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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일단 감독에 대해 몇 마디 해보자.
가장 추잡하고 저속하며 무례한 영화들을 만든 감독은 누구일까? 역사상 가장 ‘역겨운’ 영화 중 하나이자 컬트 무비의 고전인 [핑크 플라밍고]로 악명 높은, 쓰레기의 황제, 악 취미의 남작! 존 워터스가 아닌가.
강간, 동성애, 복장도착, 신성 모독, 인육 먹기, 불결물 애호증 같은 악취미로 가득한 그의 영화들은 마치 충격 요법 종합전시장 같다. 사정이 그러하니 '정상적' 관객들이 욕지기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반응인 것을, 워터스는 그것을 일종의 기립박수로 보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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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Pecker)를 보고 있으면, 그의 반역적 극단주의에도 세월의 풍화 작용을 겪은 듯한데, 70년대 그가 보여 주었던 위악적 태도와 비교하면, [포토그래퍼]는 매우 온건하고 심지어 따뜻한 느낌조차 주며, 매우 절제된 작품에 속한다 물론, 여전히 천박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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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 아는 것을, 가장 잘 찍을 수 있다.
영화는, 사진에 미친 주인공의 사진 찍기를 보여줌으로 시작된다. 펙커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피사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광이다. 그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피사체들은 가히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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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털을 미는 버스 안 여자 승객, 흘레를 붙는 쥐들, 게이바 댄서들, 버스 안의 구멍난 스타킹을 신은 여인, 못생기고 뚱뚱한 불만 투성이 길거리 여인, 술집의 남성 스트리퍼, 불법 매춘현장의 창녀, 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계란 노른자, 샌드위치 가게의 손님, 강박신경증을 지닌 여자친구 샐리, 복화술로 마리아의 기적을 믿고 있는 할머니,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일을 일삼는 친한 친구 매트, 설탕 중독에 빠져 있는 여동생 크리시, 게이 스트립바에서 사회를 보는 누나 티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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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나 같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족들을 중심으로 자신을 둘러싼 평범한 하층 이웃들을 연출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평등하게 사진 속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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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카메라는 너무 작고 낡았으며, 사진 찍는 펙커의 태도는 진지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일하는 음식점에 작은 전시회를 열었을 때, 흑백의 사진 속에 담긴 피사체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다.
한마디로 아름다운 사진들이다. 필자는 늘 공언해왔다. 좋은 장비가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그래왔던 내 자신이 뒷통수를 맞은 거 같아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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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한가? 촬영이라도 나갈라 치면 어디든 근사한 풍경을 찾아 여행이라도 떠나야 한다. 영화 속 펙커의 엄마가 ‘이런 사진이나 찍지 말고 풍경 사진 같은 것을 찍어라’고 했던 것과 별 다를 것 없는 수준으로... 늘 아름답고 고상하고 근사하고 누가 봐도 감탄할만한 그런 풍경들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우리 주변의 소소한 풍경들은 놓쳐 버리는건 아닌지... 그런 생각에 다시금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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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찍힐 것이라면 환하게 웃어주자.
영화 초반, 폴 에반스의 노래 Happy Go Lucky Me에 맞춰 펙커의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경쾌해진다. 물론, 그의 카메라는 엄마의 중고 가게에서 얻은 낡고 싸구려에 불과하다. 게다가 에드워드 폴롱의 사진 찍는 연기는 어딘가 모르게 먼가 어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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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누르고, 또 카메라가 흔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미친 펙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그를 대하는 피사체의 반응 때문일 것이다.
피사체들은 펙커가 언젠가 자신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댈 줄 알았다는 듯한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지어준다. 자신의 모습을 아무런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쑥쓰러움이나 불쾌함 같은 건 없다. (물론, 소수의 사람은 불쾌함을 나타내기도 했으나 그녀 역시 가운데 손가락을 살포시 들어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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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러한가! 촬영을 다니다가 왜? 허락 없이 찍느냐구 욕 먹은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허락 없이 누군가가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있을 때의 불쾌감을 겪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단코 영화 속 사람들처럼 렌즈에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특히 사진 찍히기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나, 사진을 배우고 난 후부터 찍히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어차피 찍힐 것이라면 환하게 웃어 주는게 최종적으로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쨋든,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부러웠던건 이런 피사체들의 적극적인 반응이였다. 제발 날 찍어 줍쇼~ 현실도 그리하였으면 지금쯤 모든 사람들이 프로 사진작가가 되었으리라... 머,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머... 그렇다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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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펙커의 인생역전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서 자신이 일하는 식당 구석에 전시회를 열게 된 펙커는 우연히 큐레이터 로리의 소개로 뉴욕 맨하탄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고, 호평과 함께 뉴욕의 인텔리 계층에게 사진을 팔기도 하는 등 성공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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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와 명성은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 그의 갑작스러운 명성은 자신의 삶은 물론, 사진 속의 모델들인 애인, 가족, 친구, 이웃들의 보통의 삶까지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모두들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고, 더 이상 피사체는 호의적 역할을 거부하기에 이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펙커는 인기에 매몰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겉으로만 고상한 척하는 (뉴욕으로 대변되는) 주류문화에 대해 날카로운 한방을 먹인다 (사실, 뉴욕의 인텔리들은 펙커의 자연스런 삶을 망가뜨리는 이들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속물들도 마지막 장면에서 스트랩 댄서들과 같이 어울려 춤을 추는 '천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뉴욕보다 더 신나는군!'하고 소리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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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괴상한 주변 등장 인물들은 기발하고 생기 발랄한 반면, 터미네이터 키드인 에드워드 펄롱이 맡은 펙커 역은 부드럽고 온화한 캐릭터로 일관하고 있어 상당히 밋밋한 편이다.
하지만, 펙커의 캐릭터에 강한 매력을 느낀 때를 꼽으라면 다름 아닌 뉴욕 맨하탄의 한 갤러리에서 자신의 전시회를 열고 있는 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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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호스처럼 한순간에 세상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젊은 예술가의 호기나 거들먹거림 같은 건 찾아 볼 수가 없다.그는 그 순간에도 피사체를 향해 낡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미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긴, 그런 광기 때문에, 로리가 선물한 니콘 카메라의 자동 초점 맞추기에 당황하는 모습까지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겠지. 물론, 결국 그 카메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지만... (이 순간, ‘버티칼 리미트’에서 니콘 F5 박살 난 이후, 한번 안타까움의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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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워터스 감독의 괴짜 낙천주의가 펙커를 통해 중요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연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 비록 남들은 괴상하다고 여길지라도 다름 아닌 그것이 나의 삶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식의 애착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백지영 (skysind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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