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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올리고 말리라 생각했던 음악가의 게시물. 어떤 생산물이던지 일정의 현실을 담보해얀단 의미에선, 근래의 작가들을 절대 생까지 못함이기도 하도... 쩜 많이 좋아하는 분이란^^; 저런 걸 궁합이라고할텐데 감독이 죽어버렸으니 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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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통통
도로타와 토멕에게 내가 가진 Preisner의 시디를 보여줬을때 정말 좋아했었다.
유럽 어딘가에서 취화선과 올드보이를 알고 있는 사람을 내가 만난 것처럼
그들도 그랬을까? 땅덩어리는 크고 인구도 많지만 유럽에선 아직도 가난한
나라, 석사학위를 가지고도 남의 나라 땅에 와서 명분은 그럴듯한 그러나
하층계급의 일을 하고 있었던 그들에겐 그들의 조국에 대해 알고 있는 아시아
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던 모양이다. 그들을 더 기쁘게 해주기
위해 나는 키에스롭스키와 쇼팽과 로만 폴란스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에
대해서 열심히 떠들었었다.
내가 참 좋아한 그 두사람때문에 이름 하나 발음하는데만 하세월이 걸리는
폴란드 역사책을 무식하게 읽어내기 시작했다. 강국이었던 독일과 러시아사이에
끼어서 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과 보헤미아(체코)왕국등의 등살에 시달려온,
그리고 18세기엔 러시아,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되어 유럽의 지도에서
사라졌던 폴란드의 역사는 마치 한국의 역사를 읽는 듯 했다.
처음에는 아끼는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때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동유럽 특유의 음악이 주는 애절한 느낌과 카톨릭적인 냄새가 묻어나는 뭔가
순결한 느낌이 섞여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그저 좋아하던 Preisner이 음악은
이제 커졌다 작아지고 갈라지고 찣기고 사라졌다 또 꿋꿋하게 되살아나는 그들의
역사와 뒤섞여진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크기가 계속 변하는 그러나 생명줄을
결코 놓지 않는 박동하는 심장의 이미지가 언제나 겹쳐들어온다.
십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가지색; 블루,화이트, 레드 등등에서 Krzysztof
Kieslowski와의 작업으로 명성을 얻었고, 루이 말의 데미지(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그의 작품)와 Agnieszka Holland의 유로파 유로파, 시크릿 가든 등의 작업들로도
잘 알려진 그는 영화음악가로서 부동의 위치에 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래의 음악은 1996년 키에스롭스키의 사후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그에게
Zbigniew Preisner(즈비그니에프 프라이스네흐)가 헌정한 Requiem For My
Friend(1999) 중 8번 Lacrimos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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