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열렸었다는....아베돈의 회고전 리뷰다. 전시를 실제로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이 리뷰를 읽으면...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란 이상한,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베돈의 사진 스타일 자체가 커머셜 풍이라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단순한 측면뿐만이 아니라 손으로 만저질 듯한 세계관이랄까.....굉장히 명징하고 확고하게 나타나는 이미지들때문에 잘 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굉장히 다양한 대상을 피사체로 삼았음에도, 그것들에게서 나오는 칼로 자른듯한 예리한 공통분모는 정의하긴 힘들지만, 아베돈의 매력이자 한계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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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사진으로 시작해 초상사진예술의 진수를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 사진작가 리차드 에이브던(1923∼ )의 대규모 회고전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02.9.26∼2003.1.5)에서 열렸다. 시인, 미술가, 배우, 소설가,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과 자신의 가족, 근로자 등 일반인의 무표정한 얼굴을 담백하게 포착해내는 에이브던만의 작품세계를 만나본다.
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사진작가 리처드 에이브던(Richard Avedon)의 초상사진에는 그가 시로 쓰지 못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작품전 〈리처드 에이브던의 초상사진〉 전시장을 들어서서 왼쪽에 첫 번째로 걸려 있는 시인 W.H. 오든(Auden)의 모습은 에이브던 자신의 모습일지 모른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뉴욕 거리를 모자도, 머플러도 없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담담히 걸어가는 나이든 시인. 주름진 그의 얼굴과 젖은 머리카락, 휘날리는 눈보라에도 편안하게 얼굴을 들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자연의 경이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시인의 평안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1956년에 찍은 이 사진. 에이브던은 당시 33세였다. 현재 79세인 에이브던은 이 사진에 찍힌 오든의 모습이 되었다. 맨 머리와 맨 얼굴로 쏟아지는 눈 속을 산책할 수 있는 평안을 가진 흰머리의 노작가.
1947년부터 불과 몇 달 전까지 찍은 에이브던의 초상사진 180점을 모은 이 전시는 이처럼 에이브던의 또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삶과 죽음, 명예와 권세 그리고 좌절, 욕망과 인내의 한계 등 인간이 살아내는 내면의 고통이 아무런 장식 없이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작품들이다. 오든 다음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사진 역시 시인의 초상사진이다. 두 눈을 찡그린 노년의 에즈라 파운드(1958). 얼굴만 확대한 사진 한 장과 구겨진 셔츠를 어깨에 걸치고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파운드의 모습이다. 두 눈을 잔뜩 찡그려 감고 입을 움직이는 파운드는 그의 시를 낭송하고 있을지도, 절절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아니면 울거나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즈라 파운드는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라디오 방송을 한 죄로 귀국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정신이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이 사진은 그가 정신병원에서 나온 해인 1958년에 찍은 사진이다. 얼굴 곳곳에 파인 주름살과, 흩어진 흰 머리카락, 꺼칠한 수염 등이 절절한 얼굴 표정과 더불어 당시 73세인 시인의 고통을 그대로 전해 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건너편 벽에는 찰리 채플린, 마르셀 마르소, 버스터 키튼 등 당대를 풍미한 코미디언의 모습이 걸려 있다.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려 토끼 귀를 만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채플린 사진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비난받아 미국을 떠나야 했던 채플린이 망명하기 불과 며칠 전에 찍은 사진이다. 활짝 웃는 그의 얼굴과는 달리 당시 그의 상황은 코미디언으로서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에이브던의 사진전에는 시인, 미술인, 배우, 소설가, 코미디언, 예술가, 정치인, 언론인 등 당대를 풍미했던 유명인물뿐 아니라 그의 가족, 거리의 부랑자, 가정주부, 근로자 등도 포함돼 초상사진예술의 진수를 보여 주는 전시인 동시에 20세기 후반의 미국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언론으로서의 가치까지 함께 지닌 수준급 전시로 평가된다.
에이브던은 1923년 뉴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뉴욕에서 살고 있는 전형적인 뉴요커다. 10세에 조부모가 사는 맨해튼 리버사이드 아파트 위층에 거주하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를 사진으로 찍기 위해 코닥 박스 브라우니 사진기를 들고 아파트 앞에서 마냥 기다리다 결국 화재방지용 수도꼭지 앞에 서 있는 라흐마니노프를 찍었던 경험을 사진에 대한 첫 열정으로 꼽는다. 이번 전시에 관련돼 출판된 도록에서, 에이브던은 당시 처음 나온 카메라를 구입한 그의 가족의 사진 찍기에 대한 열정을 묘사하면서 얼마나 여러 마리의 개를 이웃에게 빌려 가족사진을 찍었는 지 그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사춘기에 그의 꿈은 엘리어트와 같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시창작에 관련된 강의를 듣기도 했으나 곧 포기하고 사진으로 방향을 바꿨다.
당시 잡지 《바자》의 아트 디렉터였던 알렉세이 보로도비치를 만나 《바자》에 취직, 첫 일거리로 패션쇼를 찍었는데 과거와는 다른 혁신적인 패션사진으로 일약 주목받기 시작했다. 에이브던은 197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1947년부터 1977년까지 찍은 패션사진을 모은 전시를 연 바 있으며, 패션사진작가로서 그의 모습은 당시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가 주연한 뮤지컬영화 〈퍼니 페이스(Funny Face)〉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성공으로 20대부터 명성을 누려온 패션사진작가 에이브던은 화려한 패션사진과는 정반대의 단순한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무런 장식물 없이 흰색을 배경으로 인물의 정면, 대부분은 얼굴만 클로즈업해 찍는 흑백사진으로 자신의 예술적 의지를 마음대로 표출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이러한 에이브던의 인물사진만 모은 것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패션사진과는 달리 단순하기 그지없다.
앞서 언급한 시인 오든과 1947년 이탈리아 시실리의 한 거리에서 찍은 소년의 사진 두 장 이외에는 모든 사진에 흰색 이외의 배경이 없다. 모든 인물이 정면을 보고 있으며 극히 몇 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감정도 나타내지 않는다. 모두 얼어붙은 듯 심각한 표정은 에이브던의 초상사진이 갖는 한결같은 특성이다. 그의 인물사진은 찍힌 자의 초상이 아니라 에이브던의 초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에이브던의 단순한 초상사진에 대해 이 전시의 큐레이터인마리아 함버그 씨는 1960년대에 나타난 미국 미니멀리즘의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초점을 잃은 듯한 눈빛으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허탈하게 앉아 있는 마릴린 먼로의 초상. 반짝이는 드레스, 진한 화장과 잘 손질한 머리 등 완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먼로는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다. 이 사진은 에이브던의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랫동안 노래하고 춤추던 먼로가 작업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후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찍힌 사진이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만족감이나 힘들게 일한 후의 달콤한 휴식의 표정이 아닌 허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먼로를 본 순간 에이브던은 그때까지 찍은 사진을 모두 버리고 마지막 이 순간의 이미지를 선택한 것이다.
새무얼 베케트의 전신사진 두 장 역시 드물게 대상의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다. 두 손을 낡은 트위드재킷 속에 넣고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다 곧 얼굴을 떨어뜨리는 베케트. 이처럼 두 장의 사진이 마치 연속된 이미지처럼 보인다. 바짝 마른 몸매에 까만 머리카락이 한쪽에만 붓자국처럼 남아 있는 흰머리가 하늘로 솟고 주름이 깊게 파인 이마와 꾹 다문 입이 심각한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베케트. 에이브던은 공개적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꺼려한 은둔자 베케트가 사진을 찍으러 나와 “이 일이 나에게는 매우 고통스럽다”고 말하자 몇 컷을 찍은 후 포기했다고 밝힌다. 베케트의 고통스러워하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 도저히 계속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프랜시스 베이컨은 ‘너무나 완벽한 사진대상’이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죽바지에 셔츠, 재킷을 걸친 차림으로 나타난 베이컨과 에이브던은 사진을 찍기 전 나눈 몇 마디에서부터 의기가 통했고 에이브던은 베이컨이 재킷을 벗고 자신의 스웨터를 입게 한 후 몇 가지 표정과 손 제스처를 요구했다. 베이컨은 이런 상황에서도 특유의 표정과 모습을 전혀 잃지 않았으며 짧은 시간에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인들의 집합처였으며 ‘팩토리’로 불렸던 앤디 워홀의 작업실에 모여들었던 일단의 젊은 예술인들을 찍은 그룹사진 〈앤디 워홀과 팩토리 멤버들〉(1969)은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세트를 준비하고 캐스팅을 하고 이야기를 꾸미는 등 무려 18개월에 걸쳐 만든 작품이다. 실물 크기의 이미지와 31피트 길이로 전시장 한쪽 벽을 다 차지한 이 대형 작품은 에이브던을 단순한 패션사진작가가 아닌 사진예술인으로 평가받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이다. 앤디 워홀을 비롯 11명이 찍힌 이 작품은 5명의 남성이 나체로 무표정하게 정면을 바라본다. 나체로 등장하는 남성 중 한 명은 긴머리에 화장을 한 여성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몸은 남자이며 한 여성은 한쪽 젖가슴을 완전히 노출하고 있다. 그들의 발 밑에는 벗어놓은 옷들이 널려 있으며 한 남자는 방금 벗은 듯한 바지를 들고 있다. 인물들의 이미지를 네 그룹으로 나누어 일렬로 늘어놓은 구성, 눈을 크게 뜨고 아무런 표정 없이 정면을 직시하는 등장인물들의 무심함, 아무런 설명도 해줄 수 없으며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흰 배경에 그대로 드러난 나체, 그리고 그 나체와 옷을 입은 사람들과의 대조감, 앤디 워홀과 그의 친구들, ‘팩토리’ 가 갖고 있는 도전적, 부정적, 창조적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곁들여진다. 팩토리가 가지고 있는 미술사적, 사회사적 위치에 에이브던의 예술관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작품이다.
에이브던은 정치적 상황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른 두 개의 대형 작품은 1969년 베트남전쟁에 반대한 반전운동그룹 ‘시카코 세븐’ 멤버 7명을 찍은 사진과 베트남전쟁에 파견되었던 정부관리와 군사전문가로 구성된 ‘사절단’을 1971년 베트남 미대사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두 작품도 한 방에서 서로 마주보게끔 걸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실감 나게 드러나도록 배려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부각하고 있다.
검은머리를 흩날리며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콘트랄토 가수 마리안 앤더슨. 얼굴을 한쪽에 놓고 옆으로 흩날리는 검은머리를 강조한 이 사진은 1955년에 찍은 것으로 1950년대에 만연했던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 의식이 고조되던 당시의 상황을 암시하는 동시에 흑인을 상징하는 앤더슨의 이미지를 통해 흑인들에게 잠재된 힘과 저항의식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말없이 보여 주는 수작이다. 이 사진 맞은편 벽에는 〈미국 애국부인단(DAR, Daughters of American Revolution)〉이 걸려 있다. 독립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딸들이 모인 이 협회의 회원들이 성장하고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다. 이 단체는 1930년대 마리안 앤더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공연을 거부했다. 당시 대통령 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이에 격분, 이 단체에서 탈퇴하고 앤더슨이 링컨 메모리얼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20세기 미국 역사의 기록물
워홀의 ‘팩토리’ 사진 맞은편 벽에 걸려 눈물어린 눈으로 ‘팩토리’ 사진 속의 인물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흑인노예 윌리엄 캐츠비의 사진(1963)도 잊을 수 없는 이미지다. 캐츠비는 노예의 자식으로 한평생을 노예로 살아온 노인. 같은 나라, 같은 시대인 1960년대에 찍힌 사진인데도 워홀과 그 친구들이 공유했던 사회적, 개인적 상황과 이 노예의 상황은 말이 필요없을 만큼 완벽하게 다른 것이었다. 에이브던은 1969년 손으로 잡고 렌즈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는 정사각형 사진기 롤라이플랙스 카메라에서 8×10인치의 디어돌프카메라로 바꾸어 쓰기 시작했다. 이 카메라는 삼각대를 받쳐 놓고 찍을 수 있었으므로 사진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에이브던 자신이 직접 바라볼 수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1969년 이후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소 긴장을 풀고 편안해진 것은 사진찍기 방법의 변화에 기인한다.
인물사진은 대부분 에이브던이 개인적으로 아무런 보수를 받지 않고 찍은 작품들이다. 그의 인물사진에 대한 평이 높아지면서 잡지에서도 그의 인물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76년 롤링 스턴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가족〉과 1979년 텍사스의 아몬 카터미술관의 요청으로 찍은 미국 서부에서 사는 미국인들의 사진이 그것이다. 〈가족〉은 당시의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 정계, 언론계를 주도하는 인물 70명을 찍었다. 미국 서부인들 시리즈는 유명인만을 찍던 에이브던이 처음으로 농장근로자, 부랑자, 노동자 등 시골사람들과 소외된 계층을 기록한 것이다. 온몸에 벌이 붙어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로날드 휘셔, 벌관리자〉(1981)는 이 시리즈 중 하나. 에이브던의 초상사진의 기조를 이루는 무표정한 인물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의 사진 중 유일하게 유머를 담고 있다.
세 개의 큰 전시장 중 한 곳에 조그만 방을 따로 마련, 전시하고 있는 에이브던 아버지의 초상사진 시리즈는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의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죽어 가는 노인의 절망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전시장의 마지막 방에는 예외적으로 큰 방 전체에 두 개의 작품만을 걸었다. 지난 5월에 찍은 작가 자신의 모습과 지난해에 찍은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의 초상사진이다. 긴 책상과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 이 커다란 빈방은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친 자들에게 주는 편안한 휴식 공간처럼 느껴진다. 180점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삶이 뿜어내는 강렬한 감정으로부터 순간적으로 놓여나는 것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하는 헤럴드 블룸의 대형 사진은 60여 년에 걸친 이 인물들의 삶을 반추하는 듯하다.
이처럼 에이브던의 작품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로 인물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인생의 허구를 용납하지 않는 강력한 힘으로 관객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전시는 에이브던이 1975년 말보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을 모두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 동안 에이브던은 인물사진을 모두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가 최근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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