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1360  1/68   회원가입 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11-30 15:24:44, Hit : 1882)
[re] 전시 2012.11.27

 

A SUBTLE PERFUME

Can Cross Culture project 2012 아랍현대미술展 2012_1127 ▶ 2012_1228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1129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쉬린 네샤트 Shirin Neshat (Iran) 랄라 에세이디 Lalla Essaydi (Morocco) 시씨 파라삿 Sissi Farassat (Iran) 마날 알 도와얀 Manal Al Dowayan (Saudi Arabia) 라티파 빈트 막토움 Lattefa Bint Maktoum (UAE)

주최 / 캔파운데이션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 캔 Space CAN 서울 성북구 성북동 46-26번지 Tel. +82.2.766.7660 www.can-foundation.org

CCC Project (Can Cross Culture Project)는 캔파운데이션에서 기획하는 해외교류전으로, 공통된 소재나 주제, 혹은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을 선정하여 각각의 작품세계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쟁점을 점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012년 CCC Project는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랍출신의 여성작가들을 초대하여 아랍의 문화와 종교의 배경을 가진 여성작가들이 현대미술에서 표출하고 있는 숨은 기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상대적으로 한국과 문화적 교류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아랍의 문화는 아직까지 낯설고 신비롭게 비쳐지고 있으며, 특히, 여성과 종교에 대한 이슈는 국내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소개되고 있다. 이번 전시『A Subtle Perfume』은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 이란), 랄라 에세이디(Lalla Essaydi 모로코), 마날 알 도와얀(Manal Al Dowayan 사우디아라비아)과 시씨 파라삿(Sissi Farassat 이란), 라티파 빈트 막토움(Lateefa Bint Maktoum 아랍에밀레이트)이 참여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랍문화와 이슬람교의 기억을 여성의 눈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소개가 된다.『A Subtle Perfume』은 원래 '은은한 향기'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아랍문화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여성의 기억들을 통해 나타나는 은유적 사건들을 상징하고 있다. 각각 성장배경과 활동경험이 다른 5인의 여성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그 넘어 보여지는 잠재된 문화의 기억을 발견하고 그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쉬린 네샤트_I Am Its Secret_사진_49×32cm_1993
쉬린 네샤트_Women Without Men_영상_2011_부분

쉬린 네샤트는 자신이 태어난 이란사회의 문제, 특히 여성의 지위를 탐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네샤트는 상처, 의미, 기억에 관한 보편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문화적 배경이 지닌 특성을 강조하여 왔다. 1993년부터 1997년 사이에 그녀는「알라의 여인들(Women of Allah)」이라 부르는 흑백사진의 연작을 발표 하였는데, 작품 속 인물의 손과 얼굴 위에 페르시아의 캘리그라피를 겹쳐서 표현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알라의 여인들」연작 중「I Am Its Secret」이라는 작품이 소개되며, 그녀의 최초 장편영화인「Women Without Men」이 상영이 된다.

랄라 에세이디_harem 13B_사진_101.6×76.2cm_2009
랄라 에세이디_Harem 21_사진_101.6×76.2cm_2009

랄라 에세이디의 작품에는 종종 이슬람 캘리그라피가 노출된 배경이 사용되거나, 여성신체와 결합된 이미지가 소재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는 아랍 여성들의 정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현실을 은유적으로 언급하고자 하였다. 유년시절의 이슬람 문화의 기억과 성인이 된 후 서구문화의 체험을 통해 불안한 시각, 불완전한 소통에 대한 문제를 담고자 하였다. 이번전시에서는 에세이디의 최근 연작인「하렘(Harem)」시리즈가 소개되는데, '하렘'이라는 고립되고 은폐된 장소에 남겨진 여인들의 고독과 연민, 우정과 연대감을 화려하면서도 은밀하게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하렘'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통해 여성의 유일성과 그 이면이 가지고 있는 복합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하였다.

시씨 파라삿_LauraTVII_사진_33×48.9cm_2004
시씨 파라삿_Stitch 05_사진_61×40.6cm_2009
마날 알 도와얀_I Am An Educator, I Am An Educator_76×112cm
마날 알 도와얀_I Am An Interior Decorator_실버 젤라틴 파이버 프린트_76×112cm

마날 알 도와얀의「I AM」시리즈는 그녀의 경험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각각의 사진에는 여성들의 직업을 상징하는 사물을 배치하며, 동시에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전통적인 보석들을 보이지 않게 배치하였다. 이는 사우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그 역할이 확장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문화적 전통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전통적 여성상과 현대적 여성상의 변화와 한계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 시씨 파라삿의 작업은 자화상을 포함하여 여성의 초상을 소재로 합성을 하거나 평면 이미지를 장식하는 방법으로 독특한 작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사진이미지에 스팽클을 부착하거나 스티치 작업을하여 고의적으로 과장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는 그녀가 이미지를 재생하고 물리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방법으로, 유머나 에로틱시즘이 금지된 여성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라티파 빈트 막토움_Follow the Trail_사진_148×221cm_2009
라티파 빈트 막토움_Reflection_사진_148×221cm_2008

라티파 빈트 막토움의 작업은 급속도로 현대화 되어가는 아랍연합국가들의 사회적 모순을 개인의 사상과 감성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으며,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는 현상에 대한 진실된 '메시지'를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아랍문화와 이슬람교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오래된 그들만의 거주 환경과 생활 방식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 불어 닥친 도시 현대화 현상은 수 많은 아랍인들의 생활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으며, 오래된 전통적 가치관에도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는 아랍여성들의 시선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시대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녀들의 조용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스페이스 캔

 

 

--------

 

Where's your destination? : The way to 75-1

김정은展 / KIMJUNGEUN / 金挺夽 / installation.sound 2012_1201 ▶ 2012_1216 / 수요일 휴관

김정은_Where's your destination? : The way to 75-1_사운드설치, 와이어_가변설치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수요일 휴관

스페이스 선+ Space Su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 Tel. +82.2.732.0732 www.sunarts.kr

Where's your destination? : The way to 75-1 ● 특정공간으로 가는 길을 소리를 수집하여 재구성한다. 도시공간의 곳곳의 소리를 하나하나 모아 장소를 확장시켜나간다. 들리지 않았던 도시의 소리를 듣고. 소리를 수집하고 도시풍경을 소리로 재현한다 . 듣는다는 목적보다 비시각성에 대한 재인식을 끌어내려했다. 도시의 소리로 재구성함으로써 관계적 장소성을 제시한다. 가는 길목마다 있는 도시라는 시각성을 비시각성으로 기록함으로써 본인이 곳곳의 장소에서 심리적으로 경험한 방식으로 전시공간에 재배치하려한다. 전시공간에 배치된 엉켜있는 형태들과 사물들은 종이위에 연필 또는 펜처럼 사유를 펼쳐내듯이 공간을 그려내듯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로 구성된다. 공간의 일부분이자 건축적 요소들(계단.벽돌.창문)을 전시장에 재현하여 공간의 일부분은 재현함으로 공간을 연상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본인이 기억에 의해 재편집 되는 공간의 이미지이다. 이 과정에서 이런 건축적 요소들은 기능과 용도를 상실하게 되면서 공간의 사물들은 결과적으로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분리된 공간으로 남게 된다. 이는 추상적이면서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수집된소리와 공간에 설치된 재현된 사물들과 합쳐져 본인의 심리적심상과 맞물려. 소리를 시각예술의 형상을 연상시키려 한다. 가는 길목마다 소리를 수집하면서 흔하게 보였던, 공간의 일부분 구성하던 현실의 사물들은 각 공간에서 느꼈던 심상과 마치 공간의 기억이나 흐름과 같은 초현실적세계와 만나 마치 소리와 사물이 뒤섞여 공간속을 부유하듯 보이지않은 심리적공간의 선들을 표현된다 .마치, 도시의 한구석이자 시선이 비켜나서 방치되어있는 공간과 대상들을 소리로 담아. 대상을 모호하고 불분명한 장소를 그려낸다. ■ 김정은

 

------

 

2012 서울사진축제 - 기억이 많은 도시 : 삶의 터전과 기억의 고고학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012-11-21 ~ 2012-12-30

 

제 1부에서는 연령, 직업, 성별 등 다양한 계층을 이루고 있는 시민들의 서울에 대한 기억을 사진과 구술을 통해 복원하여 개인사, 지역사, 마을사를 새로 구축하고, 마을공동체 형성을 위한 공감의 자리를 마련한다. 또한 서울의 도시 경관과 지역성을 주제로 다루어 온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서울의 기억을 구성한다. 작가 18명(팀)의 사진작품과 `프로젝트 작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 3명(팀)의 작품, `서울시 옛 사진 공모`를 통해 수집된 25개 자치구 지역민들의 기념사진들을 한데 모아 기억이 많은 도시, 서울을 보여준다.

 

 

--------------

 

인공정원

ARTIFICIAL GARDEN展 2012_1204 ▶ 2012_1223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1204_화요일_04:00pm

오프닝 퍼포먼스 / 권병준+달파란+박민희_양아치+류한길

참여작가 국형걸_권병준(feat. 윤수희)_서효정_양아치(feat. 류한길) 하이브 HYBE_하우스 루커 그룹 Haus-Rucker-Co. 랩 오 LAb[au]_랑비르 칼레카 Ranbir Kaleka 소피 클레멘츠 Sophie Clements_타카히로 마츠오 Takahiro Martsuo

전시연계 퍼포먼스_양아치+류한길 2012_1208_토요일_03:00pm 2012_1209_일요일_03:00pm

관람시간 화~금_10:00am~08:00pm / 토,일,공휴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SeMA NAM SEOUL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남현동 1059-13번지) Tel. +82.2.598.6247 sema.seoul.go.kr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은 12월4일부터 12월23일까지 사당에 위치한 남서울미술관에서 건축, 미디어, 사운드 등 다양한 장르가 실험적으로 구현된 뉴미디어아트 전시인『인공정원』展을 개최한다. 이번전시는 영국, 벨기에, 일본, 오스트리아, 인도 등지에서 활동하는 국외 작가의 작품과 함께,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하게 작업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작가 5인이 참여하여『인공정원』이라는 주제로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특히 이번전시에는 아키그램(Archigram)과 함께 20세기 아방가르드 건축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하우스 루커(Haus-Rucker-Co.)의 초기 작품 사진과 드로잉 19점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라우리즈 오르트너와 귄터 잠프 켈프 그리고 클라우스 핀터에 의해 설립된 오스트리아 건축 공동체인 하우스 루커는 건축디자인부터 행위예술까지 그 활동영역이 어느 특정한 매체나 형식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일찍이 환경의 변화를 예측한 '임시적인 건축' 또는 '일회용 건축'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전파해 왔다. ● 인도출신 작가인 랑비르 칼레카(Ranbir Kaleka)의「Forest」(2012)는 회화와 영상의 결합이라는 매체의 이질적 특성을 바탕으로 현실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시공간을 창조하지만 작품의 줄거리는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한 인도인의 삶이나 이주 노동자 문제 등 실존의 문제들이 주를 이루어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 또한 지난 10년간 디지털환경과 네트워크시스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는 작업들을 선보인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설치 및 퍼포먼스 작업인「고환암 환자를 위한 모임」(2012)을 선보일 예정이다.

Haus-Ruckers-co._Oasis No.7_1972 / Ranbir Kaleka_Forest_2012 ⓒ Artist and Arario Gallery
양아치_고환암 환자를 위한 모임_2012 / 권병준_공중정원_2012

한편 우리에겐 '삐삐롱스타킹'이나 '원더버드' 등의 인디밴드 활동으로 잘 알려진 권병준의 사운드 아트 인스톨레이션인 「공중 정원」(2012)은 빛을 감지하는 센서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사운드가 16대의 다른 스피커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주되는 작품으로써, 공간과 소리, 그리고 빛과 같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변적인 요소들에 의해 완성되는 작품이다. ● 금천예술공장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작인 HYBE(한창민, 유선웅)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인스톨레이션인「Light Tree」(2011)는 건축가 국형걸 교수(이화여자대학교)가 디자인한 설치구조물인「Floating Garden」(2012)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며, 국내 뉴미디어아트 1세대로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효정 교수(sadi)는 동일본 대지진 부흥지원활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원 받아 전시했던 작품을 이번전시를 통해 새롭게 재현한다.

HYBE_Light Tree: Interactive Dan Flavin_2011 / 국형걸_Floating Garden_2012 서효정_Mizuno Katachi(水のカタチ) 물의 형태_2011
LAb[au]_Particle Springs_2011 / Takahiro Martsuo_White Rain_2011 Sophie Clements_There, After_2011

그밖에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마치 빗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빛과 사운드를 연출하는 일본의 미디어아티스트 타카히로 마츠오, 벨기에 출신의 유명 미디어아트 그룹인 랩오(LAb[au]), 그리고 영국의 사운드 디자이너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소피 클레멘츠(Sophie Clements) 등이 참여하였다. ■ 서울시립미술관

 

 

 

--------------

 

Bluetie

이영은展 / LEEYOUNGEUN / 李泳恩 / painting 2012_1205 ▶ 2012_1211

이영은_시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1×91cm_2012

초대일시 / 2012_12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30am~06:00pm

갤러리 우림 GALLERY WOOLIM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27번지 Tel. +82.2.733.3788~9 www.artwoolim.com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진 친구는 집에 가서 무엇을 할까. 어떤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떤 생각으로 휴식을 취할까. 하루를 되뇌이며 감상에 젖어 있을까. 좀 더 빨리 들어오지 못한 것에 짜증을 내며 추레한 옷차림으로 쭈그려 앉아 드라마를 볼까. ● 나는 작별인사 후 지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와 열쇠로 문을 열고, 아끼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반갑게 맞이하는 가족들에게 의례적으로 인사하며 방으로 직행한다. 이어서, 색깔도 맞지 않는 티셔츠와 바지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는 거울을 한번 보면서 '남들은 집에서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상상도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늘어난 티셔츠를 벗고 결혼식에 가기 위해 옷장을 뒤적인다. ● 공개와 공유가 가능한 범위의 사생활. 내면적 사생활이 생략된 수많은 '나'들의 공존.

이영은_수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0.5×50cm_2012
이영은_수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0.5×50cm_2012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만 지낼 수는 없기에 외부에 속하기 위한 자기를 만들어간다. 외부의 공간과 환경은 하나의 매뉴얼이 되어 '나'를 다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최소한의 자아를 지키면서도 외부에 공개해도 괜찮을만한 어떠한 '표시'를 한다. 그 표시는 누군가에게는 내면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고, 나를 방어해 주기도 하며, 행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 우리는 개인적이면서도 개방된 현재에 살고 있다. '나'라는 개인은 하나의 정보가 되어 떠돈다. 남들에게 보이기를 꺼리지 않으며, 공개하기를 통하여 자기의 이미지를 확립한다. 실제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보이는 대로 평가된다. 너무나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에 데이터 외적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내 곧, 나와 너의 경계는 무너져 내려서 획일화되고 분류된 익명의 무리가 된다. ●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자상한 선생님이에요." "내 남자친구 어때보여?" "맏아들답게 듬직하네." ■ 이영은

이영은_at the revolving door_캔버스에 유채_60.5×72.5cm_2012
이영은_platfor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45.5×89.5cm_2011

What would

 

 

 

-------------

 

Leftover

김윤선展 / KIMYOONSUN / 金侖宣 / painting 2012_1203 ▶ 2012_1215 / 일요일 휴관

김윤선_Emotional collapse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윤선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이마주 GALLERY IMAZOO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20길 12 Tel. +82.2.557.1950 www.imazoo.com

추상적인 내면의 감정을 무너지는 상황, 폭발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쓸려진 풍경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재해이자 곧 작가의 감정을 토해내는 한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무너진 마음을 남겨진 잔재에 투영하며 인간 내면의 상처를 건드린다.

김윤선_Emotional collapse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2
김윤선_Emotional collapse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2
김윤선_bomb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12

토해내어 만들어진 절박한 상황은 기억 저편에 내재하고 있는 사소하고 복잡한 감정을 아우르며 보는 이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이번 전시는 남겨지고 버려진 것들을 통해 바닥을 치는 절망에서 다시 솟아오를 희망을 찾는 치유의 과정이 될 것이다. ■ 김윤선

 

 

-----------------

 

Plastic Zoo

이동헌展 / LEEDONGHUN / 李東憲 / sculpture 2012_1205 ▶ 2012_1211

이동헌_현명한 자_레진에 특수도색_190×180×70cm_2012

초대일시 / 2012_12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insaartcenter.co.kr

싸구려 지저분한 질척한 것들을 감추기에 적당한 검은 비닐봉지는 도시문명의 구석과 그늘을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은 포장을 하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그 누구도 반쯤 썩은 고양이와 음식쓰레기, 세상에서 가장 물컹하고 가장 불결한 어떤 것을 품기에는 검은 비닐봉지 이외에는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검고 질긴 탓에 속에 것을 드러낼 수 없는 스스로 터득한 싸구려 본능일 것이다. 우리가 먹다버린 욕망의 배설물을 한가득 담고 버려져도 도시의 이방인처럼 길거리마다 한 구석을 지키고 있어도 누구하나 관심 가져줄리 없다. 작가는 검은 비닐봉지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려고 한다. 나아가고 일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검은 비닐봉지를 통해 접근한다. "욕망은 만족감을 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크 라캉(jaques lacan)의 주장처럼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욕망은 때때로 기대함과 동시에 좌절하게 하며 충족되지 않은 욕망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공포에 속박되게 만든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 담은 욕망의 덩어리들은 비록 그 실체가 있지 않지만 검은 비닐에 포장되어 형상화된다. 그리고 작품은 구겨지면서 필연적으로 주름이라는 것을 통해 형태의 변형과 그림자를 발생시킨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에서 반짝이는 욕망의 꿈틀댐은 우리의 삶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인생의 명암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수많은 주름을 봐왔고 그것을 만지고 느끼고 있으나 정작 그것을 손을 통해 다시 구현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주름 역시 인과관계에 의해서 정해진다. 느슨하게 구부러진 곳이 생기면 그에 따라 느슨하게 주름이 지고 급격하게 휜 곳은 그만큼의 긴장감이 생긴 주름이 진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를 나타내나 유독 비닐의 얇고 가벼움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작가는 비닐이 가진 재료적인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정교한 캐스팅작업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꿈틀대는 욕망을 비닐에 투과하여 표현하였다.

이동헌_고독한 자_레진에 우레탄도색_45×45×35cm_2011
이동헌_mother_레진에 우레탄도색_150×145×80cm_2011
이동헌_슬프고 불안해_레진에 우레탄도색_35×50×35cm_2011
이동헌_쓰러지다_레진에 우레탄도색_40×60×35cm_2011
이동헌_plastic bag dog_레진에 우레탄도색_65×60×40cm_2012
이동헌_plastic bag dog_레진에 우레탄도색_50×90×40cm_2012

작품은 검은 비닐봉투라고 하는 과잉된 욕망덩어리들이 주는 불안, 긴장, 공포를 동물원이라는 사육장에 갇힌 동물들 혹은 일방적인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동물들의 표정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구체화시키고 관객과 다시 마주하고 있다. 인류는 탄생 이래 문화의 발전에 따라 동물들과 생존투쟁관계를 거쳐 사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결국 자연의 일부분을 간단한 수술을 하듯 한 점, 한 점 떼어내어 인간이 만들어낸 사육장이라는 시설물아래 집어넣고는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고 일반대중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 동물원들이 전 세계적으로 위치해 있고 그것이 얼마나 큰 모순덩어리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작가는 고독을 느끼는 고릴라, 공포로 찬 원숭이, 갈 곳을 잃고 표류하는 거북이, 타자로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는 오랑우탄 등 감정이입 된 동물들의 표정 혹은 본성에 의한 모습을 검은 비닐봉지로 포장하는 작업을 통해 채워지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검은 비닐이 인간 내면의 억압된 욕망이 투사된 희생양이라면 동물원의 동물들은 과시하기 위한 인간 외면의 욕망이 투사된 희생양이다. 두 가지의 인간의 욕망이 주입된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욕망의 동물원으로 초대하고 있다. ■ 이동헌

 

 

--------------

 

Scape_collection

김주리展 / KIMJUREE / 金住利 / sculpture 2012_1206 ▶ 2012_1218

김주리_휘경揮景-h07_흙, 물_32×70×7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105b | 김주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207_금요일_05:00pm

커튼홀 토크 / 2012_1212_수요일_07:00pm_커튼홀,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후원 / 서울문화재단 기획 / 통의동보안여관_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관람시간 / 11:00am~06:00pm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project space MO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6-25번지 Tel. 070.4222.3002 cafe.naver.com/boaninn/322

압축 재생된 이접의 지대 ● 흙으로만 만들어졌으며, 물이 첨가되어 중력의 작용을 받아 아래로부터 서서히 침식되어가는 김주리의 집들은 시간에 의해 스러져가는 것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집은 현대인이 대다수 몰려 사는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변 환경이라는 점에서, 환경 변화에 대한 척도가 되어주곤 하지만, 김주리의 경우 처음 관심사는 몸이라는 내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집 또한 몸의 연장이라고 할 때, 이 작업의 시작 중 하나가 무너져 가는 몸이었음은 필연적이다. 몸과 그것의 외화인 집은 1차적으로 자연력에 의해 쇠퇴해 가지만, 몸보다도 더 빨라진 집의 갱신 주기는 왜 이렇게 미친 듯이 파괴되고 또 건설 되는가에 대한 사회적 물음을 끌어들인다. 존재론적인 문제는 의식하고 의도할 사이도 없이 곧장 일상을 지배하는 거시/미시적 권력의 문제로 비약한다. 미술작품에서도 도시의 변화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이 적지 않게 반영되고 있는 가운데, 김주리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강도와 밀도는 그 출발이 존재론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 그녀의 작품은 외적 접근이 아닌, 작가에게 체화된 내재적 문제의식만이 작품의 폭과 깊이 또한 유지,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그렇다고 작가가 기초적인 자료 조사나 재현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김주리의 작품은 경쾌하게 치고 빠지는 가벼운 풍자나 냉소주의와는 거리가 있으며, 사회 현실에 대한 지식인적 관념주의나 이데올로기에서 보여지는 비판적 접근과도 차이가 있다. 단순한 동병상련이나 자신과 거리가 먼 현실에 대한 연민에 머물지도 않는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렇다는 태도이다. 낡은 집의 외벽 타일 무늬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다음, 그것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과정은 사회 현실에서 발견되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집들이 그토록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무너짐은 그토록 강렬한 느낌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의미는 그 낙차에서 발생한다. 요즘 작업이 시작되었던 2009년에 작가에게 벌어진 사건은, 어느 날 작업실 부근 재개발 구역의 집들이 참혹하게 뜯겨진 현장이었다.

김주리_휘경揮景-m01_흙, 물_22×30×16cm_2012 김주리_휘경揮景-m02_흙, 물_22×26×26cm_2012

갑자기 폭격 맞은 듯 파괴된 집은 작가로 하여금 그것이 허물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했고, 흙으로 만들어진 집의 축소형은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한눈에 압축해서 볼 수 있게 했다. 개발이 이루어지는 시간대의 차이 때문에, 어느 지역은 지체 현상을 보이고 곧 사라질, 또는 사라져줘야 하는 과도기적인 풍경으로 남게 된다. 이전 작업인 「휘경」 시리즈에서 작가는 재개발 예정지인 휘경동 풍경으로부터 '휘발하는 풍경'을 보았고, 작업실이 있는 동네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흩어진 재개발지 풍경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번 '스케이프 컬렉션'(전시부제) 전은 전시장이 있는 한남동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 아마도 탁 트인 조망에 어울리는 고급빌라나 아파트를 목적으로 재개발될 예정인 그 장소들은 언젠가는 완전히 갈아엎으리라는 기대로 인해, 큰 공사가 아닌 자잘한 보수들로 연명하면서 최초의 구조와 형태가 차츰 변형된 곳이다. 그래서 곳곳에 작가의 눈을 끌만한 진기한 생활의 발명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 언덕에 있는 그 동네는 한쪽은 4층, 한쪽은 1층으로 된 계단형의 집이나 외벽 없이 '따로 또 같이' 스타일로 붙어있는 집들, 지형이나 땅의 형태에 맞춰진 자연발생적인 집을 비롯, 밀집된 집들 사이의 미로 같은 가파른 골목들이 모세관처럼 뻗어있다. 김주리의 작품에는 어느 날부터 동네의 언덕을 잠식했었을 비슷한 스타일의 벽돌집들은 서서히 변형된 흔적들이 담겨진다. 계획된 인공구조물은 자연화 과정을 밟는데, 작품은 이 과정을 압축 재생하는 것이다. 동질적 몸체를 서서히 변형시킨 이질적인 요소들은 감추어져야 할 병적인 징후가 아니라, 드러내야 할 생성의 흔적들로 강조된다. 낡고 좁은 집들은 시간에 흐름에 따른 공간의 변화, 가령 덧대어지고 집적되며 증식되는 구조들로 포착 된다. 가파른 삶의 굴곡 면을 따라 집들은 끝없이 이어지며,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공간은 그자체가 이접의 연속체이다. 잡초처럼 생명력 있게 뻗어나가는 리좀적 형태들이다.

김주리_휘경揮景-m02_흙, 물_22×26×26cm_2012

작업을 위해 작가가 모아놓은 풍경 사진들에는 밀집된 집들 사이로 어지럽게 얽혀있는 전선줄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또한 근경의 곁가지들처럼 보인다. 리좀의 구조는 미로처럼 길을 잃게 하지만, 리좀이 만들어내는 미로적 구조는 목적을 잃은 효율을 위한 최단거리가 만들어내는 폭력을 유예시키는 방어막이 되기도 한다. 벽에 걸린 드로잉에는 난간들로만 연결된 구조가 있다. 서로 다른 구조가 시점을 달리하면서 리좀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우연적 연결망은 누군가에게는 정리되어야 할 무질서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수에게나 유토피아를 제공할 새로운 질서와 대조되는 헤테로피아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총체적으로 계획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진 구조들은 다소간 무원칙적으로 보이지만, 모두가 필연적인 것들이다. 거기에 그것이 있어야할 이유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 자연화 된 풍경에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여분의 것들이란 없기 때문이다. 작업과정은 집을 짓듯이 치밀하다.

김주리_휘경揮景-h07_흙, 물_12×70×70cm_2012_부분

컴퓨터상에서 3차원 도면까지 그린 후에 제작되는 것도 있다. 곧 와해될 집들은 백토로 만든 판으로 거의 사실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진다. 작업의 마지막 단계는 전시 오픈이나 그 전날 물을 부어서 아래로부터 서서히 침식시키는 과정이다. 이 전시의 대표작은 축대 위에 7-8채가 붙어있는 집들이다. 닮았으면서 약간씩 다른, 가족유사성을 가지는 집들은 한남동에 있는 실제 건물을 모델로 했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으며, 건물의 특정 요소로만 이루어진 환상적 구조물도 있다. 입구도 출구도 없이 난간만으로 이루어진 집이나, 데칼코마니처럼 분열중인 벽돌집은 증식의 방식을 예시한다. 무성생식처럼 분열하는 방식은 원초적이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전달한다. 개체가 증식되는 과정을 담은 이러한 환상적 모델은 굳이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그것은 구조체의 형태를 갖추고는 있지만 이미 무너져 있거나, 무너진 파편들 속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나는 힘을 상징한다. 작가는 왜 그리 누추하고 궁색한 풍경에 주목하는가? ● 그것은 그러한 풍경들이 하나의 유일하고도 객관적인 시공간 개념을 배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또는 삶의 굴곡 면을 따라 펼쳐지는 중층적 표면들은, 강력한 하나의 깊은 뿌리와 기둥을 가지면서 격자형으로 뻗어나가는 지배적인 권력에의 의지를 거스른다. 오랜 세월동안 미세하게 뻗어온 삶의 그물망은 어느 날 한꺼번에 걷어 내어져야할 쓰레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시공간적 경험을 담은 이러한 구조물들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하나의 힘(권력)에 의해 한시적인 생명만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다양한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독특한 실천으로 남아 있으려는 예술에 가해지는 폭력과도 유사하다. 김주리의 작품은 타자가 타자의 편에 선 경우에 해당된다. 물을 쏟아 부음으로서 자연의 과정을 가속시키는 행위는 그 파괴력을 자연에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물과 흙으로만 생성되고 소멸하는 광경들은 자연이 아니라 사회적 풍경인 것이다. 인간 사회는 자연력을 그들의 기준으로 조정한다. 사회는 하나의 힘에 대해서만 합법성과 효율성을 인정한다.

김주리_휘경揮景-h07_흙, 물_12×70×70cm_2012_부분

김주리의 작품은 구체적 특수성이 그대로 새겨진 삶의 자리들이 추상적 보편성에 의해 사라지는 모습을 담는다. 이 추상적 힘은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자본주의의 경향에 의해 발생되고 강화된다. 작가는 토착민의 삶의 뿌리를 뽑고 어디선가 이식된 하나의 나무와도 같은 동질적 체계에 타자들을 질서 있게 복속시키려는 거대한 흐름에 거부감을 가진다. 김주리의 작품은 자본이 추동하는 공간의 추상화에 대해 구체적 삶의 특수성이 녹아있는 자리를 부각시킨다. 한편 이 자리들이 녹아내리는 과정은 공간이 시간화 되는 현대사회의 경향과 조응한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들은 공간이 시간으로 내파되는 과정을 표현한다. 내파는 붕괴라는 다소간 비극적인 방식으로 귀결되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 되살려낸 삶의 미세한 그물망들은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내구력 및 저항력 또한 암시한다. 난간으로만 이루어진 집이나 집을 이루는 건축적 요소들이 이접적으로 연결되는 드로잉은 삶의 그물망이 생성되는 방식을 알려준다.

김주리_한남동 스케치_51×210×40cm

붕괴되는 건물들은 단편들 및 잔여물들을 남겨놓는데, 이것들은 접 붙어서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 그것은 통일적인 설계도에 의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부분들이 덧대어진 형식으로 만들어지며, 하나의 전체를 이루지 않는다. 그것을 추동하는 것은 당면한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계속 이어가려는 욕망이다. 계획된 도시가 유기적 전체를 이룬다면 부분들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앙티 외디푸스』에서 말하듯이, 큰 덩어리를 이루는 유기체와 대립하는 죽음의 표본이다. 이질적으로 접 붙어지는 단편들은 영원히 지속될 삶의 번영이 아니라, 매순간 죽음을 의식하는 하는 삶을 전제한다. 단편들은 모든 방향에서 또 모든 방면에서 무한한 것과 연결됨으로서 죽음을 지연시킨다. 우연적인 관계망들을 두드러지게 하는 김주리의 집들은 무엇인가를 표상하거나 기호화하거나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은 표류나 탈주처럼 이어지는 연결이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이접(離接)들은 임박한 붕괴에 대한 저항력을 형성할 것이다. ■ 이선영

커튼홀 토크 김주리 작가와의 수상한 대담 - "비구축의 건축, 구축의 건축" - 일시 : 2012. 12. 12 pm 7 - 장소 : 커튼홀 +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 참여자 : 김주리, 커튼홀 (건축가: 구승회, 김광수, 조재원) - 문의 : projectspacemo@gmail.com

 

 

------------

 

인식認識의 오류

김윤展 / KIMYUN / 金潤 / mixed media 2012_1205 ▶ 2012_1231 / 일,공휴일 휴관

김윤_(1747)_비닐봉지_110×220cm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시_(사)서울영상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4가 125번지 충무로역사내 Tel. +82.2.777.0421 www.ohzemidong.co.kr

사회는 사람들의 인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고정된 인식은 우리에게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돌아온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현상보다 고정된 인식자체에 집중한다. 비닐봉지라는 사물을 담기 위한 물질을 뜯고 녹여 겹쳐 붙임을 반복함으로써 본래의 생산목적이 바뀌었을 뿐 비닐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물질을 바라보는 인식은 저급성이 강한 비닐봉지에서 미술이라는 분야에 들어가게 된다.

김윤_(1411)_비닐봉지_100×200cm_2012
김윤_(1225)_비닐봉지_100×200cm_2012
김윤_(1735)_비닐봉지_60×120cm_2012
김윤_(1208)_비닐봉지_95×155cm_2012
김윤_(1657)_비닐봉지_140×130cm_2012
김윤_(1637)_비닐봉지_57×112cm_2012

운전 중 찍힌 블랙박스의 영상과 영화 속 영상을 캡쳐하여 형상화 시킨다. 나의 작업에 이미지는 스토리나 메세지와는 무관하다. 실제공간을 찍은 영상을 편집하여 뜯고 녹여 겹쳐 붙임을 반복하여 재현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가 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비닐봉지를 더 이상 비닐봉지로 볼 수 없는 인식의 오류를 보여준다. ■ 김윤

 

 

-----------

 

물의감각 Sensibility of the water

윤상윤展 / YOONSANGYOON / 尹相允 / painting   2012_1206 ▶ 2012_1229 / 일,공휴일 휴관

윤상윤_Swan lake4_리넨에 유채_130×162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윤상윤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206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7:00pm / 토요일_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표갤러리 사우스 PYO GALLERY SOUTH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빌딩 B112호 Tel. +82.2.511.5295 www.pyogallery.com

1 윤상윤 작가의 작업을 특징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수증기로 가득한 공간을 채운 수면의 파문이나 인물들, 비현실적 공간에 놓여있는 책상과 그것이 물에 비치는 일그러진 사물들의 기묘한 분위기이다. 실상 현대미술가의 작업은 하나가 아닌 두세 가지 방향으로 분열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윤상윤 또한 그렇다. ●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고, 그 가운데에는 한 사람이 책상 위에 올라가 있다. 그런데 책상 위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도서관을 방문한 이들처럼 조용히 앉아있다. 또 어떤 이는 무릎 꿇고 앉아 있기도 하고 마치 종교모임을 갖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동물들이 올라있기도 하다. 초현실적 풍경이 펼쳐진다. 이 모든 풍경은 습지나 호수에서 벌어진다.

윤상윤_Protem10_리넨에 유채_130×162cm_2012

작가가 표현하는 이미지의 인상적인 부분은 수면의 파문과 물의 흐름, 표정이 마치 수면에 비쳐 액체화 된 듯 부드럽게 뭉개져 있는 이미지들이다. 처음 그의 이미지를 보면서 마치 60년대 히피 세대의 정신세계를 재현한 듯 몽환적 풍경을 연상하였다. ● 파문과 함께 물위에 흐느적거리는 그림자를 흘리는 책상 위에 사람이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다. 작가는 학창시절을 모티브로 했다고 말한다. 한국의 평균적인 교실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은 개인의 주체나 개별성이 아닌 기계적이거나 수량적인 단위로 불할 관리된다. 교칙을 위반한 또는 학교 교육의 권위에 부적합한 학생 한 명의 행위는 그 학생의 개별적인 행위가 아니라 전체 학생의 집합적 위반으로 환원되어 함께 뭉뚱그려진 채 체벌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일그러진 관습은 내 안의 제도가 되어 몇 십 년이 흐른 후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버린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현실은 지금의 현실이 아닌 과거와 융합된 현실인 것이다. 윤상윤의 세계는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현실과 제도의 벽을 체험한 이들의 교실이다. 무언가에 취한 듯한 교실은 변함없이 힘과 제도로 작동한다. ● 제도와 권위는 시간이 흐르면 초현실적으로 변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부여잡고 있는 제도나 권위, 가치는 사실은 시간 속에서 역사화 되고 그것은 곧 환상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시간과 현실의 감각은 환상과 환영을 다루는 작가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이다.

윤상윤_She_리넨에 유채_112×145cm_2012

"그건 아마도 우리 몸에 전해져오는 본능이 자기영역을 지켜야한다고 말 하는 것 같았다.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영역표식은 결국 권력과 직결한다. 그룹이 만들어낸 작은 영역의 집합체가 사회이고 사회의 집합체가 국가이며 그 권력(영역)에 종속, 또는 흡수 되려면 자신(정체성)을 감추고 그룹의 정체성에 맞춰야한다." (작업노트 중) ● 정체성이란 과거와 현재의 긴장과 충돌, 유기적 운동을 포함한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사람의 시선에서 본, 각박한 한국의 제도현실을 우주적 명상의 풍경으로 재현한 윤상윤의 이미지는 자기 정체성은 우리 안에 있지만 동시에 밖에도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킨다. 그래서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것은 마치 이미지의 세례를 거침으로써 다른 존재가 되고 다른 세계로 입문하는 비의적 제의를 통해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윤상윤_Sub crane4_리넨에 유채_91×116cm_2012

사회와 개인, 제도와 규율이 자연과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의 현실을 만든다. 그 과정에 개인의 기억은 개인의 사건이 아닌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미지들로 만들어진 흐름, 이미지의 운동은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표면을 가로지르며 유영한다. 오래전 작가가 경험한 것은 본능적으로 이해되고 거부된다. 마치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이 그 치유과정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표현한 듯 보이던 이미지는 종래는 영혼과 마음의 결핍 또는 상처의 떠올림(기억)이고 그것은 정체성의 위기의 징후에 대한 작가의 처방과 치유를 은유한다.

윤상윤_Swan lake3_리넨에 유채_80×116cm_2012

2 "내 작업에서 나오는 물이란 에고의 상징이다. 그룹은 집단 에고에 사로잡혀있으며 물속은 잠재적 욕망인 이드이다. 책상위에서 바라보는 이는 슈퍼에고로 다른 이들의 영역에 자리 잡은 초월적 자아로 세상을 바라본다." (작업노트 중) ● 윤상윤의 작업에 등장하는 각각의 형상들은 물의 이미지 속에서 유영한다. 이 물의 이미지는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lard)가 말하듯 우리의 꿈 또는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물질적이다. 작가의 마음에 감정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은 하나의 물질이며 윤상윤의 작업에서는 물의 물질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의 이미지는 무언가 생성되는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물은 정신분석의 중요한 원천이며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내면적인 명상의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전이시킨다. 물은 거울과 동의어이다. 물은 인간이 환영을 매개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자리를 제공한다. 자기 정체성을 상징하는 물의 중요한 특징은 운동과 이미지의 지속인 것이다. 물은 영원히 운동하며 모든 사물과 이미지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겁회귀의 우주적 질서를 은유하기도 한다.

윤상윤_Sub doe5_리넨에 유채_89×130cm_2012

어떤 이들은 인간의 의식을 대양(大洋)에 비유하며 개별자의 의식은 사실은 이 거대한 사념의 바다를 공유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내 의식에 솟아난 것은 비록 언제 어디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사람의 의식에도 숙명적으로 솟아오른다고 생각한다. 솟아오르는 형상들은 그러므로 개별적 주체의 것이 아닌 보편으로서 주체가 공유하는 것이 된다. ● 윤상윤의 물의 이미지는 형상이 충만해지는 생성의 자리이며 생성만이 존재를 소유한다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의 인식과 공명하는데 비약하면 물의 이미지 속에서 형상들은 어떤 의미의 연쇄를 만들어낸다. 물의 이미지는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생성하는 것으로 작가가 영감 받은 이미지 또는 환상을 생성하는 계기이다. 모든 이질적인 시간과 존재가 유동하며 변모한다. 이러한 질적 변화, 생성의 모태가 물의 이미지이다. 기억들, 기억 속의 사실들은 환상이 되기도 하며 다른 가치와 만나 변화한다. ●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은 창작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동일한 수준으로 작용한다. 평면의 이미지는 사실과 환상의 사이를 경계로 무수한 차원의 세계로 변해버리니 말이다. 기댈만한 권위, 질서 의미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 "그래서 우리는 결국 영역 안에서 평생 빠져나올 수 없다. 영역 안에서 수정당하고 길들여져 자신의 본질을 잃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착각에서 사는 것이다(사실 이것이 현실이다)." (작업노트 중)

윤상윤_Sub doe5_리넨에 유채_89×130cm_2012

"인간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된 후 인간은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는 아무것이나 다 믿게 되었다." 아이러니의 대가로 알려진 영국의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의 통찰이다. 이미지로 넘쳐나는 현대인의 마음에 대한 기묘한 말이다. 이미지가 더 이상 사실(fact)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세계에서 이미지와 사실의 관계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미지들은 어떤 사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상과 환영을 다루는 현대미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 윤상윤의 작업은 환상과 환영이 주는 어떤 힘 또는 정체불명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작가가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느낀 위기이며 불안이다. 거기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심리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으로 순간 명멸하는 존재의 감각과 같다. 한편의 기이한 초현실의 세계에서 작가는 의식의 성장통과 사회현실을 연결하려고 한다. ■ 김노암

 

 

--------

 

묵의 색깔들 Multiplet of Silence

김정현展 / STONE KIM / 金湞玹 / photography   2012_1207 ▶ 2013_0113 / 월요일 휴관

김정현_multiplet of silent_tree #0581_사진_2007

초대일시 / 2012_1207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옵시스 아트 OPSIS ART 서울 종로구 소격동 36번지 Tel. +82.2.735.1139 www.opsisart.co.kr

사진 같지 않은 사진 ● 누구나 스톤 김이 나무를 찍은 사진을 처음 볼 때 한결같이 "이게 정말 사진이냐?"고 묻는다. 나도 처음 봤을 때 놀라서 마찬가지로 그렇게 물었다. 사진에 찍힌 나무들이 수채화나 동양화처럼 보였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결이 있는 종이 위에 프린트 되어 도무지 사진처럼 보이지 않았다. 종이에 안료가 스며들어 채도가 낮은 칼라가 연기가 피어 오르듯이 드러나고 있었고, 보고 있는 내 눈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는 더욱 진한 색채로, 뒤에 있는 나무는 흐린 색으로 인화되어 원근에 대한 감각이 동양화처럼 색의 농담으로 표현되고, 나무의 배경을 이루는 배경마저 여백처럼 비어있어 도대체 사진 같지 않게 보였다. ● 나무는 한 밤에 플래시 불빛으로 찍혔다. 그 자체를 프린트 하면 사진의 속성대로 나무는 희게, 배경은 검게 나온다. 그것을 컴퓨터로 네거티브로만 전환하여 프린트를 한 것이다. 일체의 색 보정이나 여타 조작은 없이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의존했는데, 그 결과 인화지에는 하얀 배경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색체를 은은하게 뿜어내는 나무가 한 폭의 동양화 속에서처럼 빼어나게 서 있다. 플래시 빛이 미치는 거리가 사진 공간 속에 입체감을 부여하여 찍힌 나무 뒤가 평면적으로 구성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회화적인 입체감을 구축하여 마치 손으로 그린 것 같은 촉(텍스처)을 느끼게 해 준다. 가냘픈 줄기 끝에 매달린 여린 잎들은 스스로 자기 색을 뿜어 내듯이 촉촉하고, 두꺼운 나무 둥치의 결은 거북이 등 짝처럼 깊은 골을 아련하게 드러낸다. 사진인가 싶어 찬찬히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사진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어떤 느낌이 점차 두드러져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절하게 사진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김정현_multiplet of silent_tree #1001_사진_2009

어둠 속에 새겨지는 빚의 흔적 ● 사진은 본래 빛의 흔적이다. 어둠 속에 새겨 지는 것이다. 광입자(photon)가 그려지는 것(graph)이다.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 매체와는 달리 사람이 주도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도구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기 보다는 오히려 이미지를 보여주는 쪽이다. 현실에서 재현하고 싶거나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장비를 사용하여 치환하여 보여주는 방법이나 기술이 개발되면서 사진이 가능해 졌기 때문에, 사진은 근본적으로 이미지를 치환시킬 수 있는 장비에 구속적일 수 밖에 없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장비들이 갖는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관찰자처럼 사진과 관계를 맺게 된다. 엄격하게 기계적이며 외양을 기록하는 현상이며,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생산된 이미지, 유사적 이미지야말로 사진의 사실적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사진은 보여진 것을 기록하면서, 본질적으로 항상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사진은 연속으로부터 얻은 한 순간을 고립시키고 보존하고 빼낸다. 즉, 시간을 얼어붙게 만들어서 실재성을 그것의 모상으로 변화시켜 실재성을 지각기술로 지배하게 한다. 그 결과 그 모상의 이미지에 상응하는 사물이 부재한다는 것을 드러내어 준다. 다만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사진이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에서 결코 반복될 수 없는 그러한 리얼리티를 계속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진 이미지에 상응하는 사물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부여한다. 사진은 그 사물이 실재로 있다고 하는 것을 증언하기보다는 그 사물과 이미지 사이의 간격을 부득불 확인시키고 강화한다. 모든 사진은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 그리고 현재와 과거 사이의 혹독한 긴장을 유발시킨다.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그 구체란 지극히 추상적 결과인 것이다. 찍힌 사진 속에 있는 대상은 찍히기 전에 있던 카메라 렌즈와 피사체 사이에 있던 거리감이 제거되어 공간 자체가 이미 추상화 되어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찍으려고 했던 그 피사체의 이미지가 다시 카메라를 통하여 이미지화 되어 이미지의 이미지가 되면서 원 이미지가 또 추상화 되어 버려, 뭔가 현실에 존재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지던 것이 표상으로 붕 떠버려 신기루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눈에 보이는 바로 그것을 포착하여 보존할 수 있게 해주지만, 포착된 그것은 곧바로 그곳에 없다는 것을, 그 부재를 증거해버리는 기묘한 역설을 태연스럽게 배태하고 있다. 매체 자체가 아이러니로 꽉 차 있는 매우 요망한 매체인 것이다.

김정현_multiplet of silent_tree #1504_사진_2012

스톤 김의 "우연한 섬광" ● 어떤 사물이 캔버스나 종이 위에 그것과 똑같이 그려질 때, 우리의 손과 의식을 통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대상과 관련된 의미가 불가피하게 형성될 수 밖에 없게 되어 사물과 내포적인 관계를 이루게 된다. 사진은 반대로 그 자체적으로 외부적이며, 한 편의 외연적 연속체다. 사진은 물체가 감광 자료에 남긴 물리적 흔적의 결과, 물체에 대한 지표적 구실을 하는 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진가가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은 그가 찍을 사물을 연속적 과정에서 고립을 시키기 위한 선택의 순간에 관한 것뿐이다. 결정과 초점만이 있을 뿐인 이 명백한 제한이야 말로 앞에서 말한 "처절하게 사진적"이란 것의 내용이다. ● 스톤 김은 나무를 찍기로 결정했다. 그 나무들 중에서도 도시 안에 있는 나무, 인간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는 나무를 찍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낮과 밤, 또는 빛이 꽉 찬 자연과 빛이 없는 자연 중에 밤, 그것도 불빛이 적은 밤에 찍기로 정했다. 타자에 의해 관리되고 훼손되어 있는 나무에 스스로가 이입이 되어 나무를 작업의 대상을 택했고, 낮 보다 밤이 편한 자신의 생활 습관에 순응해서 시간을 정했다.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성격대로 카메라와 플래시 그리고 삼각대만 가지고 홀로 사진을 찍었다. 인간의 용도와 기분에 따라 굴절되고 훼손되고 변형되어도 나무는 묵묵하게 나무로서 당당하게 버티고 살아가고야 마는 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기 바깥 세계와 분리된 자신만의 내면을 강고하게 구축하여, 밤의 어둠이 주는 공간적 충만감 속에서 셔터를 눌렸다. 꽉 찬 어둠 속에서 자족적으로 서 있는 나무에 초점을 맞추고 숨마저 죽인 그 적요의 순간 속에서, 사진의 그 "우연한 섬광"을 스톤 김은 자신의 세계를 사진 속에서 만들어 나갔다. 완벽한 침묵의 세계다.

김정현_multiplet of silent_tree #1911_사진_2010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 침묵은 본래 시각적이다. 청각적인 메타포다. 네이버 사전은 침묵을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음,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한다. 사이먼과 가평클이 불렀던 불후의 명곡, "침묵의 소리(Sound of The Silence)"는 "소리를 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과 "귀 기울이지 않고 듣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고 들려준다. 존 케이지는 그의 전설적인 작품, "4분33초"에서 아예 침묵의 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침묵의 지평을 향해서 한없이 후퇴해 가는 다양한 소리와 움직임을 통해서 소리 없는 소리를 들려주고 보여 주었다. 케이지가 이러한 침묵이라는 은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했던 의도는 "침묵이라는 것은 없고, 어떠한 일이 항상 일어나고 소리를 내고 있다"는 암시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충만한 것을 지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떠오르게 하는 공허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침묵은 반드시 그 대립 개념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소리 혹은 언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인식하지 않으면 침묵이라는 것은 불가능 하다. "모든 침묵은 소리에 의해 관통된 시간의 확장으로써 그 아이덴티티를 가진다"고 수잔 손탁이 갈파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진정한 공허, 순수한 침묵은 가능하지가 않다. 침묵은 이야기의 한 형식, 불만족이나 고발의 형식, 대화의 한 요소일 뿐이다. ● 이러한 침묵이 시각적 메타포를 이룬다면 그 색은 어두움(darkness)일 것이고 검정, 혹은 먹의 색일 것이다. 검정색이란 모든 색이 섞인 색일 것이고, 수묵화에서 먹색은 완전한 색이다. 전자가 현실적이며 직접적이고 종합적인 색이라면, 후자는 이상적이며 간접적이고 가능성으로서의 색이다. 전자는 색의 원리를 빛에서 의존하고, 후자는 어둠에서 구현한다. 낮에 찍힌 일반적인 나무들의 색과 밤에 스톤 김에게 찍힌 나무들의 색을 비교해보면 같은 나무의 색이라도 색의 질감이나 채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차이는 물론 자연광과 플래시 빛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사진의 근본적인 속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김정현_multiplet of silent_tree #9981_사진_2007

시각적 무의식으로서 사진 ● 흔히 사진은 빛으로 새긴 이미지라고 한다. 빛이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통제된 어두운 공간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와 구멍 밖에 있는 물체의 이미지가 비쳐서 맺힌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에서 사진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 사진의 사용은 통제된 어두운 공간을 카메라라는 조그마한 블랙박스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소리와 침묵의 관계와 비교해 보면 빛과 어둠은 그 역의 관계로 이해될 수가 있다. 사진에서 모든 어둠은 빛에 의해 관통된 공간의 축소로써 그 아이덴티티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진을 통한 우리들의 감각의 확장은 카메라에 의거한 공간의 축소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셈이다. 사진기 안에 맺힌 사물의 상이 뒤집혀 있고, 필름에 박힌 이미지가 네거티브로 나타나는 역의 감각 속에서 사진적 사건(photographic event)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단 밀폐된 작은 박스에서 허용된 틈을 통해 빛을 타고 들어온 광입자(photon)가 특수하게 화학 처리된 필름이나 디지털 메모리에 충돌하면서 남긴 흔적은 하나의 사건이자 사고다. 빛 자체가 그려 질 수가 없고 묘사될 수도 없는 만큼 사진은 블랙박스 속에서 나온 엄격한 하나의 결과일 수 밖에 없다. 결과는 그것의 원인을 알려줄 뿐이다. 그래서 그 자체로 충족적이다. ● 이는 내가 자신의 지각 과정에 들어가서 스스로가 의식하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흡사하다. 나에게 의식되는 것은 지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이미지는 무의식에서 형성된 것이고 무의식적 과정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종 다양한 전제는 이미 형성된 이미지 속에 짜 넣어져 있다. 발터 벤야민이 사진을 시각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ness)의 산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연관하여서다. 테크놀로지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물을 인지하는 구성하는 생체적 메커니즘의 소외형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깨어나서 꾸는 꿈 ● 특정한 나무를 낮에 찍으면 빛이 반사되는 나무는 희게 나오고 배경이 되는 공간은 검게 네거티브로 필름에 나온다. 칼라일 경우는 보색으로 나온다. 그것을 다시 인화지에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것이 현상이다. 그래서 찍힌 나무는 우리가 보는 대로 다시 포지티브로 흑백은 흑과 백으로 칼라는 보색의 보색, 원색이 나온다. 자연의 빛에 노출된 나무를 그대로 카메라로 받아들여서 처리했다. 반면에 스톤 김은 빛이 없는 밤에 플래시를 사용하여 빛을 카메라에서 바깥으로 쏘아서 반사된 빛으로 사진을 찍었다. 빛이 처리되는 프로세스를 하나 더 추가함에 따라 필름에는 나무는 검게 배경 공간은 희게 나와서, 네거티브가 포지티브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을 그대로 인화하면 네거티브한 이미지로 현상된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로 음양의 차원을 뒤집어주면 포지티브한 결과가 얻어진다. 결국은 네커티브의 네거티브의 네거티브라는 삼중 네거티브로 포지티브한 결과가 얻어지는 것이다. ● 이렇게 음양이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사진이 가졌던 외연적 성격이 재 외연화되면서 두 번째 네거티브가 내용으로 변하면서 그 색채도 외부적 형태를 보여주는 지표에서 내면적 속성을 은유하는 상징으로 전환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동양화처럼 먹과 채색이 종이에 빨린 것 같은 느낌이 사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톤 김의 사진에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점차 나무의 형태가 주는 느낌은 희미해 지고 색만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형태가 색채로 드러나면서 나무 자체가 살아있는 정령같이 빛을 발하고, 나무 주변은 축제를 맞이하는 밤의 정원처럼 변해 버린다. 영화 홍보 카피 글처럼 스톤 김의 밤은 나의 낮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 신지웅

 

 

 


번호별로 보기
여러개의 게시물 정리 제목별로 보기 이름별로 보기 날짜별로 보기 조회별로 보기
   zzcchh.com 로 가입바랍니다. 2014/08/19 1100
1359   ending 1.30 2013/01/30 1011
1358   전시정보 1.14 2013/01/13 3189
1357   전시 2013.1.1 2012/12/31 1680
1356   전시 12.20 2012/12/20 1327
1355   전시 2012.11.27 2012/11/27 1663
    [re] 전시 2012.11.27 2012/11/30 1882
1353       [re] 전시 2012.11.27 2012/12/09 1850
1352   2012 전시정보 2012/11/15 1474
1351     [re] 2012 전시정보 2012/11/15 1101
1350       [re] 2012 전시정보 2012/11/15 1200
1349         [re] 2012 전시정보 2012/11/20 654
1348  비밀글입니다 11.21 memo 2009/04/08 5
1347   전시 3.30 2009/03/30 603
1346     [re] 전시 3.30 2009/04/01 547
1345   전시 3.13 2009/03/13 596
1344     [re] 전시 3.16 2009/03/16 598
1343   전시 3.4 2009/03/04 566
1342   전시 2.27 2009/02/27 596
1341   전시 2.24 2009/02/24 527
  1 [2][3][4][5][6][7][8][9][10]..[68]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