 하는 난센스는 이제 술자리 정도에서만 그쳐야 하지 않을까. 작가 김혜연은 비로소 이러한 아티스트의 진화
과정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대가 없는 순리가 있을까?

김혜연_미용실 풍경_요철지에 채색_73×136cm_2007

김혜연_카드를 쥔 여자_요철지에 채색_100×72cm_2007

김혜연_구두가게_요철지에 채색_100×83cm_2007
전시장
중심에서 꾸준히 노출되는 김혜연의 작품을 보는 관객은 의례 기성품과 비교하게 된다. 아티스트의 초창기 작품이 모방에 크게 휘말리지 않는 것은
관객의 뚜렷한 고발이나 가시적 소비 행태가 없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장들도 이러한 전철을 적지 않게 밟지 않았는가. 인생의
순리대로만 그림을 그려온 작가에게 다소 억울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누구의 작품을 닮았다는 꼬리표는 어쩌면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다. 그런데
작품의 오리지널 영감이 어디서 왔건 간에 그림이란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의 무의식에서 훔쳐다 쓰는 것이 아닌가? 이제 누구와 누구의 그림이 비슷한
것인가는 인터넷으로 비교하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대다. 그보다 누가 힘 있는 동네에서 힘주며 오래 작업하고 먼저 선점해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김혜연 작가에게 작품 스스로 바라보는 태도가 자신감이던 열등감이던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시시콜콜한 장단점보다 작가에게서 발견해야할 가장 큰 가치는 앞으로의 엄청난 잠재력이다.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보이는 작품 하나하나가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작품에서 나타난 내용과 형식의 응집력이다.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는 일하는 여성과 작가 자신이 언제나 한 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구를 그리던 강력한 자화상이 되는 셈이다. 알라딘 램프를 살짝 만져본 작가에게 천일야화(千一夜話)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심장에 가득 담겨 있는 새빨간 스토리들이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아 김혜연의 작품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
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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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nsion Complex - Flat & Floating
백승호 개인展
2007_1030 ▶ 2007_1110
백승호_Dimension
Complex_스틸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유아트스페이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030_화요일_05:00pm2007 유아트스페이스 젊은작가
기획공모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6번지 Tel. 02_544_8585 www.yooartspace.com
종이위에 그려진 하나의
선(線)을 보았을 때 평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 밖으로 나와 있거나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이 보일 때 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물리적인대상의 조건에 의한 다기 보다는 심리적인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는데 선이 평면의 안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종이 표면은
차단되어 쪼개져 보일 것 이고 선이 평면의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일경우에는 표면은 뒤로 밀려 원근감을 느끼게 될 것 이다. 따라서 우리의
눈은 평면위의 선을 2차원에서 분리시키고 선, 면, 색의 명도에 따라 그 깊이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착시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2차원의
공간에서 이러한 현상들은 3차원의 공간으로 착시 되어 지는 것은 물론 공간을 차별시키고 구분하면서 서로 다른 이질감을 일으키게 한다.

백승호_Object&Shadow_스틸에 채색, 라인
테입_2007

백승호_Shadow Drawing_스틸_2007

백승호_Dimension Complex_스틸_2007
2차원과
3차원의 시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백승호의 작업은 조각과 회화에서 평면과 입체라는 구조적 차이를 벗어나, 만들어지는 그림과 그려지는 조각의
종합영역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백승호는 Flat & Floating의 주제로 평면에서 혹은 떠있는 가변적 공간에서의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는데 빛에 의하거나 자연스러운 작은 움직임에 의해 그림자의 형태나 구조물의 형태는 유기적 변화를 갖는다. 보이는 각도에 따라
형태는 왜곡 되고 이에 따라 선과 선 사이의 긴장감과 깊이, 공간의 여백은 다양한 공간연출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x-ray를 보는 듯한 앙상한
선들로 결합한 와이어프레임은 그 시점과 각도에 따라 선이 중첩되고 다양한 공간을 형성함으로써 입체와 평면의 시각적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전시장
벽면에 구성된 구리선 드로잉은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시각적 경험의 토대 안에서 입체적인 깊이와 부피감을 상상할 수 있게 하며, 기둥과 대들보가
사라진 지붕의 형태만으로 탄탄한 자태로 부유하고 있는 웅장한 탑은 최소한의 선이 전체의 공간을 장악하고 전체의 커다란 부피감이 취할 수 있는
조형감각을 가능하게 한다. 표현소재의 대부분은 한옥의 지붕형태에서 오는 일관된 기하학적 곡선들로, 직선의 단단한 맺음과 부드럽게 이어주고 있는
유연한 곡선이 한국건축에서의 상징적 특징을 대표하고 있다. 공간사이로 유연하게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과 이를 연장하고 있는
탈선(digression)과 왜곡은 경직된 표현을 완화시키며 운동감과 긴장감, 물질의 특성이 갖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한옥에는 직선적이고 획일화된 현대 건축에서와는 다르게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루면서 보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비정형적인 형태를 볼 수 있는데
대칭적인 구도를 가지면서도 시점에 따라 변형적인 시각을 가능케 하는 것이 한옥의 또 하나의 특징 일 것이다.

백승호_Flat&Floating_스틸_2007

백승호_유아트스페이스 2F_2007

백승호_유아트스페이스 3F_2007
한옥의 지붕은 우리나라
건축의 대표적인 상징성을 포함한다. 백승호의 작업에서 한옥의 지붕은 가느다란 와이어 줄에 의존하기도하지만 그 중심에는 기둥과 대들보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중심이 와해 될 때 탑의 형태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분산 되고 만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그 전체를 가늠하고 상상함으로써
가느다란 선이 주는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이미지 안에서 보다 감성적인 상상력을 자아내는 것은 아닐까? ■ 신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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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美.어떤 이데올로기
데비한_신은경 사진展
2007_1101 ▶ 2007_1125
신은경_PhotoStudio-chair_디지털
프린트_79×10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트렁크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101_목요일_05:00pm
“아름다움”을 꿈꾸는
인간들의 판타지, 그것은 인간이 갖는 기본적 욕망인가 싶습니다. 서양의 美 개념에, 동양인 우리가 콤플렉스를 갖는 것, “몸의 구조”로서만이
아닌 일상의 생활미학에 까지 침투되어 진, 그 것, 우리는 ‘우리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를 잊은 지 오래인 것 만
같다. ● 데비 한이 ‘A shy Grace’, ‘Bowing Grace’, 'Tow Graces' , Walking Three Graces,
Masturbating Grace 로 몸, 몸짓, 몸의 태도들로 ‘몸의 욕망’을. 신은경은 ‘Photo Studio series’의 사진관 배경
막 그림의 美 이데올로기를 통해 현대인의 ‘신분상승 욕망’을... ● 이 두사람이 소통해 내려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 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 이 아닐까 싶다. ■ 트렁크갤러리

신은경_PhotoStudio-chair_디지털
프린트_79×100cm_2007

신은경_PhotoStudio-#01_디지털 프린트_79×100cm_2007
신은경 ● '신은경'의 사진에서는 진짜와 가짜의 상념이 일어선다...그녀의 사진에서는 진짜와 가짜가
전혀 솔기 없이 잇대어져 있음을 본다. 진짜의 사진과 가짜 의식, 진짜의 의자와 가짜의 배경 막, 진짜의 카펫과 가짜의 개, 진짜의 베르사유,
디즈니랜드와 가짜의 사진관, 진짜의 時間과 가짜의 空間. 이런 것들이 이 작은 종이 한 장 한 장에 아름답게 섞여 있음을 본다...우리 뇌신경이
허구의 픽셀을 인식하듯, 사진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어 그저 현상으로서 왕래하고 소통한다. 역사에서의 위치와 미술관에서의 위치는 그
다음이다. ■ 김우룡

데비한_A
Shy Grace_디지털 프린트_220×100cm_2007

데비한_Masterbating Grace_디지털
프린트_220×100cm_2007

데비한_Walking Three Graces_디지털 프린트_100×68cm_2007
데비한 ● ...데비한의 작업에서 '데비한'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미는 서구편향적인 예술 원칙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 보다 넓은 관점으로, 인종과 계급의 입장의 틀에서 은폐 되고 주변화 된 '타자'가 향유하는 평등의 권리를 찾는데
있다...그녀의 이러한 방법은 혼성모방(Pastiche), 모조주의(Simulationism)의 신개념예술이라 칭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예술적 미학의 독창성을 조롱하면서 또한 예술적 유희의 룰을 해체(deconstruct)하고 있기 때문이다. ■ Huang 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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