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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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6-06-04 17:00:20, Hit : 696)
전시 6.7



정창기 사진전 < G U G U >

■ 전 시 제 목: 정창기 사진전 < G U G U >
■ 전 시 일 정: 2006년 6월7일~ 2006년 6월 20일
■ 전시 오프닝: 2006년 6월 7일 오후 6시
■ 전 시 장 소: 사진전문 갤러리 “gallery NoW ”



지난 4월 5일 인사동에 새로 문을 연 사진전문 갤러리“gallery NoW"에서 중견 사진가 정창기의 작품으로 초여름의 문을 연다. 깔끔하게 젤라틴 실버에 프린트된 인물 사진, 덕소 작업실에서 그가 먹은 또는 먹을 낯익은 먹거리들(콩나물,옥수수,가지,양파.버섯,메추리알 등)과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은 부드럽고 순도 높은 플래티넘 프린트로, 작업실 주변에 철마나 지천으로 핀 야생화들은 꽃꽂이라는 조형적 세례 없이 제 모습 그대도 화병에 담겨 부드러운 네거티브 컬러에 옮겨질 때, 자연이 주는 굴절 없는 미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의 대화에서 얻은 결과였고 최소한의 역할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려는, 찍는 자의 오랜 관찰과 사색의 결과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가 키우고 있는 한 마리 흰 비둘기를 찍어 내보인다. 마치 미국 사진가 웨그먼이 찍은 그의 애완견‘만 레이’처럼 흰 비둘기‘비순’이가 여섯 번 째 개인전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 축은‘비순’이 만나는 공간들이다.
웨그먼의 사진이 우리의 관심을‘만 레이’에게 집중하도록 단순한 배경을 사용 한 것을 기억 한다면 정창기가 선택한 배경은 복잡하다. 폐교된 시골의 한 초등학교의 교실이 이 사진들의 배경이 된 무대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 낡고 복잡한 공간들이 첫 주제인 미(迷)의 지표(指標)로 드러난다. 폐교의 낡은 배경들은 복잡한 삶의 미궁(迷宮) 같은 장치로 설정된 것이다. 마치 다이달로스가 만든 크레타 섬의 미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제가 만든 미궁에 갇힐 줄 몰랐던 다이달로스처럼 우리 역시 삶이란 미궁으로부터 빠져 나올 줄을 들고 삶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니다.





그 미궁의 풍경이, 사진가가 인식한 삶이, 복잡한 배경으로 드러난 것이다. 삶에 대한 이 불온한 인식(?)의 풍경이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찾은 미시적이고 서정적 풍경으로부터 과감한 일탈을 꿈꾸는 현장인 셈이다. 그러면 흰 비둘기‘비순’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진가는‘구(救)’라는 한 글자로 정리 한다. 난수표와 같은 삶의 복잡함을 받아들이고, 그러나 그 세계 속에는 어둠뿐만 아니라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싱싱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흰 비둘기 한 마리로 말하고 싶었으리라. 다이달로스가 밀납 날개를 달고 미궁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듯 정창기 또한‘비순’을 통하여 미(迷)로부터 구(救) 비상하고 싶었던 꿈이 아니었을까? 이 사진전은 결국‘미’와 ‘구’의 마주침의 현장과 그곳을 통해서‘구’로 가고 싶은 소망을 이미지의 메타포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탈출은 삶을 통찰하는 중용의 도를 통하지 않는다면 이카로스와 같은 운명에 처하리라.    
최건수(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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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lated from the Territory, 맨홀위에서 사진찍는 남자를 바라보는 빨간 핸드백을 든 여자,
Digital lambda print on Metalic silver paper, 288×360cm, 2005


Isolated from the Territory, 전화통화 후 한참을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는 줄무늬 티셔츠의 남자,
Digital lambda print on Metalic silver paper, 288×360cm, 2005


Isolated from the Territory, 도넛츠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여자,
Digital lambda print on Metalic silver paper, 288×360cm, 2005

전시장소:대안공간 풀(02-396-4805)


전시기간:2006-06-02 ~ 2006-06-30
초대일시:2006-06-02 오후 6시

전시서문

대안공간 풀에서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을 위해 마련한 < 새로운 작가 >는 일체의 제한없이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발하여 창작지원금, 장소, 홍보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2005년 공모를 통해 3명의 작가를 선정했으며 2006년 두 번째 < 새로운 작가 >로 권순관을 초대하였습니다.

권순관은 거대하고 정교한 조감도와 같지만, 평면적이고 초현실적인 사진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권력의 구조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도시의 ‘일상성’을 표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미시적이고 개인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일상성’의 외연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작업이 보여지는 크기와 정밀함, 보여지는 풍경과 내러티브를 갖는 제목, 사실성과 초현실성, 미시성과 거시성, (상대적으로)거대한 건물과 작은 사람 등의 관습적 인식을 가로지른다. 따라서, 권순관의 작업은 대부분 젊은 작가들의 ‘쇄말리즘’적 접근에 의한 도시의 ‘일상성’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일상, 세계와 개인에 관해 ‘줌인’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위해 ‘넓게’ 인식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글 / 대안공간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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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관
2005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 과정 매체미술 전공 졸업(M.F.A)
2003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순수(예술)사진 전공 졸업(B.F.A)
1999 백제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개인전
2001 A와 관계하다(Have a relations to A~), 서신갤러리, 전주
2000 응시(The Gaze), 워커힐 미술관(현 아트센터 나비), 서울

단체전

2006 대안공간 풀 기금마련전, 대안공간 풀, 서울
천년의 숨결, 강진-,유네스코 집행위원회 본부- Salle des pas perdus, 파리, 프랑스
Open_Source, Gallery 175, 서울
2005 숙소동 아뜰리에 2005-Open Studio,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
Tipping the balance,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2005(APAP2005), Permanant Art Work, 안양
아트 밸리, 안양
17 by 17, 토탈 미술관, 서울
2005, 청계천을 거닐다-Visible or invisible,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Viewpoint, 서신갤러리, 전주
2004 숙소동 아뜰리에-Open studio,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
Magazine, Gallery 175, 서울
2003 젊은 시각 그 이후, 한국 소리문화의 전당, 전주
2001 그 사람의 냄새, 갤러리 다임, 서울
Beyond Documentary, 백암미술관-백제예술대학, 전주

작품소장
아라리오 갤러리 컬렉션
안양공공 예술 프로젝트 2005 -안양 아트 파크에 작품 영구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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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의 선과 감성적 색채의 조각

변숙경 조각展

2006_0603 ▶ 2006_0612



변숙경_7226 W06-Ⅲ_브론즈_6×38×111cm_2006




초대일시_2006_0603_토요일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28






틈새의 선과 감성적 색채의 조각 ● 변숙경의 야심적이면서도 조심스러운, 그리고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에는 작가 자신의 내밀한 감성의 세계를 객관화하고, 미니멀 아트를 대체할 조각사의 가능성을 검증 받고자 하는 옹골찬 기개가 우러나온다. ● 전시장의 공간에는 단순수조를 표방한 조각전의 형식을 빌되 설치의 미학과 회화적 디스플레이가 도입될 예정이다. 대형 철조 작품이 압도적으로 공간을 장악하면서 벽면에는 회화적 부조, 혹은 부조적 회화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걸릴 것이다. 그리하여 전시 작품들은 대작과 소품이 설치미술에서 발견될 수 있는 장력의 균형 및 조각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의 평화로운 공존을 통해 완결된 분위기로 이끌 것이다. ● 야심적이라는 느낌은 먼저 엄청난 규모에서 온다. 거대한 철판들이 용접된 8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조형은 기중기로 운반, 설치해야 하는 규모지만 전시장의 사정 때문에 축소된 결과일 뿐, 여건이 허락한다면 크기와 두께의 제한이 어찌 있으랴 하는 야심만만한 의지의 편린을 보여주는 작은 단서에 불과하다. ● 그렇게 여건에 적응하면서도 작품은 의연 철판의 두께에서 오는 중후함과 동시에 날렵한 선을 살리고 싶다는 원래의 의도를 조심스럽게 펼쳐나간다. 작업장에서 보이는 두 개의 닮은 꼴 조형은 이 조심스러움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처음 작업은 두 개의 철판을 붙여 중후함을 표현하려 했지만 날렵한 선을 구현할 수 없다고 판단, 상대적으로 두껍지 않은 철판을 도입했다. ● 그리하여 날렵한 선을 우선적으로 구현하면서 철판 자체에 내재한 중후함이라는 속성이 선의 의미를 증폭하도록 구성되었다. 대작을 통하여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고, 재료와 질료의 저항력을 극복하여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내련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조심스런 접근방식에 의해 보다 증폭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야심적이면서도 조심스럽다는 표현이 가능하게 된다.




변숙경_7533 W06-Ⅰ_브론즈_6×37×110cm_2006


이렇게 대작을 지향하는 이유로 작가는 형태에서 오는 느낌을 든다. 큰 작업은 거대한 괴체감, 양감을 준다. 그러나 거대한 느낌을 위해 거대한 괴체를 쓴다는 것이 아니라 큰 덩어리 사이의 날렵한 선을 살리기 위해서 면이 동원된다는 데에 변숙경 조각의 섬세한 감성이 있다. 이런 자세는 제3자에게는 야심으로 보여질 수 있겠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단순히 표현의 동기와 과정이라는 데서 역설적으로 그 야심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될 만 하다. ● 그리고 대담하면서도 섬세하다는 것은 대조적인 관념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잘 조화되는 것이 변숙경의 조각세계라는 인상을 받는다. 대담하다는 것은 물리적인 크기에서 오는 인상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거침없이 재료를 선택하고 조형화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 대담한 인상을 주는 첫 번째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철조는 변숙경에게는 손쉬운 조형행위이다. 직조, 즉 중간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조각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잘라서, 바로 용접하고, 바로 형태가 나오니 그 느낌이 바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쉽다고 했다. ● 그러나 그것이 손쉽다고 할 수 있을까. 엄청난 무게와 배타적인 공간점유의 속성을 지닌 철은 기중기 등의 운반수단이 필요할 뿐 아니라 플라스마 절단, 용접, 그라인딩, 절곡 등 무겁고 까다로운 공정을 자유자재로 소화할 수 있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철조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담대한 선택, 혹은 담대한 행위가 된다. ● 또한 강렬한 색깔과 문명사적인 비중에도 불구하고 부식되기 쉬운 속성을 지닌다. 조각가가 선택하는 철판의 색이란 사실 철의 색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방청기능이 부여된 기능적인 색이다. 다시 철판은 습기와 결합하여 원래의 색, 즉 붉은 산화철로 환원한다. ● 철의 환원이란 자연스런 자연현상이로되 조각이나 건축에서는, 특히 소장가나 건축주에게는 결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식적으로, 통념적으로 조각과 건축을 대하는 자세가 아닌 어떤 담대한 기개가 있어야 철판은 철판으로서 조형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변숙경_8162 W06-Ⅴ_브론즈_4×52×70cm_2006


오늘날 철기시대의 전성기에서 플라스틱이나 실리콘의 시대로 접어든다고 하지만 인류 문명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철이었다. 그러므로 철이란 단순히 소재가 아니라 인류문명의 대명사라 할 수 있으니, 그 선택 자체가 바로 문명 속의 예술이라는 대전제를 담대하게 수용하는 작가의 의식을 말해준다. ● 그러면서도 섬세하다는 것은 먼저, 소재의 감성적인 선택에서 온다. 벽에 걸리는 회화적 부조 혹은 부조적 회화에서, 언뜻 보아 깨진 얼음이나 갈라진 판유리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조형은 사실은 면적인 이미지에서가 아니라, 생활주변의 선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재는 거미줄에서 왔다. 작업장 주변의 벽과 벽 사이 틈새를 연결하는 거미줄을 사진 찍어 그 내재율을 선으로 도상화하고 이윽고 입체조형으로 만들어졌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일 작품에서의 선이란 그러므로 내밀한 작가의 발견이자, 신념이다. 그리하여 결과로서의 궤적이 선으로 보일망정 그것은 면과 면 사이의 틈새이면서 오히려 면보다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조각의 기본 조형요소라 할 수 있는 면이라는 공식을 뛰어넘어 변숙경은 회화적인 선, 나아가 조각에서의 선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도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 선뿐만 아니라, 브론즈 작업에서의 색채 역시 생활주변에서 가져왔다. 작업실 주변의 계절에 따른 풍광의 변화는 브론즈에서 화공약품처리, 열처리, 샌딩, 그라인딩, 왁싱 등의 섬세한 가공과 마무리를 통해 색채조형으로 탈바꿈한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물리적이고 단순노역에 준 하는 과정이지만, 그 작업의 이면에는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하고 그 봄을 작품 속에 담고자 하는 매우 감성적인 동기가 자리잡고 있다. ●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들을 ‘새벽일기’라는 제목으로 부른다. 2004년 개인전의 테마에 고심하던 새벽, 이슬 맞은 거미줄에서 느꼈던 환희, 밤을 지새며 고민하고 스케치하고 모형을 만들면서 새벽을 맞고, 그 새벽이 정리가 되는 시간으로 각인 되면서 작품의 제목에는 새벽에 발견했던 거미줄과 작품의 완결을 예고하는 시간으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변숙경_8360 W06-Ⅱ_브론즈_6×10.8×180cm_2006


거미줄의 테마는 변숙경이 지향하는 조심스러움, 또는 절제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사진을 찍을 때 거미줄을 보이게 해주었던 이슬과 그 이슬들이 결집하여 만드는 이슬방울 등은 작품의 테마를 위한 동기가 되었을망정 재현되지 아니한다. 거미줄이라는 공간 속의 평면구조 역시 철판과 동판에서 형상으로 나타나지 아니한다. 이들이 극도로 절제되어 나타난 결과는 틈새의 선, 입체화한 선, 회화의 형태로 나타난 선이다. ● 그러므로 틈새를 연결하는 섬세한 미학, 거미줄에서 비롯하는 섬세한 감성적 조형, 그리고 계절의 느낌이 색채로 치환되는 섬세한 심성 등이 거대 조형을 지향하는 작가의 대담한 야심과 잘 조화되어 전시장 자체를 하나의 섬세한 조형예술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생활자체가 예술이고, 조형이고, 결과로서의 작품이라는 등식을 가능하게 한다. ● 이 틈새의 미학은 비단 벽에 걸리는 회화적인 조각에서 뿐 아니라 철조의 대작에서도 발견된다. 거대한 철판과 철판은 선의 의미를 증폭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용접된다. 그 간격이 틈새요, 그리고 틈새는 선이 된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처럼 거대한 철판의 조형, 잘 연마되고 색이 입혀진 동판의 사이에서 무용의 용처럼 기능 하게 된다. 무용의 용이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써,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이 실제로 쓸모가 있다는 사상이다. ● 그렇게 선은 감성적인 발견에서 비롯하여 작품의 숨통을 틔어주고, 조각사 혹은 미술사적 성취를 가늠하게 하는 잣대가 되어준다. 미술사에서 미니멀 아트는 변숙경 작품이 설 수 있는 발판이 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 미학은 사뭇 다르다. 변숙경의 조형은 미니멀 아트와 그 후속세대에서 발견될 수 없었던 조형적 성취를 보여준다.




변숙경_8764 W06-Ⅱ_브론즈_7×56.8×56cm_2006


미니멀 아트는 기본구조를 내세운다. 예술에 있어서도 기하학에서처럼, 또는 언어학처럼 단순화한, 기본구조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기하학에서는 삼각형, 사각형, 원이나 나아가서는 입방체, 공 등의 기본도형이 있고, 언어학에서는 알파벳, 가나, 가나다라 혹은 음절, 음소, 음운 등의 기본 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미니멀 아트의 개념 미술적인 성격이요, 접근방식이었다. ● 미니멀 아트는 예술의 본질, 혹은 본질환원이라는 미학적 차원에서, 또한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서 성대한 환대를 받았다. 20세기 미술에서 추구했던 회화의 본질, 조각의 본질 등이 미니멀 아트에서 구현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그러나 미니멀 아트의 극단적인 질주와 이윽고 자기모순, 그리고 자기해체에로 치닫게 된다. 그 동인은 미니멀 아트가 주창했던 강령, 바로 기본구조라는 데 있었다. ● 기본구조란 그 자체가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것일 수 있었다. 그래서 미니멀 아트, 혹은 미니멀 조각은 그 이상 단순화할 수 없는 기본 구조가 발견되고 공인되면 그 진화를 멈출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미니멀 아트는 그 한계점에서 결국 기본구조 자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미학을 도입하게 된다. 이름하여 ‘관객참여에 의해 마무리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 이를테면 규격이 주어진 철판을 용접하여 육면체를 만든다면 어느 누가 만들더라도 크기와 모양과 느낌이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념은 부여할 수 있겠지. 개념미술의 작가들은, ‘개념이란 예술가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모든 것‘이라는 미니멀 아트보다 더 극단적인 강령을 개발해냈다. 예술가가 직접 땀을 흘리면서 손때를 묻힌 작품이란 개념미술, 나아가서 개념미술의 영향권에서 형성된 미니멀 아트의 입장에서는 ’예술의 타락‘이라 할만하다. 그 결과 익명성의 평준화된 작품이 양산되었고, 관객과 소장가의 외면을 불러오게 된다. ● 그 돌파구로서 등장한 것이 관객참여의 미학이라는 것이다. 미니멀 아트에는 관객이 필연적인 작품의 요소로 등장한다. 기본구조의 주변에 관객은 분위기로서, 작품의 완결된 구조에 어떤 부분으로서 기능 한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객체이면서 작품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것이 미니멀 아트의 한계요, 제약이라 할만하다. 관객이 없는 사진 속의 미니멀 아트는 누구의 것인가. 미니멀 아티스트의 것인가. 사진을 찍은 사람의 것인가. 아니면 그 사진을 보고 왜 이것을 작품이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는 관객의 것인가.




변숙경_8787 W06-Ⅱ_스테인레스 스틸_31×185×310cm_2006


반하여, 변숙경의 작품에는 미니멀 아트에서 발견될 수 없는, 또는 미니멀 아트를 초월한 미학이 있다. 거기에는 미니멀 아트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공기가 소통되는 틈새가 있고, 미니멀 아트에서 기본구조에 몰두하느라고 놓쳐버린 선이 있다. 감성적 동기와 접근방식에서 비롯되는 작품의 일회적 완결성과 회화적 성취가 있다. ● 그러므로 변숙경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 당당하고, 작품이 걸려 있는 벽면에서 당당하고, 작품이 놓여 있는 공간에서 당당할 것이다. 작은 작품과 큰 작품은 상대적 크기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독자적 위상을 가질 것이며, 동일 공간에서 질량과 크기와 형체와 색채가 틈새와 선과 공기를 매체로 적이 공존할 것이다. ● 관객이 없어도 자족적이고, 섬세한 감성적 어법과 조심스러운 조각적 선이 설치미술과 회화의 미학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세계야말로 야심적이고 담대한 세계가 아닌가. ■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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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갤러리 瓦 WA (031-771-5454)
2006-06-10 ~ 2006-07-12
2006-06-10 오후 5시

가짜가 아름답다

황규태 작가의 이번전시는 ‘아름답다’ 는 유미적 명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데 이것은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과학적이고 미래적인 작품들의 상상력과 생태적이고 환경적인 작품들의 분석력, 그리고 확대나 재해석을 통해 이미지가 극대화된 작품들의 통찰력에 대한 서정적 버젼 격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시는 크게 가짜과 진짜을 통한 ‘차이’와 실체와는 다르게 보이는 ‘가장’ 이라는 두 맥락으로 구성되며, 이 둘은 결국 각각의 초상안에서 또 다른 독자적실체가 된다는 점에서 통합된다.

가짜 꽃과 진짜 꽃이 마주하고 있다. 진짜 꽃을 대신해 식탁 위를 장식할 리얼한 가짜 꽃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음을 생색내듯 잎새의 질감까지도 지나치게 리얼한데, 진짜여서 당당해야할 진짜 꽃들은 오히려 가짜들 앞에서 ‘생명의 시듦’ 이라는 진짜진리조차 그 진위를 의심 받고 만다. 진짜를 위장한 가짜와 그로인해 진짜도 가짜처럼 보이는 이 현상은, 가짜같지만 진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진위여부의 아래에서 우리는 거짓말같은 진실들의 모양새를 또 한번 목격하게 된다. 광활한 우주의 행성들이 커피 테이블 위에 쌓인 먼지 덩어리이고, 여백을 동반한 동양화 속 고목의 자태는 말라 비틀어져 가는 낙엽의 실재라는 사실. 소재의 의외성을 깨닫고 마치 작가의 허풍에 빠져든것 같아 미소를 머금는 순간, 스티커와 알약을 사람보다 크게 확대하고 모니터 픽셀을 확대하여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여주던 작가의 전작들이 떠오르게 된다. 지금 눈앞에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실제로는 다른 실체의 극한적 실재이며, 그 사소한 것들이 의외의 형체가 되어 또다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고정틀이 강요한 이 세상 수많은 것들의 실체에 대해 잠시 가책을 갖게한다. 그래서 거대하게 확대된 민들래 홀씨가 유유히 떠있는 모습은 그들에게 이렇게 섬세하고 견고한 날개들이 있어 가능하다는 사실의 확인을 넘어, 순수하게 개별 존재의 자체를 인정함으로 인해 그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그리고 가짜와 진짜들의 이질적 시공간성이 거리낌없이 뒤섞여있는 비현실적인 벚꽃 숲에서, 오히려 환타지를 경험하는 현실을 발견하게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환상이나 허구 또는 변형이나 위조가 아니다. 단지 대상을 이상화 하지 않은채 있는 그대로를 충실하게 바라본 작가가, 진짜보다 더 진짜가 되는 가짜들을 통해 살짝 실체의 다른 편을 들춰 냄으로 해서, 우리의 오래된 관념에 신선한 충격이 충돌했을 뿐이다. 그동안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차용하는데 있어서 포토샾을 거침없이 이용하며 매체의 수용과 당위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던 이 아방가르드 작가는, 디지털 시대의 가짜와 진짜를 논함에 있어 역시 그 답게도 ‘진짜 스트레이트’ 가짜를 전면에 내세우며 가짜가 아름답다는 명제를 실증하고 있다.

글 / 이수민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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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작가는 충남 예산생으로,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이미 70년대 부터 필름태우기, 차용, 합성과 같은 대담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1990년대초 한국으로 돌아와 시리즈와 같은 생태ㆍ과학적 주제들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다. 특히 1960년대에 찍은 사진을 재해석한 시리즈는 본인의 작품을 재료로 사용한 획기적인 작품이며, 디지털로 아나로그를 표현하고 때로는 아날로그로 디지털을 표현하는 대표적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이다.

개인전 / 프레스센터_1973, Pentax 갤러리_도쿄_1974, Shinno 갤러리_LA_1975, 문예진흥원미술관_1989, Nikon Salon_도쿄_1992, 워커힐미술관_1994, 황규태 dkjumənt Photography_금호미술관 1998, Contemporary Photography_아트선재센터_2001, 떠도는 것들에 대하여_갤러리 인_2004,DNAㆍ픽셀_갤러리로터스_2005, 황규태, 1960년대를 보다_국립현대미술관_2005

단체전 / 2005년 <패스트 포워드: 한국으로부터의 사진메세지_꼬뮤날레갤러리_프랑크푸르트_독일>,
2004년<사진 그 투명성의 신화_ 대전시립미술관>,<화가와 여행_서울대학교 박물관>,<한국 모더니즘 미술-시선의 확장과 공존_금호미술관>, 2003년<여섯 사진작가-여섯개의 코드 읽어보기_성곡미술관>, 2002년<한민족의 빛과 색_서울시립미술관 >,<신 소장품 전_국립현대미술관>, 2001년<사진영상 페스티벌_가나아트센터>,<인공ㆍ생명_부산시립미술관>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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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02-735-8449) 2006-05-31 ~ 2006-06-30

정연두 작가의 개인전 은 2005년 이후에 제작된 새로운 시리즈 <로케이션>을 선보인다. <보라매 댄스홀>(2001), <내사랑 지니>(2003-), <원더랜드>(2004) 등 작가의 지난 작품들이 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꿈을 주제로 했던 것과는 달리, 신작 <로케이션>은 특정 장소의 풍경을 주제로 한 시리즈이다. 멀찍이 산이 보이는 호수 한 가운데서 물에 발을 담근 채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 화려한 도시의 불빛을 배경으로 플라맹고를 추고 있는 남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자동차 도로, 그림처럼 눈이 내리는 마을의 풍경…… 얼핏 보면 드라마나 영화, 광고 등에서 본 듯한 전형적인 풍경사진처럼 보이는 이 작품들은 자세히 들여다 보는 순간 수수께끼로 가득한 듯한 느낌을 준다. 너무나 그림 같은 배경의 풍경, 연출된 듯한 인물들의 포즈, 군데군데 눈에 띄는 무대 세트의 요소들은 과연 어디까지가 실제 풍경이고 어디부터가 만들어진 무대세트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가짜 무대를 만든 후 실제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서 찍은 진짜 사진이다. 즉 작가가 스튜디오에서 만든 무대를 직접 등에 지고 산으로, 혹은 바다로 가서 촬영한 사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진을 접하면 습관적으로 어느 부분이 합성인지를 찾아내려고 한다. 이미지의 합성과 변조가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봐도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정연두의 <로케이션> 시리즈는 가짜와 진짜 이미지의 혼합과 상투적인 모티프, 전형화된 구도의 사용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작품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전시 제목을 따온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Are you lonesome tonight?”의 가사대로 세상은 무대, 인생은 연극, 그리고 우리는 무대에 선 배우와 다름 없다. 사진이라는 ‘사실적’인 매체를 통해 자연적인 배경과 연출된 무대, 현실과 가상을 대비시키는 정연두의 작품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루는 온갖 진실과 거짓들을 재고하게 만든다.

정연두는 1969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200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보라매 댄스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2002년 상하이 비엔날레,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전시에 수 차례 참여했으며 2007년에는 스페인과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그의 작품은 아트 선재 센터, 서울 시립미술관을 비롯하여 미국의 에스티 로더사(社)와 알렉산더 칼더 재단, 후쿠오카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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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우표

우표가 되려는 그림展

2006_0527 ▶ 2006_0611



김시연__2002호_디지털 프린트_80×80cm_2006




주최_SBS
주관_대안공간 루프
후원_우정사업본부





SBS 목동 신사옥 1층 아트리움
서울 양천구 목동 920번지
Tel. 02_2061_0006






사라져가는 편지에 대한 정겨운 향수 ● 인터넷은 물론이고 개인위성이니 디지털 방송이니 하는 첨단 테크놀로지가 만연하는 지금 편지니 우표니 하는 것을 운운하는 것은 진부하고 시대에 뒤쳐진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버튼한번 클릭하면 세계 어디에든 즉각적으로 메일을 보낼 수 있고, 메신저를 켜기만 하면, 세계 어디에 있던 실시간을 대화할 수 있는 시대에 예쁜 편지지를 고르느라 서성이고, 좋은 말을 찾느라 시집을 뒤적거리고, 곱게 적은 편지를 보내는 그 마음이 구태의연한 일일까. 하지만, 한번쯤 시대를 거슬러보는 것은 어떨까. 예쁜 편지지와 펜을 골라 곱게 마음을 적어 보내던 그때로 한번 쯤 되돌아가보면 어떨까.




박경주_엄마에게2_디지털프린트_3호_2006



심아빈_T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35×35cm_2006



잭슨홍_가면시민 X Dimension A_디지털 프린트_30×30cm_2006



임국_보미_아크릴채색_31×31cm_2006



박병춘_모란이 있는 풍경 한지에 먹, 아크릴채색_45×45cm_2006



손동현_묘작도(猫雀圖)_지본수묵채색_두루마리 형식, 91×52cm_2006


예술가들이 모여 어렵고 난해하다고만 생각했던 예술작품으로 우표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 우표를 사용해서 마음을 전하라고, 편지 한통 받아들고 설레던 그 기쁨을 다시 한 번 느껴보라고, 말로하기 쑥스러웠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적어보라고, 1초 안에 세계가 하나로 모이는 시대에 조금은 더디고 느리게 시간을 거슬러보자고, 예술가들이 만든 우표.




함경아_10장의 박씨의 상상의 어머니 (부분)_종이 위에 연필_2006



이승애_애적슨 3호_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_50×50cm_2006



노재운_환희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06



박용식_으흠..._컬러 프린트_50×50cm_2006



김을_무제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06



김윤환_K씨에게_디지털 프린트_25×25cm_2006


“우표가 되려는 편지” 전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고취하는 대표적인 “편지와 우표” 라는 매체를 통해 타 장르간의 만남을 보여주는 복합 장르적 전시이다. 디자인, 미술, 문학이 함께 어우러져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극복하고 관객에게 현대예술의 다양성을 제공 할 것이다.




정은영_여기도 거기도 아닌_디지털 프린트_28×36cm_2006



신명은_you&me_종이에 아크릴채색_29×29cm_2006



이동기_아토마우스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3×24.4cm_2006



정연두_아지비 댄스홀_2002



백지희_sweet talk_캔버스에 유채_110×140cm_2006



이부록_Post -Post Globalism_혼합기법_24.5×18.5cm_2006



김홍석_승리의 광장_합판 위에 락카_30×30cm_2006


본 전시와 전시도록을 통해 박노해, 정지영 아나운서 등의 글과 편지를 볼 수 있다. 10명의 기획자, 기자(이관훈, 채은영, 신현진, 김준기, 이준희, 유진상, 김인선, 서진석, 김기용, 정재호)가 추천한 참여 작가 20여명의 (김을, 임국, 노재운, 정은영, 이승애, 김윤환, 박경주, 백지희,박병춘, 이동기, 이부록, 손동현, 김홍석, 신명은, 김시연, 심아빈, 함경아, 정연두, 박용식, 잭슨홍) 현대미술 작가들의 그림을 우표로 소장할 수 있다.




찾아오시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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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의 뒤편

The back side of Merrymaking展

2006_0601 ▶ 2006_06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아트앤드림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601_목요일_06:00pm

김미숙_이봉규_한문순

기획_안수영





갤러리 아트앤드림
서울 강남구 산사동 542-3
Tel. 02_543_3162
www.artndream.co.kr






×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시한부 선고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거나, 독실한 신자로 사후 세계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살아있음은 곧 기쁨이다.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듯. 그 기적에 기뻐하며 열심히‘노는 것’이 기적을 누리는 자들의 책무이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구조는 놀이의 방편으로 진화한다. 더 많은 이들이, 더 다양하고, 더 흥미롭게 놀아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현대인의 공통된 화두이다. 극한의 공포 이전 단계. 즉, 죽음 이전의 생은 다소 극단적 서술형‘삶은 유희다’라는 가정을 만들어낸다. ● 유희하는 인간! 본 전시는 3인의 작가가 삶은 유희라는 공통의 전제하에 유희를 각기 다르게 바라본 작업들이다. 주목할 것은 유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유희의 진행과정, 또는 유희가 종료된 지점의 시공간에 초점을 맞춘다. 유희의 뒤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도처에 존재하지만 두려움에 선뜻 꺼내어 살펴보지 못한 미증유의 공포? 아니면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관찰된 우울한 삶의 편린들? 뒤편을 살피고 감지해 내는 몫은 당연히 관객의 몫이지만...




이봉규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06



이봉규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06


동네 어귀에 버려진 놀이터를 채집한 이봉규는 놀이터의 기능에 주목한다. 사회적 당위성이나 문화적 배려에서 건설된 동네 놀이터에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고, 이미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전통적인 프레이밍 기법과 다큐먼트 형식을 따른 그의 작업은 목적과 기능을 상실한 공간으로서의 놀이터를 우리네 유희물의 잉여치surplus value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잉여치로서의 놀이터가 아니라 기능을 상실한 그것들에게 인위적인 세례를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에서 매우 낯선 이미지로 환생시킨다. 인위적 세례란 장노출을 준 뒤, 인공 조명을 여기저기 터뜨림으로써 빛의 축복을 가하는 행위이다. 이는‘잔치가 끝난 서른’을 읊조리거나,‘막이 내린 무대’를 흥얼거리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작가만의 독특한 접근법이다.




김미숙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6



김미숙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06


김미숙은 유년기 놀이의 기억으로부터 작업을 풀어 나간다. 그네타기와 철길 건너기 놀이에서 공포를 느끼고 머뭇거렸던 기억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듯, 혼자 놀기를 실행한다. 비교적 다루기 용이한 대상들을 선택하여 망설이거나 머뭇거림 없이 놀이를 즐긴다. 예컨대 식물이나 꽃잎을 놀이의 대상으로 선택함으로써, 그네나 철길이 가져다준 알 수 없는 놀이의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나뭇잎과 꽃잎을 자유롭게 수집하고 나열하며, 흥겨운 촬영과 분방한 디지털 기법으로 놀이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이는 유년기 놀이에서조차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규칙들과 동료의 따가운 시선이 존재했던 까닭에서 자유로워지고픈 자기 치유의 방편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완벽한 놀이로서의 혼자 놀기가 과연 관객의 시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문순_무제_디지털 프린트_70×100cm_2006



한문순_무제_디지털 프린트_70×100cm_2006


인간과 친근한 동물과의 관계를 유희의 또 다른 전형으로 주목한 한문순은 인간과 개, 소, 닭 등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는 영화 〈남극일기〉를 리메이크한 〈Eight Below〉의 훈훈한 서사구조. 즉, 인간과 개의 상투적인 감동을 단호하게 거부한 추적 방법이다. 이를 테면, 포크레인으로 상처 난 산을 배경으로 관객을 뒤돌아보는 소의 눈, 창백한 쇼윈도에서 가격과 나란히 병치된 강아지의 눈동자는 우울함을 넘어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동물 애호가적인 시각과 일정한 거리를 둔 그녀의 작업은, 유희의 방편으로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가학적 행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인간에게 고하는 일종의 경고로 들린다. 다시 말해 가학적 유희가 부메랑 되어 자학의 흉기로 돌변하고야 말 것이라는 경종. 이는 성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확장만을 거듭하는 유희에 대한 따끔한 꼬집기이기도 하다. ■ 안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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