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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진실로.
개인의 욕망에 대해 심히 고찰하고 있는 요즘이다.
출처 : 무슨 꽃을 따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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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
행인지 불행인지 혹은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모르겠으나
번역자와 번역작품이 일대일 함수로 딱, 고정돼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작품의 번역은 어쩐지 '아니올시다'가
될 성싶은 경우 말이다. 예를 들면 [생의 한가운데]는 꼭
전혜린의 번역으로 읽어야 할 거 같고, 간디 관련 저작물은
함석헌 선생의 번역으로 읽어야 할 듯한 경우가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다시 말해 번역자의 손이 아니라 번역자의
육체를 통과했을 때라야만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 경우. 다른 건 몰라도 함석헌이라는 인물과
조우했을 때 나는 간디는 반드시 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그냥, 아무런 근거도 없이 했더랬다.
사실 함석헌은 간디를 아주 '좋아했다'. 내 생각에 그건
연애의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간디라는 인물을
선생님으로 섬기며 존경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애인처럼
떨리는 감정으로 좋아한 것이다. (걍 근거 없는 내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아주 많다. 물론 그 중 핵심은 인간이
'전체'라는 이름이 되었을 때는 반드시 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집합적 악(collective evel)'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모일 땐 모이더라도 개개인이 먼저
철저하게 도덕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에서 영감을 받은 그 사상에 입각해 간디는 총이나 꽃병을
들어서라도 사회를 확 엎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
도덕적 개인들이 사회 전체를 도덕적으로 감화시킬 때라야
진정한 변화, 진정한 혁명이 도래한다고 믿어마지 않았다.
함석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역사를 도식적으로
파악한다고 해서 유물론에 반대했다. 역사는 사랑(아가페)이
개재되어 그 힘으로 움직여온 유기체인데 그걸 단순히
대상화의 대상으로만 삼는 이상은 그것이 주창하는 방법이
'맞을' 리가 없고 결과 또한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앞서 말한 대도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개인이 먼저 되어 역사라는 유기체를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것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것이 바로
기독교 사상이었다. 기독교야말로 인류 역사에 양심과
도덕의 틀을 확고히 세운 최초의 엄격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중에서도 더욱 엄격하고 금욕적인
아버지를 선택하여 퀘이커 교도가 되었고 무교회운동을
펼쳐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더 엄격한 아버지를
자발적으로 따랐던 그는 그리하여 나중에는 중세의
신비주의 교파에 속한 수도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 외에, 사실 이게 핵심인 것 같은데, 내 생각에 저
두 사람은 또한 공통적으로 여자를 몹시 좋아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간디와 함석헌은 정념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간디는 섹스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마치 마약쟁이가 마약을 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것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면 국물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극단적인 방법까지 취했었다고 한다.
자기 나이 사십댄가 오십 대에 십대 조카딸을 옆에
눕혀놓고 '나는 이 아이한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와 같은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정말 그런 생각을 가지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함석헌 선생 또한, 흠흠,
비슷했던 듯싶다.(아 이건 정말 내 생각이다, 근거 없는,
뜬소문 같은. 잘 하면 명예훼손 같은 거에 걸릴 수 있는)
하지만 그는 간디보다 좀더 솔직한 인간이었고, 여자에
대한 정념도 좀더 '현명하게' 잘라냈던 오오 우리들의
안스러운 수도사였다.
함석헌 자서전에는 '이 사람(부인)은 내게
일부종사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고 고백한 부분이
있다. 아마도 부인이 '구식 여자'였던 게 은근 답답해서
생각이 통하는 '신식 여자' 하고 살짝 바람 피웠던 것 같다.
그 부분을 읽을 때 이유도 없이 오만 가지 '번뇌'가
살짝 스치고 지나갔던 경험이 있다. 바람을 피웠다는
것보다도 함석헌이 은근히 꼰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이럴 정도면... 근데 사람은 가진 생각이 괜찮으면
인물도 저렇게 괜찮은 법인가.
미국의 성자. 미국이 지은 원죄를 씻어내기 위해 흑인
예수가 되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백인 저격범의 총을 맞고
장렬히 순교해간 마틴 루터 킹도 가만 봤더니 저 두
사람하고 닮은 점이 참 많았다. 우선 그 또한 굉장히
정념적인 인간이었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자랐지만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흑인 중산층들이 모여사는 '흑인
로데오 거리'쯤에서 자랐다고 함) 자라 취향이
고급스러웠던 건 차치하고라도 - 그는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의 강박적 수준의 생각을 가지고 극도의
검소한 생활을 했지만 양복과 파자마만큼은 꼭 실크였다고
한다 - 그가 저격되자 기다렸다는 듯 여자와 관련된
추문이 엄청 쏟아져나왔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인 면에 있어서도 철저히 금욕적인 생활을
실천했던 그가 알고 봤더니 호텔방에서 수많은 여자들과 '추잡스런
정사'를 질펀하게 벌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거대하게 모인 군중을 이끌어야 하는 자신의 고독과 그
투쟁 때문에 군중들이 다치고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달랬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청년기를 거치면서
넘치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해 선수로서의 화려한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었고 말이다.
물론 사상적인 면으로 와도 그는 저 두 사람과 '한 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역시 소로우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간디를 숭배했으며 사회를 '도덕적(비폭력적)으로
감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 못지 않은
웅변술을 지니고 있었다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연설을
할 때 남의 연설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도용'하여 연설을
하는 게 '습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 이후 저 세 사람의 행보는 달라졌다. 간디와
킹. 두 사람은 마치 예수처럼 그 자체가 빛나는
오벨리스크가 되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저 '긴 수염
덥수룩한, 민족주의자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자신의 사상을
정치하게 수립한 쌈빡한 사상가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그저 큰사람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을 듯한' 사람으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오벨리스크는, 그것과 관련된
사람의 생애와 사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제트 중의
가제트일 뿐이 아닌가.
델리 스파이스,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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