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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11-20 20:43:53, Hit : 664)
[re] 2012 전시정보
    
 

 

            

회화의 예술 The Art of Painting

            

2012_1121 ▶ 2012_1230 / 월요일 휴관

            
                
                
홍경택_선물_캔버스에 유채_24.3×33.4cm_2010
            

            

초대일시 / 2012_1121_수요일_05:00pm

            

프리젠테이션 / 2012_1128_수요일_03:00pm_정수진

            

참여작가 / 남경민_서상익_이동기_정수진_홍경택

            

기획 / 이진숙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Tel. +82.720.1524~6 hakgojae.com

        

        

회화의 예술 ● 전시의 제목 『회화의 예술 (The Art of Painting)』은 베르메르의 작품에서 제목을 빌어왔다. 베르메르의 「회화의 예술」은 영광스러운 회화의 세기인 17세기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중략) 츠베탕 토도로프는 그의 저서 『일상 예찬』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귀 기울일 만한 중요한 지적을 한다. 한 시대가 위대한 시대임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는 새로운 세계관과 자극이 모두를 생산적으로 만든다는 점, 여러 대가들 외에도 평균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들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회화적인 실천이 당대의 상식과 일반적인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적인 진실에 도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략) 17세기야 말로 어떤 영역에서보다 회화가 시대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가장 빠르게 도달해서 꽃을 피웠다는 말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처럼 회화가 승리를 구가할 만한 세기였다. ● 매개론의 주창자 레지스 드브레도 『이미지의 삶과 죽음』에서 이와 비슷하게 회화를 포함한 이미지들에는 동시대의 철학이나 사회과학보다 앞선 현실 인식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고방식, 과학적 패러다임,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를 알고 싶으면 도서관보다 차라리 현대미술관으로 가라"고 말한다. (중략) 이때 레지스 드브레가 말하는 이미지는 회화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진, 비디오 아트, 영화, 광고, 만화 등 다양하다. 심지어는 회화 역사의 종결이 이미지 역사의 종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홍경택_NYC 1519 part 1_리넨에 유채_194×259cm_2012
        

        

손 안에 들려져 있는 웨어러블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우리 모두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이미지 생산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는 차고 넘쳐서 범람하여 무의미해지기까지 했다. (중략) 내가 다른 글에서 썼듯이 "백남준에 의해서 본격화된 미디어 아트가 디지털 혁명과 대중문화의 발전을 통해서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켈란젤로가 먹었던 유모의 젖에는 대리석 가루가 들어있었다면, 현대의 젊은 예술가들이 어린 시절 먹는 분유 속에는 만화영화와 게임이 들어있는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림을 사랑한다. 궁금하다. 왜 회화는 계속되고 있는가? ● 나는 이 글에서 재현이론, 반재현이론, 재현에 대한 재현 이론, 평면성 이론 등 회화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온 논의를 반복하며 지면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진부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달리 회화에 대한 유일한 이론이 아니라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회화가 벌여온 엔드 게임의 다양한 형태일 뿐이다. 20세기 이후 회화의 종언은 여러 번 선언되었지만, 회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경영학의 교과서 문구를 실현하듯이 매 위기의 순간, 회화는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내었다. 종언을 고하는 행위는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관행으로는 존립이 불가능할 것 같은 위기감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는 '생명연장책'이다. (중략) 21세기가 된 상황에서 20세기 후반기를 지배했던 이론(특히 형식주의 이론)은 그 시효를 다한 듯이 보인다. 만약에 이 이론들의 여전히 유의미 하려면 새롭고 획기적인 실천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교호작용은 분명 흥미로운 실천을 낳았다. 그러나 그 이론이 마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서 창작에 작동을 할 때에는 예술을 황폐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1990년 이후 한국미술의 양상은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지금은 모두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시점이다. 어쩌면 새로운 엔드 게임을 벌이기 위한 숨 고르기 일지도 모른다.

        

        
            
            
남경민_클림트 작업실_리넨에 유채_145.5×112cm×2_2012
        

        

이번 전시에는 이런 변수와 별 상관없이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화가들 남경민, 서상익, 이동기, 정수진, 홍경택이 전시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신념, 혹은 무관심으로까지 보이는 그 뚝심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싶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궁금하다.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 "왜 그림을 그리는가?"이다. 큰 문제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거쳐서 실천하며 대답해야 할 큰 문제이다. 그러나 던진다. 대답하기 쉽게 좀 쪼개서 문제를 던진다. 21세기에도 회화가 존속한다면 근거가 무엇인가? 그리고 본인 스스로는 왜 그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작가들은 우선 작품으로 답을 하기로 한다. 작품과 함께 도록에 실린 긴 대담을 실어서 소통을 보다 원활히 해본다. 기획자의 장황한 설명으로 관람객과 작가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담백하게 작가들의 육성에 귀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전시는 진행된다. ● 관람객들은 이 작가들과 나눈 진솔한 대화들을 흥미롭게 귀기울이길 바란다. 유행하는 담론의 틀에 맞춘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모두 진솔하게 작가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서상익을 제외하고는 모두 60년대 후반생의 대부분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로 데뷔한지 길면 20여 년 짧으면 10년간 작업을 해온 중견 작가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작업의 뒤안길에서 그들이 느낀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것, 방향 제시가 아니라 중간 점검이 전시의 목적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그들의 작업이 더욱 심화되고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 돌아봄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잘 알려진 작가들의 변화와 혁신의 순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사각의 평면이라는 회화의 공간은 그들에게 지옥일까? 천국일까? 새로움이 미덕이 아닌 이곳, 구상화에서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역사가 축적되어 있는 이곳, 회화의 공간에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서상익_예술가의 신전 - J.뒤뷔페_캔버스에 유채_27.3×19cm_2012
        

        

남경민은 기존의 「화가의 아뜰리에」시리즈를 더욱 숙성시켜서 발표한다. "캐주얼한 분위기의 회화적 식탁"을 마련하고 치유와 소통이라는 예술의 몫을 차분하게 수행한다. 서상익은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와 미술관을 둘러싼 이야기를 중심으로 회화에 관한 자기 생각을 펼쳐나간다.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로 그들의 작업 방식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그는 회화에 대해서 더 많은 믿음과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동기는 팝아티스트라는 규정을 넘어서 사회의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를 포함하는 메타 미디어적인 작품을 꾸준히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추상작업과 또 대중매체에서 제공되는 이미지의 상투성을 담아내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정수진은 그 동안 오랫동안 공약해왔던 새로운 시각 이론을 발표하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도 함께 선보인다. 홍경택은 지금까지의 평면적인 작업과는 달리 회화적인 깊이를 추구하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세속적인 가운데서 성스러운 땅이나 초월적인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선과 악"이라는 오래된 인간의 문제 또한 끄집어 낸다. 이런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탐구는 예술이 오랫동안 담당해왔던 영역이기도 하다.

        

        
            
            
이동기_코카인_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아크릴채색_210×200cm_2012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속에서 몇 가지 아주 큰 현재적 진단을 의미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 번째는 기존의 회화에 대한 형식주의적인 이론이나 내용 중심의 이해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논의였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한 시기가 끝나면 종합의 의지가 강해진다. 결국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으면서도 새로운 지점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추상화와 구상화에 대해 여러 작가들과 나눈 결론은 그 양자가 초기의 추상화 주창자들이 주장했던 것만큼 커다란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논의가 가능한 것은 회화의 역사가 그만큼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화들이 차용, 패러디, 오마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된 회화의 역사를 이용하면서 메타 페인팅(meta painting)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미 회화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행해졌다. 여기서 늘 새로울 것을 강요 받는 예술창작의 본성상 그만큼 회화의 여지는 좁아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좁아진 영역에서의 새로움을 일구어내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자부심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두 번째로 화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회화의 존립 가능성은 바로 '인간' 자체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손으로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고, 구현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회화라는 것이다. 인간이 육체를 가진 존재인 한, 인간이 살아있는 한, 평면에 어떤 이미지를 그리려는 욕구는 본능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혁명으로 소통의 간접성이 증대되고 모든 것이 정보로 환원되는 비물질화, 추상화 과정이 가속화 되는 가운데, 구체적인 것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리라는 예측 속에 굳건히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물질성을 가지고 있는 회화는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수진_형상의 종류_캔버스에 유채_15.8×22.7cm×64_2012
        

회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나누는 길의 끝에 우리가 만나는 것은 예술가들이다. 어쩌면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라는 곰브리치의 유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각의 평면은 그들에게 천국일까, 지옥일까?라는 소박한 질문에 어느 정도 답도 얻은 것 같다. 그것은 행복한 지옥이자, 불행한 천국이었다. 남경민의 표현대로 "회화와 (그들의) 관계는 팔과 다리와의 관계, 마음과 육체와의 관계라 할 만큼 밀접하고도 가까운" 관계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남경민, 서상익, 이동기, 정수진, 홍경택 이 5명의 작가가 한국 회화의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한국 회화의 매우 중요한 일부이다. 이번 전시는 그들의 생생한 육성에 귀 기울이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이진숙

 

 

            

유형의 감성 Sensitive Tangibility, Tangible Sensitivity

            

문준용展 / Joon Y. Moon / 文畯鏞 / installation 2012_1121 ▶ 2012_1127

            
                
                
문준용_Inter-Scenery_LCD, pull-chain 스위치, 아두이노, 키넥트, 컴퓨터프로그램, 골격인식,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2
            

            

초대일시 / 2012_1121_수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3 www.gallerygodo.com

        

        

문준용은 모션그래픽스를 거쳐 현재 강사, 프로그래머, 디지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증강현실 등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혼합된 인터랙티브 작품을 위주로 테크놀로지 뒤에 숨은 감성을 세상에 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 MOMA를 비롯하여 FILE, Onedotzero, Microwave,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등에 전시되었다.

        

        
            
            
문준용_Inter-Scenery_LCD, pull-chain 스위치, 아두이노, 키넥트, 컴퓨터프로그램, 골격인식,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2
        

        

Inter-Scenery ● 참여자의 실루엣을 가상공간 속에 그려내는 인터랙티브 설치영상이며, 휴먼 풀바디 인터랙션이다. 나는 관람객과 스크린, 전시공간, 그리고 영상 안의 가상공간을 아우르는 내러티브 환경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풍경'이라 부름직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작품에 참여하는 관람객들의 풍경과, 실루엣이 삽입된 가상공간의 풍경, 가상공간이 삽입된 전시공간의 풍경, 최종적으로 이렇게 여러 풍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스크린에 의해 괴리된 현실과 가상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풍경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이는 참여자에게 현실과 가상,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공존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문준용_Augmented Shadow_프로젝터, 적외선조명, 적외선카메라, 컴퓨터프로그램, CV, ARToolKit, 테이블, 아크릴박스,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0                 
                
문준용_Augmented Shadow_프로젝터, 적외선조명, 적외선카메라, 컴퓨터프로그램, CV, ARToolKit, 테이블, 아크릴박스,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0
            

            

Augmented Shadow ● 「Augmented Shadow」는 디스플레이가 되는 테이블 위에 사용자가 움직일 수 있는 큐브의 그림자를 인공적으로 생성하는 장치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림자가 빛의 각도에 따라 왜곡된 실루엣을 보여주며 그로부터 종종 판타지가 생겨난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이 장치의 그림자들은 사실적인 물리법칙에 따라 큐브의 바로 밑에 빛의 각도에 맞춰 투영된다. 하지만 그 형태는 큐브가 아닌 그림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변하며 다른 여러 상상의 생물체들과 상호 공존한다. 그들은 사용자가 이 장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행동하며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사용자들은 큐브를 통해 빛과 그림자를 제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이 생태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 구성원들 사이의 연쇄 반응을 이끌어 낸다. 사용자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개미집을 가지고 놀듯이 이 생태계에 직접 참여하거나 혹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마쿠로 쿠로스케 테이블 ● '이웃집 토토로'의 마쿠로 쿠로스케와 소녀의 인터렉션을 모티브로 한다. 소녀는 이 미지의 생물을 처음 마주쳤을 때 두려움을 느끼지만 곧 호기심을 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으로 잡아보려 한다. 마쿠로 쿠로스케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나타난 침입자를 피해 달아나지만 다시 눈치를 보며 돌아와 새로운 동거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이렇게 이어지는 일련의 경험-새로운 세계의 발견, 관찰과 상호작용, 학습, 그리고 공존-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환경을 티 테이블이라는 일상 공간에 구현하고, 최소한의 규칙만을 지정해 자유로운 인터렉션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 금산갤러리

            

            
                
                
문준용_마쿠로 쿠로스케 테이블_LCD, 적외선조명, 적외선카메라, CV, 컴퓨터프로그램,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1
            

재매개의 빛이 주는 영적 판타지의 세계-문준용의 뉴미디어아트 - 유기체로서의 확장된 그림자 ● 가로 놓인 흰 테이블은 직사각형이다. 윗부분이 반투명한 아크릴과 같은 재질로 이루어졌고, 성인이라면 허리를 굽혀 그 위를 만지기에 맞춤한 높이다. 그 위에는 희기도 하고, 투명하기도 한 큐브들이 아무런 계획 없이 놓인 것처럼 자유롭게 흩어져 있다. 그들 사이를 점하고 있는 새떼, 자그마한 집, 마치 기호와 같아 보이는 사람 그리고 나무들이 그림자 형태로 존재한다. 이른바 가상현실의 도상(icon)들이다. 그 도상들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어느 동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양 고요하고 정적인 실루엣으로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준용의「확장된 그림자; Augmented Shadow」(2010)는 이처럼 고요하고 정적인 이미지로 그린 듯이 놓인 작품이다. 다가선다. 테이블 위의 큐브를 여기저기로 움직여 보기로 한다. 이때 경이로운 변화의 시점을 맞게 된다. 고요하고 정적이었던 실루엣들이 한꺼번에 난만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큐브에 상응하듯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하고, 몇 그루의 나무는 급히 생장하여 움직임을 시작하며, 새떼가 새파랗게 추운 날 둥지로 깃들기 위한 것처럼 날기 시작하고, 다른 큐브들 뒤로 감추어진 집들의 그림자가 각도를 달리하며 살아 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든 요소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한 요소가 다른 요소들과 관계해 먼 곳은 가까움을, 가까움은 멂을 간섭하고 스며들기를 반복한다. 큐브가 고요하게 움직이면 그 모든 것들이 숨죽이듯 움직이며, 요란한 큐브의 움직임은 급작스런 요소들의 움직임을 불러낸다. 하지만 큐브(도구)의 움직임과 요소들의 움직임(이미지)은 실제의 고리에 의해 움직이듯 끊어짐이 없다. 관람자는 그렇게 작품과 대화하고, 작품은 그렇게 관람객과 호응한다. 문준용과 재매개 ● 미국의 대표적인 뉴미디어 연구자인 볼터(J.D.Bolter)와 그루신(R.Grusin)은 뉴미디어아트(New media art)의 속성을 재매개(remediation), 비매개(immediacy), 하이퍼매개(hypermediac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 다소 황망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사실 이 개념들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예술의 속성을 설명한 데 불과하다. 뉴미디어아트가 기존의 전통적 방식의 예술 형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매체와 관람자와의 적극적인 상호성(interactive)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즉각적인 피드백(feedback)에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속성이 위의 세 가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알고 보면 모든 뉴미디어아트는 이미 존재했던 미술작품의 형식, 문학·영상작품의 이야기 구조, 음악의 서정성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된다는 것이다. 볼터와 그루신은 바로 이 개념을 재매개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자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예술의 형식과 내용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일단(一端)이며, 뉴미디어아트의 존재 기반이기도 하다.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아트의 경우라도 재료·기법에서의 진보성과는 달리 그 내용과 형식에서는 제도화된 예술과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문준용의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을 활용한 위의 작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인다. 여기에「Image Processing Application」(2009)이라는 작품에서 시도한, 사진작가 김아타의 'Indala' 프로젝트를 위한 디지털 이미지 처리 어플리케이션도 마찬가지로 재매개 과정을 보여준다. 대형 이미지 1장만을 사용하여 그것이 스스로 복제되고 생성되어 겹쳐 마침내 회화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과정은 그대로 재매개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회화'로의 진입인 것이다. 이 작품은 언뜻 저 유명한 릴리언 슈워츠(Lillian Schwartz)의「모나레오(Monaleo)」(1987)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모나레오」가 디지털 기술로 합성한 초보적인 디지털 회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문준용의「Image Processing Application」은 자기복제 기술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원본으로 삼아 그 속에서 끊임없는 세포분열의 과정을 거친 본격적 디지털 회화라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시도로 보인다. 한 장의 사진이 곧 원본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같은 표면에 그것의 복제가 수없이 겹쳐져 생성되는 이 기묘한 디지털 회화는 원본과 복제의 공존이면서 그 자체가 또 다른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는 연이은「Parsons Thesis Symposium ID」(2009)로도 연결되는 경향으로 여기에서도 역시 그는 모션그래픽스를 사운드 분석 및 시각화에 이용하여 독자적인 시각 환경을 만들고 있다. ● 이처럼 문준용은 일반에게는 생소한 동작 인식에 기반을 둔 컴퓨터 비전과 자기 복제라는 이미지 분석·창조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현해내는 세계는 따뜻한 감성이 주가 되는 이야기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작품이 문학적 서사 구조와 조형예술의 재현적 속성이 결합된 형태라는 것을 설명 가능하게 한다. 관람자(사실 인터랙티브 아트에서는 관람자라기 보다는 '참여자'가 더 적합한 용어일 것 같다)가 큐브를 여러 각도, 다른 힘과 속도로 조작하면서 얻게 되는 것은 동작 인식이라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과정적 프로세스와는 별도로 최종적으로 눈앞에 재현되는 이미지와 그것의 이야기 구조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서 큐브는 '참여자'의 머릿속에서 조합되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현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로 머문다. 이것이 우리의 흥미를 끄는 요소 중 하나인데, 큐브는 존재함으로써의 감상의 대상이 아닌, 조작을 함으로써 남다른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매개라는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조작을 하는 도구는 그 자체로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이미지, 사운드, 움직임이라는 결과물을 얻게 하는 도구로 그쳐야 하며, 이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본질적 속성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마치 우리가 회화작품을 감상할 때 액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내용을 보는 것, 혹은 텔레비전이나 모니터를 볼 때 액정 혹은 그를 둘러싼 베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구현해내고 있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문준용의 뉴미디어아트는 도구적으로는 첨단성을 지니지만, 그 내용은 이미지의 재현 내지 미메시스(mimesis)적인 도상이 담보하는 정서적 차원의 예술을 향하고 있다고 보인다. 뉴미디어아트가 그 도구적 측면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결국 그것이 지향하고 편입되어야 하는 영역이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준용은 적절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앞서 이야기한 재매개와 비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이퍼매개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재매개, 비매개가 미학적 차원의 논의라면 하이퍼매개라는 개념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적 차원의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개념은 보통의 예술작품, 특히 영상이나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선형적인(linear)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한 지점에서 전혀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뉴미디어아트의 속성을 설명하는 말이다. 앞서 본 문준용의 작품에서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 비전에 따라 참여자마다의 조작으로 인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가 생성되고 변화하는 양상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개념으로 보인다. 사실 이 하이퍼매개는 관람자 혹은 참여자의 의식 바깥에서 작동하는 원리이므로 다른 두 개념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뉴미디어아트의 속성이자 문준용의 작업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예컨대 그의「메두사Medusa」라는 작품에서는 하이퍼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서 생성적 그래픽(Generative graphics; algorithmic graphics)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녹화되어 있는 이미지가 나오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계속 생산해내는 기술인데, 음악과 이미지가 일체가 되어 종합적인 매개성을 확보하고 있다. 역시 참여자가 스크린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몸을 움직이면 그 각도에 따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Body Pen」도 생성그래픽을 이용하여 하이퍼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문준용의 빛, 영적 판타지 ● 문준용의 뉴미디어아트에서 구현해내는 컴퓨터 비전이나 생성그래픽 등과는 별도로, 혹은 그와 맞물려서 주목을 요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빛이다. 물론 지금 논의하려는 빛은 뉴미디어아트의 일반적인 속성과도 같다.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비물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빛 내지 광선은 조형예술에서 일반화된 소재로 도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준용은 빛을 소재 내지 재료로 삼지만, 그가 다루어내는 빛은 그저 거기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그에게 빛이란 앞서 서술했듯이 재매개와 비매개의 경계에 위치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자의 심리적 동인을 환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좀 더 들어가자면 문준용의 빛은 '시각 신경을 자극하여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전자기파'이기도 하면서 '무엇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나 '표정이나 눈, 몸가짐에서 나타나는 기색이나 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점이 문준용의 작업에서 꾸준히 읽어내고 느낄 수 있는 특성이라고 보이는데, 이는 예의 감성에 기반을 둔 재매개성이라는 그만의 독특함을 발현하는 지점인 것이다. ● 이처럼 빛을 심리적 동인의 주된 요소로 사용한 예는「마쿠로 쿠로스케 테이블」(2011)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처음 살펴본「확장된 그림자; Augmented Shadow」와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즉 티 테이블이라는 형식도 그러하거니와 참여자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끊임없이 형식요소들이 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타이틀인 '마쿠로 쿠로스케'라는 이름이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 소녀가 이사한 첫날 짐을 옮기고 집 청소를 하는 도중에 만난 숯 검댕이 같은 것들을 말한다고 하면 이미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미지의 생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심리적 이질감과 두려움 그리고 곧이어 마주하게 되는 호기심 등을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문준용은 여기에서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정서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로 빛을 도입하는데, 사면이 나무의 그림자로 둘러싸인 공간에 손이나 다른 물체를 대면 그 안에서 점, 선, 기호와 같은 여러 가지 모양의 작은 빛이 형형색색 빛이 나도록 설계되었다. 이를테면 책을 그 위에 놓아두고 살짝 책을 들추면 그 안에서 신비하게 빛나는 여러 빛깔의 광선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은하수와 같이 어둠 속을 밀도 있는 작은 형광색의 빛이 가득한 체험은 참여자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동화적 공간 안에서 비밀스러운 놀이를 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해 주어 그 자체로 특별한 맥락을 점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물체이든, 어떤 재질이든 상관없다. 그저 어둠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안에는 역설적으로 찬란한 빛을 담게 될 테니 말이다. ● 이러한 점에서 문준용의 작업은 정서적 재매개의 경향을 가진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즉 문학, 영상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인터페이스 속에서 참여자가 스스로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 속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줌으로써 참여자는 매체를 의식하면서도 이내 그것에 동화되는 자신을 보게 되는 바, 이는 재매개의 비매개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사례인 것이다. ●「마쿠로 쿠로스테 테이블」에서 시도한 판타지의 기표로서의 빛은「Luzes Relacionais」(2010)와「Projection Mapping for Sae Byung Kwan」(2010)에 이르러서는 구체적으로 영적(靈的) 판타지라는 상징이 더해진다. 이는 통영 세병관을 모티브로 한 후자의 경우에 더욱 두드러지는데, 문준용은 조선시대의 이 기념비와 같은 군사용 건축에 빛이라는 영적 판타지를 시각화하는 요소를 첨가함으로써 군사지휘소라는 구체적인 맥락을 떠나 마치 진공상태와 같은 탈 용도·탈 지역적 맥락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대상이 가진 역사성을 뛰어넘어 그것의 오브제로서의 성격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대상의 의미를 '영험함'이라는 작가 스스로가 의도한 의미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새로움을 탐색해야 할 그의 뉴미디어아트 ● 알다시피 뉴미디어아트의 존재는 새로움을 그 전제로 삼는다. 물론 새로움이라는 가치는 예술 일반에 해당하는 공통적 속성이기는 하지만, 새로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뉴미디어아트는 특히 최신의 재료와 공법에 매몰되곤 하는 강박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새롭고 신기한 것에 대한 한때의 호사취미 정도로 끝나지 않으려면 오히려 새로움을 넘어서는 예술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최신의 기술을 도입하여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고 하여도 그것은 곧 하릴없는 세월의 파도 속에서 '뉴(new)'라는 접두어를 붙이기에 난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뉴미디어아트가 예술적 계보 위에 놓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예술적·미학적 담론 안에 위치하여 도구적 자세를 지양하는 전향적 사고를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문준용의 작업은 그런 면에서 대개의 뉴미디어아트와는 조금은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는 듯하다. 첨단의 매체와 기법이 실험적 태도 위에서 사용되면서도 그것들이 갖는 기표적·상징적 의미의 중심에서 비껴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이후의 행보에 대해 궁금함을 갖게 한다. 고단한 작업의 방식만큼 다작과는 거리가 먼 그이지만, 작품마다 보여줄 남다른 의미를 기대하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기대는 아닐 것이다. ■ 박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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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ARD DISORDER

                

한경우展 / HANKYUNGWOO / 韓庚佑 / installation.painting 2012_1122 ▶ 2012_1221 / 일,공휴일 휴관

                
                    
                    
한경우_WHITE NOISE-Ⅰ_캔버스에 유채, TV, 감시카메라_225×30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한경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12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_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살롱 드 에이치 Salon de H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번지 신관 1,2층 Tel. +82.2.546.0853 www.salondeh.com

            

            

한 과거의 철학은 우리 눈 앞의 대상이 실체인지 아닌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사물을 인식할 때 과거의 경험과 습관을 통해 추상화시키게 되는데, 눈 앞에 '테이블'을 보고 그것을 직관적으로 '테이블'라는 범주 안에서 인식하는 것은 선험적 경험에 의해 그것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인지능력은 단편적인 시각과 생각에 의존해야 되는 것이라 "A=A"라 설명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11월 22일부터 12월 21일까지 살롱드에이치에서 진행되는 한경우 개인전『STANDARD DISORDER』에서는 어떤 대상을 판단하는 보편적 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고 오류와 혼란을 동반하는 가변적 기준임을 보여준다. 즉 주변의 대상을 설명하기 위한 기준은 관습, 문화적 동의에 의해 임의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기준에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변수가 잠재하고 있다.

            

            
                
                
한경우_Constant moon_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12                     
                    
한경우_Constant moon_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12_부분
                

                

지구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기 위해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Goldie Locks Zone"이라는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거리의 기준이 존재한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지금 현재보다 가까워 진다면 북극의 얼음은 다 녹아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고, 멀어진다면 기온이 낮아져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구가 될 것이다. 한경우의 신작 「Not to close, Not to far」(2012)에서는 앞뒤로 움직이는 카메라에 의해 열풍기의 크기에 변화가 생겨야 하지만 열풍기의 크기는 화면 속에서 임의의 기준을 설정한 채 고정된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다. Goldie Locks Zone에서 착안하여 제작된 이 설치작업은 열풍기를 촬영하며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는 카메라는 현실에서 너무 더울 수도, 너무 추울 수도 있지만 영상 안에서 둘 사이의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램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더 나아가 어떤 이미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게 되는 기준에 강제적으로 이미지를 맞추게 되는 사람들의 습관화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밤에 보게 되는 달의 모습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같은 형상과 같은 크기로 보여진다.「Constant moon」(2012)은 다양한 크기의 사진 이미지 속에서 절대적 크기와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의 비율은 달라지지만 그 안에 자리잡은 달의 형상과 크기는 똑같다. 밤 하늘의 달을 바라보다 어느 누구에게나 같은 위치에 같은 형상으로 읽혀지는 달의 모습이 절대적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실제의 달의 크기와 무관하게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절대적 기준으로 인식되는 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한경우_Typical tower_모형 타워, 의자, 나무_100×35×35cm_2012
                

                

우리가 '책상'이라는 단어적 기표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연상하게 되면, 네 개의 다리에 평평한 사각형 판이 올려져 책들을 올릴 수 있는 모습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세 개이고 원형의 울퉁불퉁한 판으로 이루어진 사물을 보더라도 우리는 '책상'이라는 일반적 기준에 맞춰 인식하게 된다. 즉, 사람들이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자신에게 익숙하고 일반화되어 있는 기준적 이미지에 맞추어 사물을 평균화시켜 인지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한경우는 자신이 임의적으로 변형을 준 사물을 사람들에게 가장 기준이 되는 모습, 즉 관객들이 선험적으로 습득하여 인지하고 있는 절대적 형상으로 이미지를 맞추는 작업을 선보인다.「Level Table」(2012)은 물건을 올릴 수 없게 곡선으로 휘어진 테이블이 카메라를 통해 TV화면 속에 투사된다. 화면 속 이미지는 TV 표면에 놓여진 자석의 자기장으로 인해 왜곡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왜곡은 휘어진 테이블의 실체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준적 표본의 이미지로 바꿔놓는다. 추상회화를 연상하게 하는 3m의 평면 캔버스 작품「White noise」(2012)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현대미술을 마주하듯 난해하고 어렵게 이미지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캔버스 옆에 놓여진 TV를 통해「White noise」의 이미지가 아날로그 TV의 노이즈 화면임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우리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는 기준에 맞춰진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한경우 작가가 보편적 기준에 부합하게 만든 이미지는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자신이 경험하고 인지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만 사고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한경우_LEVEL TABLE_나무, TV, 감시카메라_90×200×70cm_2012
                

한경우의 이전 작품에서는 실시간 영상을 통해 투사되는 일상의 오브제들이 그것의 본질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이미지로 해석되는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이와 같이 공간 안에서의 대상과 시각과의 관계로 인해 한가지 현상을 바라볼 때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가변적 기준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선보인 한경우 작가는 본 전시에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절대적 기준에 맞추어 사물을 판단하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임의적으로 설정한 절대적 기준을 보여주는 작업을 선보이게 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판단함에 임의의 기준을 필요로 하기에 기준을 설정한 후 비슷한 대상들을 한 범주 안에 강제적으로 맞추어 사고하게 되는데, 이러한 무질서 속에서 자리잡은 기준을 Standard Disorder라 한다. 이 또한 가변적이고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물을 사람들이 인지하는 보편적인 형상으로 평균화시켜 "절대적"이라는 명제를 역설하게 된다. 본 전시에는 설치작업 4점과 평면 5점, 총 9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 이유영

 

 

    

노르스름한

    

김시연展 / KIMSIYEON / 金始衍 / photography.installation 2012_1122 ▶ 2012_1230 / 월요일 휴관

    
        
        
김시연_노르스름한_C 프린트_130×20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510b | 김시연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주말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www.doosangallery.com

두산갤러리 서울에서는 11월 22일부터 12월 30일까지 2010년 제 1회 두산 연강예술상 수상작가인 김시연의 『노르스름한』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사진과 설치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 김시연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금이나 비누, 단추, 바늘, 계란 껍질, 지우개 가루 등을 이용한 설치작품과 이들을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여,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소외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왔다. 작가의 작품에 주조를 이루는 흰색은 연약하지만 미묘한 존재감을 가지고 삶에서 느끼는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감정들, 슬픔이나 혹은 불안 등을 상징한다. 흑백이나 모노톤을 유지해온 그의 작품은 2011년 'Thread' 연작을 기점으로 정확하게 규정된 색이 아닌 푸르스름한 색이 등장하면서 색상이 주는 특유의 감성을 포착하기 시작했다.

    
    
김시연_노르스름한_C 프린트_130×200cm_2012         
        
김시연_노르스름한_C 프린트_130×200cm_2012             
            
김시연_노르스름한_C 프린트_100×150cm_2012                 
                
김시연_노르스름한_C 프린트_80×100cm_2012                     
                    
김시연_노르스름한_C 프린트_130×200cm_2012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노르스름한' 연작에서는 흰색 화면에 컵, 수저, 달걀 껍질, 비닐봉지, 종이컵 등의 일상의 물체들과 노르스름한 버터나 지우개 가루 등을 테이블 모서리에 불안정하게 배치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위태롭고 불안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 두산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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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nt Scape

한석현展 / HANSEOKHYUN / 韓碩鉉 / photography 2012_1124 ▶ 2012_1219

한석현_Instant Scape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70×85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117f | 한석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124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2_1204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1:00am / 일요일_12:00pm~10:00pm

그문화 갤러리 SPACE OF ART, ETC. 서울 마포구 당인동 28-9번지 1층 Tel. +82.2.3142.1429 www.artetc.org

날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한석현 작가의「인스턴트 스케이프 Instant Scape」연작을 마주하곤 "날 것, 날 것의 풍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이 다시금 나를 파고들었다. 우리는 종종 "자연스럽다."라는 말로 자연을 잘 흉내 낸 것, '자연'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감쪽같은 것들을 지칭하곤 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기 위해 자연을 덜어내고, 덧붙인다. 어느덧 자연스러운 것이 애써 흉내 낸 자연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연스러움을 잘 만들어내는 인간의 행위, '인위'만 남는다. "자연스럽다."는 아주 완성도 높은 인위적인 것의 다른 말이 아닐까. 죽은 나무 조각들(버려진 나무가구, 판자 조각 등)을 이어 붙여 나무를 세우고, 여기에 물을 주며 살아있는 잎사귀들을 키웠던「Reverse-Rebirth project」에서 한석현은 누가 봐도 뻔히 덜 자연스러운, 그래서 미숙하게 인위적인 나무로 자연과 생명을 말했다.

한석현_Instant Scape-The mountain range of Songdo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36×91cm_2012
한석현_Instant Scape-The plain of Songdo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40×55cm_2012

그는 이번「Instant Scape」에서 좀 더 우연적인 요소들을 추가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거친 지형들은 사실 포클레인이 쌓아 올린 공사장의 흙더미들이다. 바람에 깎이고 비에 다져진 이 흙더미들은 작은 절경을 만든다. 이 절경은 마치 화성의 분화구나 수 천년을 견뎌온 절벽 같지만 그를 쌓아 올린 포클레인에 의해 곧 다시 무너지고 사라져버릴 한시적인 절경이다. 사진의 한정된 프레임이 그 안에 담긴 풍경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오해를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사진으로 소멸될 순간을 고정시키고, 흙더미의 풍경을 대단한 절경으로 만든다. 상대적인 것들은 뒤엉킨다. 안은 밖과 뒤엉키고, 순간은 고정과 뒤엉키고,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과 뒤엉킨다. 인위적인 것에 날 것이 비춰 보이고, 날 것에 인위적인 것이 비춰 보인다. 그 비침을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더 이상 날 것을 보겠다고, 있지도 않은 향수에 젖지 않기로 했다. ■ 이민지

한석현_Instant Scape-The valley of Songdo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36×161cm_2012
한석현_lnstant Scape-The red hill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100×140cm_2012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 중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라는 구절이 있다. 어릴 적에는 이 10년이라는 시간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져서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존재하던 집들과 놀이터, 문방구, 세탁소까지 모든 것이 태고 적부터 거기에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의 삶보다 오래된 것들이 상대적으로 내게는 항상 그 곳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것 일 테다. 콘크리트와 벽돌집들은 마치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항구적으로 보여졌다. 마치 자연이 변화해 가는 중 임에도 불구하고 그 오래 시간성에 의해 인간의 짧은 삶을 잣대로는 항구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 지금에 있어서의 10년은 나에게는 나름대로 예측 가능한 시간적 잣대가 생겼다. 이제는 1~2년이면 세상이 변하게 되는 것 같아서 곤란할 뿐이다. 어릴 적 미래의 척도처럼 여겨지던 휴대전화와 화상전화가 시골 구석구석까지 가능하게 되는 것처럼 미래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고, 기술과 장비의 발전과 그 교체시기가 빨라지면서 변화의 가속도가 더 빨리 붙고 있음이 느껴진다.

한석현_lnstant Scape-The Mountain of Samjonri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100×140cm_2012
한석현_lnstant Scape-The Mountain side of Samjonri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100×140cm_2012

경외심을 가질 만한 신의 힘처럼 거대한 중장비가 있어서 이제는 없던 산(난지도 하늘공원, 아파트와 빌딩들)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생기고, 강(운하와 수변)이 생기고, 해안선(매립지)이 매끈해 지기도 하는 변화가 이제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풍경이다. 이렇게 옮겨지고 변화되는 상황들 속에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부산물의 풍경들, 그것을「Instant Scape」인스턴트 스케이프라고 부르기로 한다. 일종의 마이크로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공사장에 옮겨진 흙더미들 위로 짧은 기간 동안 풍화와 침식이 일어나면서 생기는 작은 그랜드 캐년 같은 모습에 기반한다. ● 이번에 '그 문화 갤러리'에서 선보이는「Instant Scape」는 이전의 작품들「Super-Nature」시리즈와「Reverse-Rebirth project」와 맥락을 같이 하면서 '우리가 상징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연의 이미지'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이 시대의 모습'들 사이에 존재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 한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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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keeper

김창언展 / KIMIAN / 金昌彦 / painting.installation 2012_1124 ▶ 2012_1220 / 일요일 휴관

김창언_아리랑 스크립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91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603b | 김창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124_토요일_05:3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유진갤러리 EUGEAN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6-7번지 Tel. +82.2.542.4964 www.eugeangallery.com

타임키퍼(Timekeeper)란 '기록 스포츠에서 경기시간을 재는 사람' 혹은 '출퇴근 시간 기록부를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 밴드의 멤버 중 드러머를 지칭하기도 하여 콘서트 중 그레이트 타임키퍼(Great Time Keeper)라는 애칭으로 드러머를 소개하기도 한다. 즉, 타임키퍼란 시간, 박자, 리듬을 관장하는 사람이다.

김창언_아리랑 스크립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91cm×4_2012

음악적 현상을 '그리는 것'은 김창언의 오랜 관심사이다. 김창언은 피아노를 치는 사람을 구상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음악적 현상의 기호화된 체계를 고안하는데 흥미가 있으며, 일상의 사물들에서 들리는 사운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생각해낸다. 가령 소리의 길이가 2차원 공간에서 얼마만큼의 지면으로서의 공간을 차지하는지 추산해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How to make a sign?'과 '아리랑 스크립트'는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 작품들로, 'How to make a sign?' 에서 박스 테이프의 길이는 '찌익'하고 테이프를 뜯을 때 나는 소리의 길이를 연상시키는 지표적 기호이다. 반면, '아리랑 스크립트'는 1박자를 정방형의 사각공간으로 치환하여 그 정방형들이 연결 꺽쇠로 이어진 선형공간이라 할 때, '아리랑'의 첫 소절의 1박자와 반 박자들의 리듬을 공간 패턴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김창언_타임키퍼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0.6cm_2012
김창언_타임키퍼와 헤드뱅잉 머신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우리는 여기서 '리듬'이라는 음악적 현상을 파고드는 시각언어 연구자로서 김창언이 취하는 전방위적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리듬이란 단순히 음악적 현상이 아닌 회화에서도 역동성을 나타내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라고 말한 바 있는 것처럼, '리듬'이 비록 회화의 근원적 문제라 할지라도 김창언은 그것에 대한 매우 실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흔히 '리듬'의 회화적 표현이란 선과 면, 색과 같은 회화적 요소들의 화면 배치와 구성의 문제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김창언은 '소리' 혹은 '리듬' 그 자체와 연관된 오브제를 그리거나 만들고, '리듬'의 현상을 관람자들 스스로 찾아내거나 그가 제시하는 '리듬' 표기법의 기호화 논리를 공유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창언_헤드뱅잉 머신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0.6cm_2012
김창언_감각의 논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0×180cm_2011

특정한 행위를 수반하며 소리를 내는 반복작동형 브리콜라주(bricolage)는 '리듬'에 대한 김창언의 전방위적 기호화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는 특징적인 작업이다. 회화 작품인 '헤드뱅잉 머신'과 '타임키퍼'는 그들이 수행하는 '리듬' 행위 구현을 시각기호로 그려낸 코드화의 도해인 반면, 로보틱스 브리콜라주인 '헤드뱅잉 머신'은 드러머가 정확한 박자를 맞추기 위한 고개짓, 헤드뱅잉을 하면서 스트로킹을 하는 전신 행위를 축약형으로 재현한 설치작품으로 헤드뱅잉 머신의 고개짓이 드러밍이 되어 베이스 드럼을 연주하게 된다. 같은 공간에 설치된 타임키퍼는 어딘가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발바닥으로 땅을 치는 작가(혹은 우리)의 무의식적 행위를 작가(우리)대신 반복한다. 이 두 가지 브리콜라주가 동시에 발산해내는 사운드는 규칙적인 리듬이거나 다소 불규칙적인 엇박자들의 구간이며, 파편적인 라임들의 연속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을 맞이한 관람자들은 또 다른 패턴의 리듬을 부가할 수 있는 밴드의 일원으로서 타임키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비트박스나 가사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기도 할 것이며, 타임키퍼를 따라 발을 구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즉흥적인 임프로비제이션을 관람자들이 스스로 늘어놓도록 하는 것은 김창언이 관람자들과 소통하고자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전시장에 설정해 놓은 상황 밖 일상에서도 관람자들이 즉흥적 타임키퍼가 되어보기를 갈망한다.

김창언_시장의 언어_캔버스에 혼합재료_150×150cm_2010

김창언은 우리의 환경이 풍요로운 소리의 저장고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온갖 물건들이 토해내는 소음들의 공해에 시달린다. 그런 이유로 듣기 좋은 음악파일들만을 휴대기기에 저장해 귓속형 이어폰으로 들으며 다닌다. 그러나 김창언은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감각을 고립시키는 행위로 무한한 정보를 가진 외부환경의 소리와 단절하고 mp3와 같은 대역이 좁은 사운드에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그는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주변의 소음을 리드미컬한 음악적 풍요로 즐기기를 제안한다.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과 환경에서 들리는 잡음들은 잡음이 아닌 비트박스의 짤막한 소스들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이고, 믹싱할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비로소 소음의 공해로부터 벗어나는 지혜라고 귀띔한다. ■ 김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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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지경 朦朧之境

서은애展 / SEOEUNAE / 徐恩愛 / painting   2012_1114 ▶ 2012_1127 / 월요일 휴관

서은애_몽롱지경 朦朧之境_장판지 커팅에 채색, 그림자 연출_149.1×188.3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120f | 서은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1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지금껏 내가 그려왔던 세계는 몽환(夢幻)의 정원과도 같았다. /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오래된 삶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환상의 공간. // 이제 그 정원을 비추던 명료한 빛 사라지고 / 남겨진 간략한 형상 뒤로 검은 그림자의 조각들이 일렁대며 내려앉는다. /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을 것은 남았다. / 세세한 것들을 감춤으로 인해 오히려 드러나는 요체(要體).

서은애_몽롱지경展_갤러리 조선_2012
위◁ 서은애_조우가 鳥友歌Ⅰ_종이에 채색_43.5×49.3cm_2012 중간◁ 서은애_조우가 鳥友歌Ⅱ_종이에 채색_40.8×43.3cm_2012 아래◁ 서은애_화유지락 花遊之樂Ⅰ_종이에 채색_45.5×49.7cm_2012 ▷ 서은애_화유지락 花遊之樂Ⅱ_종이에 채색_106.4×88.8cm_2012
서은애_몽롱지경展_갤러리 조선_2012
서은애_하일녹음담소 夏日綠陰談笑_아크릴 커팅에 프린트_93.3×70cm_2012
서은애_조우가 鳥友歌 : 위로에 관하여_종이에 연필, 채색_2012
서은애_죽림아회도 竹林雅會圖_종이에 채색_146×207.3cm_2012

흐릿한 어두움 속에서 감추어지는 것과 드러나는 것. / 하나로 뒤섞여 분명하게 가늠할 수 없는 실존과 허상. / 그 차가운 경계를 부드럽게 허무는 그림자의 세계. / 놀랍도록 포용적이며 경외스럽도록 안온한 잔영(殘影)의 세계. / 물결처럼 출렁이는 그림자의 흔들림을 쫓아 / 몽환의 정원, 그 신비로운 비밀 속으로 한 걸음 스며들어 들어간다. // 잔영(殘影)의 세계. / 그 몽롱한 아름다움. ■ 서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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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아展 / LEESUNGA / 李聖雅 / painting   2012_1128 ▶ 2012_1203
이성아_Hanging Garden1_한지에 혼합재료_160×10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1208f | 이성아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insaartcenter.co.kr

공중정원. 空中庭園_ticket to hanging garden ●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존재가치를 사회로부터 또 자기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고분 분투하는데, 정한 기준에 따라 이력을 쌓고 외모를 꾸미는 일련의 행위는 흡사 '아무개'라고 이름이 붙여진 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여겨진다. 정성이라는 물줄기가 끊어지면 바로 바스라질 공중정원. 나 역시 작은 정원을 하나 가꾸고 있다. 이 공중정원으로 연결된 길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내가 이 길을 찾는 방법은 주로 관조이다. 기실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어디에나 있고 또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가 인지함으로써 의미를 가지게 된 조각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란 쉽지가 않다. 바람에 날리다 곧 이지러질 꽃잎, 비온 후 물 냄새가 나는 공기, 어제와는 다른 맛의 물 등. 너무나 단순한 현상들을 통해 꿈을, 서정을 이끌어내면 나는 나만의 공중정원에 부어줄 샘물을 하나 더 얻게 된다.

이성아_Hanging Garden2_한지에 혼합재료_160×100cm_2012
이성아_relativity of time1_한지에 혼합재료_80×37cm_2012
이성아_relativity of time2_한지에 혼합재료_80×37cm_2012
이성아_segment_한지에 혼합재료_80×40cm_2012

사실 언제 어떻게 나무 한 두 그루가 자라나서 내가 이것을 정원이라고 인지하게 되었는지 조차 잘 모르겠는데, 키우다 보니 듬성하던 나무들이 최근 부쩍 자라서 잎이 무성해 졌을 뿐만 아니라 그 자라는 속도를 가늠하기도 힘들어졌다. 그 중 몇 그루는 빛의 속도로 자라 나를 절대적인 시간은 필요 없는 차원의 세계로 데려다 주기도 하였다. 이제 이곳에 애써 가꾸어 고립시켜놓은 내 작은 정원의 조각들을 펼쳐본다. ■ 이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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