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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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9-03-16 18:14:48, Hit : 597)
[re] 전시 3.16



이준걸展 / LIJUNJIE / 李俊杰 / printing

2009_0318 ▶ 2009_0324



이준걸_失眠_아퀴틴트, 에칭_40×60cm_2008




초대일시_2009_0318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토~일요일_11:00am~06:30pm




갤러리 영_GALLERY YOUNG
서울 종로구 삼청동 140번지
Tel. +82.2.720.3939
galleryyoung.com






이 환경에서 저 환경으로... 새로운 영역에서 또 다른 영역으로... 누구나 다 새로운 사물을 경험한다. 혹 적응하고 혹 도전하고 또한 도태한다.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받으며 자랐다. 날마다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변화무쌍한 충격을 받으며 끊임없는 곤혹을 느꼈고, 혼자 있기를 즐기고, 홀로 어두운 모퉁이에서 주위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러면서 나의 용망이 천천히 나의 困(적을 포위하여 외부와의 연락을 끊다[출로를 막다]. 겹겹이 포위하다.)을 풀어나갔다...




◁이준걸_困-2_아퀴틴트, 에칭_82×51cm_2008
▷이준걸_困-3_아퀴틴트, 에칭_50×70cm_2008


From one environment to another environment... Under the new changes of the environment to another environment... Everyone experience another new, or habits, or challenge, or back. I am always growing up with a new challenge; it was new starting of life everyday. But it was confusion in the volatile changes. I was faced difficult for all kinds of shock, I had like to stay alone, I felt it was started to change which thing surrounds me in dark. No one to know. And then my ambitions had resolved my problem




이준걸_自画像-1_아퀴틴트, 에칭_40×30cm_2008



이준걸_Mother’s hand_메조틴트_10×10cm_2007


80년대의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인으로서의 歷史와 긍지를 안고 살아왔다. 2002년 중국 延邊大學校 美術학부 서양화과에 입학하였다. 美術교육에서는 중국식 学院派1) 체계의 리얼리즘의 발전을 基本방향으로 하였다. 本人은 改革開放 이후에 태어나 중국 新古典主義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중국의 改革開放 이후 사실주의 绘画를 통하여 본인이 生活하던 사회 환경의 특징들을 소개하게 될 것이며 本人의 다년간의 학습과정에 관한 전제를 작품의 形成배경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 80년대는 중국 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時期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改革開放과 計劃生育 정책의 실시 또한 이 時代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로 인해 타 국가와 옛 중국의 전통은 확연히 차이가 나는 틀이 形成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가정상황은 이 時代에 태어난 사람들로 하여금 특유의 世界觀과 價値觀을 갖게 한다. 改革開放과 사회의 신속한 發展 속에서 이 時代의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進步的인 西方의 現代 사상을 接觸 하며 接受하게 된다. 그러나 문화대혁명과 건국초기의 사회주의 교육과 敎條主義2) 관념이 여전히 존재 하고 있는 父母의 영향을 받아 그들은 부단히 이러한 觀念, 사상들을 打破하기에 힘쓰며 자기 個人의 認識과 사회의 승인을 받기위해 노력한다.




◁이준걸_自画像-2_아퀴틴트, 에칭_40×30cm_2008
▷이준걸_自画像-3_아퀴틴트, 에칭_40×30cm_2008



이준걸_我的老师_에칭_20×30cm_2007


중국의 獨生子女 世代는 정치제도가 만들어낸 하나의 특수한 연령층이며 그 뒤에는 깊은 文化와 경제적인 조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家庭, 한 子女” 정책은 오늘날 여전히 중국의 基本 國策으로 실행되고 있지만 거시적으로는 20세기 60년대 이후부터 중국의 경제적 압박을 緩衝하기 위하여 實施되어온 매우 엄격한 人口 政策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일부 서방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터무니없는 일로 보이지만 중국 내륙에서는 이미 극히 보편화된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政策은 이미 2천년 동안 持續되어 오던 중국 封建社會의 기본 家庭구조를 철저하게 바꾸어 놓았다. 중국의 지난 2천년 동안 發生했던 허다한 사상과 文化와 경제적 혁명도 중국의 가정 本質을 改變 시켰던 적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의 시골에서 아직 중국의 傳統적인 家族 세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다. “多子, 多孫, 多福”과 4세대가 한 지붕에서 생활 하는 것은 중국 옛 傳統 사회의 이론적인 토대의 하나였다. 하지만 20세기 60년대로부터 시작 되었던 計劃生育政策은 이러한 傳統적인 家庭구조를 점차 깨뜨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국 현 時代의 3가구 家庭“ 父母와 한명의 子女”는 단지 중국 傳統의 家庭구조를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웃관계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3가구 家庭은 “家族”을 더 한층 폐쇄적으로 만들었으며 현 중국의 改革開放 現況과는 확연히 상반되는 점이기도 하다. 한 家庭에 한 子女만 있을 때, 또 子女가 그 家庭 내에서 오로지 자신의 父母에게만 의존 할 때, 父母와 子女간의 관계는 이미 옛날의 相互적인 쌍방의 交流가 아닌 동시에, 이러한 關係에는 “Made in China”라는 라벨이 붙게 된다. 社會적인 변형의 양상이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이 시기, 중국과 같이 發展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러한 변형된 광정들이 더욱 복잡하게 나타나게 된다. 新, 舊 사회체제, 秩序와 規範의 병존, 교체와 충동의 국면은 앞으로 장시간 동안 지속 될 것이며 심지어는 모종의 畸形적인 형태로 發生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社會적인 변형 時期는 미래에 대한 열망과 변화가 포화된 시기이며 동시에 허다한 충돌과 矛盾들이 發生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준걸_困-1_아퀴틴트, 에칭_60×40cm_2007


이 時期에 태어난 사람들은 相對적으로 힘들고 落後했던 어제에서 큰 성과를 이룬 오늘날까지 모국에 대한 완정한 記憶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첨단 과학기술이 그다지 發達 하지 못했고 物質적으로 그다지 충족함을 누리지 못했지만 충실하고 소중한 童年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정보통신의 새로운 時期의 신생사물을 接觸한 가장 先導적이고 個性있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 ● 한 家庭 한 子女政策은 “獨生子女”로 하여금 家庭에서 父母의 “유일한 희망”으로, 子女가 일으키는 作用 또한 유일무이한 것 이다. 즉 중국인에게 있어서 子女의 의미는 精神적인 기둥과 희망의 동력이다. “獨生子女”라는 이 세대는 형제자매라는 血緣관계를 離脫하였고 파트너의 성장환경은 형제자매 특유의 깊은 情感과 相互 학습의 機會, 그리고 상부상조의 可能性에서 멀어지게 한다. ● “獨生子女”는 월등한 성장환경 속에서 어려서부터 家庭에서 父母의 주요 관심 대상이다. 이로 하여 자기主張을 두려워하며 동료에게 받았던 상처와 거부감은 심지어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獨生子女”의 父母는 모든 企待를 子女한테 기탁하기 때문에 무거운 心理負擔과 壓力을 부담해야만 하며 성취에 대한 동기가 비교적 높다. 다시 말해서 눈앞의 득, 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은 자아實現에 더 가까이 접근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獨生子女”가 타격에 對應하는 태도가 비교적 낮으므로 인하여 挫折 하였을 때 쉽게 意氣銷沈해 질 수가 있다. ● 敎育形態의 측면으로 볼 때, 敎育形態의 개변은 이런 時期에 태어난 사람들의 人生觀과 價値觀에 커다란 變革을 초래하게 된다. 전통적 사상은 이 세대들에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이와 반대로 그들은 정부의 불량한 行動과 사회의 불평등현상에 대해 극히 敏感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인터넷이라는 公開적인 무대를 통하여 討論과 批評을 표시해 내며 심지어는 이런 수단으로 언론적인 압력을 造成하기도 한다. ■ 이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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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Grid

김현성展 / KIMHYUNSUNG / 金玹成 / painting

2009_0318 ▶ 2009_0331



김현성_BEYOND THE GRID 03-THE FLOWER
분사출력, 보드롱, 은색 아크릴물감, 수성 바니쉬, 볼펜, 유성펜_각 90x60cm_2008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70912i | 김현성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18_수요일_06:00pm

갤러리 도올 기획 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6:30pm





갤러리 도올_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2층
Tel. +83.2.739.1405~6
www.gallerydoll.com






현대 미술의 큰 매력은 어떠한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의도와 실현방법이 다원적 이라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장르의 넘나듬과 매체의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가로 세로로 만들어진 +기호의 수많은 반복을 통해 화면 안을 채우는 작업을 해온 김현성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구체적 형상이 있는 일루젼을 만들어 이전의 +기호들만이 들어있는 추상적 화면에서 벗어나 허구와 현실세계의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 낸다. ● 화려한 도시안 자동차와 지하철이 다니고 쇼윈도가 들어선 곳 그 안에서 현대인들은 정해진 패턴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의미가 줄어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며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되며 그럴수록 불안과 허전함은 커진다. 이럴 때마다 인간은 스스로를 재인식 하려하고 자신을 재교육 한다. 최신의 정보를 알며 매월 매 계절마다 유행 따라 의상과 자동차를 바꾼다. 마치 유행 이라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무의미한 일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강제력을 띤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유행이란 확인되지 않은 불안감을 해방시키는 도구로서 우리의 삶을 채운다.




김현성_BEYOND THE GRID 03-THE FLOWER
분사출력, 보드롱, 은색 아크릴물감, 수성 바니쉬, 볼펜, 유성펜_각 90×60cm_2008



김현성_BEYOND THE GRID 02-THE SWIMMING POOL
분사출력, 보드롱, 은색 아크릴물감, 수성 바니쉬, 볼펜, 유성펜_각 90×60cm_2008


그러나 이러한 점이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에 기호로서만 작용한다는 점이다. ● 보드리야르가 말했던 것처럼 ‘행복할 때에도 불행할 때에도 인간이 자신의 상과 마주 대하는 장소였던 거울은 현대의 질서에서 사라지고, 그 대신 쇼윈도가 출현했다.’ 현대인은 생각하는 인간이 아닌 소비하는 인간으로 변화됐음을 그저 기호성의 만족감으로 성찰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만족감은 자신을 이미지로 맞추어 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며 기호화된 상징성은 의미 없는 홍수로 만들어진 인공 환경이며 자전하는 유행 즉 시뮬라시옹 그 자체이다. ●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것처럼 작가의 작업 안에는 그러한 것들이 존재한다. 화면 안에는 수없이 많은 +기호들이 그리드처럼 존재하고 추상화의 면모를 보여오던 작가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 존재하지 않은 환영적 이미지를 만들어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현성_BEYOND THE GRID 11-THE STOOLS
감삐지, 판화지, 출력, 은색안료, 바인더, 유성펜_각 60×90cm_2009



김현성_BEYOND THE GRID 04-THE CAKE
분사출력, 보드롱, 은색 아크릴물감, 수성 바니쉬, 볼펜, 유성펜_각 60×90cm_2008


작가가 원하는 이미지는 컴퓨터 안에서 캡쳐되고 편집한 후 다양한 종이위에 프린팅 한 후 격자의 그리드 문양과 겹쳐지고 그 위로 자연스러운 페인팅과 펜 작업을 거친 후 코팅으로 마무리 된다. ● 게임 캐릭터와 실내 정물들 그리고 창 밖으로 보이는 수영장 이러한 것들은 마치 하얀 안개가 덥힌 것처럼 뿌옇 고 어떤 것은 형태조차 알아 볼 수 없다. 꿈속이나 어디선가 본 듯한 상황속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작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게임 캐릭터를 관람객이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한다. 마치 시뮬라시옹의 존재처럼 작품안 소재들은 작가의 어떠한 감정 이입도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현성_WARIO GRID_보드롱, 볼펜, 유성매직, 아크릴물감, 수성 바니쉬_57×57cm_2008



김현성_MARIO GRID 01_보드롱, 볼펜염료, 은색 아크릴물감, 수성 바니쉬_53×53cm_2008
김현성_MARIO GRID 02_보드롱, 볼펜염료, 은색 아크릴물감, 수성 바니쉬_53×53cm_2008


마치 현대사회의 기호인 것처럼 어떠한 내용을 전달하려기보다 소재 본연의 의미는 상실되고 만들어진 형상들은 기표로서의 방향으로 제시 된다. 관객의 해석에 따라 긍정과 부정 또는 다양성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게임 캐릭터나 실내정물 그리고 수영장 등은 현실 속에서 존재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사라진 채 작가의 손을 거쳐 허구성을 갖고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다양한 해석을 유도한다. 그러나 단순히 작품을 통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의미가 아닌 열린 의미를 지향하고. 게임속 캐릭터와 다양한 실내 장면들은 연결된 내용이 아닌 본래의 의미를 배제한 채 불연속성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러한 비워놓기와 틈새를 통해서 그 안을 관람객의 상상력을 통해 채워 둘 것을 요구한다. ■ 신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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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day, Somewhere

신수혁展 / SHINSOOHYEOK / 申寿赫 / drawing

2009_0319 ▶ 2009_0418 / 월요일 휴관



신수혁_amusement park_캔버스에 연필_50×50cm_2008




초대일시_2009_0319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원앤제이 갤러리_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1-9번지
Tel. +82.2.745.1644
www.oneandj.com






공간의 기억과 기억의 공간예술은 그 시대와 사회의 세계상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예술가는 반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관통한 시선으로 세계를 발현시키는 자이다. (신수혁) 누구나 낯선 장소에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여기가 어디인가라는 반성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성에는 애초부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이 건물, 도로, 자동차, 사람들, 들리는 것이 경적소리, 대중가요, 또는 웅성거리는 목소리라는 인식들로서 이미 습관적으로 기억되어 있는 것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낯설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습관적인 기억(souvenir-habitude)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기억, 즉 이미지기억(image-souvenir)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우선, 지역 명, 건물명, 도로 명 등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된다. 다음으로 정확한 기억을 위해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면서 언제인지를 기록으로 남긴다. 예를 들어, 여행 같은 길 찾기가 그러한데, 여행은 낯섦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적인 과정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사 같은 경우는 다르다. 많은 것이 낯설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의 반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반복함으로써 낯설었던 곳은 점차 익숙한 것이 되고, 언어습득이나 걷기처럼 습관적인 기억이 된다. 말하자면, 구체적인 기억의 반복을 통해 굳이 반성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면서, 또 다른 구체적인 기억의 바탕이 되는 습관적인 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이사한 집은 예전의 집이 된다. 작가 신수혁의 작업은 이러한 낯선 곳의 경험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한 여정을 기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억에 대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기억을 작업의 모티브로 다루게 된 것일까?




신수혁_apartment house #1_캔버스에 연필_94.5×102.5cm_2008


작가는 200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모든 것은 낯설었을 것이다. 낯섦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과도 같은 길 찾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궤적을 만든다. 기록하는 방식은 날짜도장으로 찍은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년여 동안 진행되었다. 여러 번 간 곳은 그만큼 진하게 되고, 진한만큼 그에게는 익숙한 곳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작업은 1950년대 말에 발생했던 상황주의 운동(Situationist International)의 작업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콩스탕(Constant, 1920-)의 새로운 바빌론(New Babylon, 1958)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유사해 보인다. 비록 전후의 사회적 배경과 도시개발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정치적인 관심이 콩스탕같은 상황주의자들에게는 중요했지만, 공간을 심리적이고 참여적인 문제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수혁과 내용적인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상황주의의 지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그가 새로운 도시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의 기록이라는 점에 정치적인 관심과는 무관하기 때문이고, 그가 자신이 직접 다닌 길을 도장으로 찍는 행위는 도장의 의미가 각인의 다른 표현이듯이, 심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체적인 문제에 닿아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간에 대한 관심은 낯설음이라는 심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듯이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다. 실존철학에서 말하듯, 불현듯 찾아오는 낯설음이 모든 존재자들에 관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메스꺼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도장을 찍는 과정으로 해소될 수도 있다.




신수혁_officetel #1_캔버스에 연필_130×162cm_2008


도장 찍는 작업을 기반으로 2006년, 새로운 작업이 시작된다. 『One day Somewhere』展의 중심을 이루는 작업으로서, 흰 바탕으로 이루어진 화폭에 어떤 건물의 부분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재료로는 연필을 사용하여서 단색조의 모노화의 느낌을 갖게 한다. 둘 다 작가가 체험한 공간에 대한 기록이지만, 전작이 상공의 시선으로써 재현되었다면, 후자에서는 시선이 지상으로 내려온다. 체험의 구체성을 담기에는 상공의 시선과 숫자로 이루어진 형식이 너무 관념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표현행위의 자발적인 요구 때문에 작가는 다시 그리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기억을 표현하려는 근본적인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 이유는 기법의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흑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은은한 느낌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밀한 묘사를 선택한 점에서 은은함과 상충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명료함으로 명료함을 극복한다는 방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여하튼, 작품을 보면 은은하고 고요한 정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정서를 위해서 작품의 배경의 기능을 하는 흰 여백은 수십 번의 젯소칠과 고르게 만드는 샌딩작업의 공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신수혁_red brick depot_캔버스에 연필_80.5×100cm_2008


이러한 순백색의 여백은 무한대의 깊이를 지닌 평면으로서 정교하게 그려진 이미지를 빨아들이면서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효과를 더 강도 있게 하기 위해 그려진 건물이 주변과 만나는 윤곽 밖은 그리지 않았다.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음으로써 그에게 기억의 지표가 된 건물 이외의 것들은 모두 흰 배경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건물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들의 기능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작가의 몸이 자리했던 위치가 명확해 진다. 물론, 여기서 명확하다는 것은 오로지 그 이미지를 기억으로 소유하고 있는 작가에게 그러한 것이며, 우리는 건물이나 지역의 이름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에게 명확한 기록에서 우리는 어떤 낯설음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려진 이미지라서가 아니다. 흰 배경이든 그려진 건물이든, 우리는 작품을 대하면서 작가의 기록과는 무관하게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적인 기억과 습관적인 기억을 투사할 수 있고, 수동적으로라도 투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호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려진 이미지는 작가의 신체적인 반응과 심리적인 반응의 가교인 이미지 기억물이기 때문에 이 가교에 의해 우리는 작가와 연결되는 것이다. 예컨대, 그림을 대하면서 우리는 작가의 입장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의 시선의 위치를 보게 되면, 그의 시선은 도로나 골목, 건물 위를 넘나들지만, 이러한 시선을 작품 하나하나 보면서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선은 공간을 점유할 때 인식론적인 분석을 통하지 않을뿐더러, 기억의 차원에서 작가와 소통하는 것이므로, 작품 앞에 선 우리의 위치가 곧 작가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신수혁_school#3_캔버스에 연필_50×50cm_2008


체험된 공간의 표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는 설치작업을 병행한다. 따라서 설치작품을 그의 주된 작품 성향으로 볼 수는 없지만, 본 전시에 설치되는 공터 작업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해 보인다. 70년대에서 80년대 우리나라는 한창 건설 중이었다. 이 시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는 공사장에 으레 공터를 많이 접하면서 공터에 대해 낯설면서 친숙한 정서를 가졌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유학시절 매일 다니게 된 길에서 그러한 정서를 상기시키는 공터를 접하게 된다. 기초공사가 된 채로 있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의 공터다. 전혀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임에도 그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미래로 끌어들이는 모티브가 된 것이다.




신수혁_Onedaysome#2_Map Image made Using a Date Stamp on Paper_210×162cm_2004



신수혁_Onedaysome#5l_Map Image made Using a Date Stamp on Paper_55×80cm_2004_부분


우리는 기억에 의해서 살아간다. 그것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또는 습관적이든, 임의적이든 간에 기억 없이 지속되는 삶은 없으며, 또한 그만큼 표현되지 않는 기억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표현의 문제에서 보게 되면, 예술작품은 기억자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앞서 견주었던 기억의 두 측면을 얼마만큼 균형 있게 잘 연관 짓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개인적인 정서에 관련될 수록 더 그렇다. 작가가 말하듯, 의미 있는 세계는 개인들을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하나의 새로운 공간에 옮기는 신수혁의 작품들은 이러한 관심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 박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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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FLASH

서영덕_서은정_정지훈展

2009_0323 ▶ 2009_033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NEW FLASH展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23_월요일_02:00pm

참여작가
서영덕 duck_83@nate.com
서할(서은정) sartist@naver.com
정지훈 mypoetry1@naver.com

주최_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서울시립대학교 갤러리 빨간벽돌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90번지
Tel. +82.2.2210.2250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에서는 재학생의 작품제작 활성화를 위해 2008년『FLASH』展을 공고하였고, 그 결과 4학년 서영덕, 서은정, 정지훈 학생이 선발되었습니다. 환경조각학과 주최『FLASH』展은 재학생(2학년, 3학년)을 대상으로 전시 기획서를 받아, 본교 교수 6명이 심사하고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 다음 해에 개인전 형식을 빌어 전시를 개최해 주는 행사로 일회성 전시가 아닌 지속적이며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면모를 갖추고자 합니다. 이번에 열리는 서영덕, 서은정, 정지훈 전에 부디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어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서영덕_카오스_chaos_금속체인_170×170×30cm_2008



서영덕_호모텔레포니쿠스 3_Homo telephonicus_금속체인_120×90×60cm_2008



서영덕_아담_Adam_금속체인_120×50×30cm_2008


인간 존재의 자기 상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시각화 하려는 것이 이번 작업의 주된 목적 이었다. 절단 된 금속 체인을 다시 용접으로 접합해서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우리 현대사회의 끊임없는 생산과 파괴, 그리고 생명의 윤회를 보여주기 위함 이었고 인성이 물성으로 변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을 인체를 통해 시각화하려 한 것이다. 정해진 틀 안에 복잡하게 얽혀있거나 또는 규칙적인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체인의 본래 기능성이 파괴된 형태를 통해 획일적인 사회 구조 속에 있는 인간들의 존재에 대한 무상함과 비인간성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 ■ 서영덕




서할(서은정)_HAND MADE#2 LEG♀_폴리에스테르, 아크릴_630×370×450cm_2009



서할(서은정)_HAND MADE#4 SPIDER_폴리에스테르, 아크릴_100×110×60cm_2009



서할(서은정)_HAND MADE#5 MOP_폴리에스테르, 아크릴_1100×250×300cm_2009


인간의 신체에서 얼굴 다음으로 폭발적인 표현력을 지닌 손이 모여 또 하나의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손들이 잡고 잡히며 서로 의존한 채 견고하게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만약 하나의 손이라도 탈출해 버린다면 내 작품의 형태는 무너져버린다 나에게 있어서 손은 표현 수단인 동시에 표현 대상이다. 손이 벙어리에게 목소리라면 나에겐 창작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고마운 존재일 뿐이다... ■ 서은정




정지훈_Incubator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9



정지훈_DNA의 숲_형광등, 케이블타이, 인체감지센서_가변설치_2009



정지훈_혈관_실, 피규어_가변설치_2009


내가 이번 전시를 통해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냉소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세상살이에서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따뜻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에게 있어 대학 진학 이후 생활하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왠지 모를 불편한 느낌들과 도시의 불빛 너머의 차가운 양면성을 느꼈었고, 관객들에게 그것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인큐베이터란 공간을 제공함으로서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키는 인공적인 자궁을 연출하고자 하였다. ● 인큐베이터는 체중 2kg 이하의 미숙아 및 치아노제 ·호흡장애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신생아를 수용하는 산소공급기가 달린 격리 보온기기이다. 내가 연출한 인큐베이터는 그러한 투명관 속의 생명유지의 기능이 아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역할에 집중을 하였다. 그것들은 모체의 자궁과도 같은 해부학적 구조를 모티브로 작업하였고, 관객들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제작하여, 그들과의 소통을 시도하였다. ●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가족들은 집에서 주로 거실에 모여 한 이불을 덥은 채로 텔레비전을 보며 담소를 나누다 다 같이 잠들기도 한다. 스무 살 이후 집으로부터 떨어져 살면서 그리워지는 풍경을 나의 작업으로 풀어가고자 하였고, 내가 생활하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그러한 공간을 제공함으로서 서로에게 가족과도 같은 친근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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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톡 Talk

2009_0320 ▶ 2009_0329 / 화요일 휴관



김승민_Stage my song_장지에 채색_74×127cm_2008




초대일시_2009_0320_금요일_05:00pm

게이트 갤러리 신진작가 발굴展 1부

참여작가
김승민_김애정_최옥희

관람시간 / 12:00pm~06:00pm / 화요일 휴관





게이트 갤러리_GATE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5번지 경남빌라 제상가 1층
Tel. +82.2.3673.1006
www.gategallery.kr






작품성이 뛰어나고 작품 활동이 왕성한 국내 외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고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한 일환으로 실력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해온 게이트 갤러리가 다양한 그룹전을 통해 2010년도 개인전을 기획할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젊은 작가 기획전으로 2부에서는 동양화 작가들이 『톡 talk』展 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자고 한다. ● 이번 게이트에서 전시하는 『톡 talk』展은 자아 내면에서 나오는 '톡'하고 튀어나와 이야기를하듯, 실험적이고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어법으로 표현하는 젊은 3명의 작가로 이루어진다. ■ 게이트 갤러리




◁김승민_Stage my tree_장지에 혼합재료_162×130cm_2008
▷김승민_Stage night_장지에 호분, 채색, 먹_100×67cm_2008


각각의 scene이 편집되고 모아져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듯이, 우리의 인생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굴레 안에서 각각의 스테이지(stage: 무대, 단계, 활동무대·범위)가 고리처럼 이어지고 쌓여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의 작업은 그러한 나의 ‘살아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 삶의 단면들이 모여 지금이 순간의 나라는 존재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의 작업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무너진다. 단지 나의 의미 있는 삶의 부분들이 나의 감독하에 편집되고 표현될 뿐이다. 언제 어디서의 나 이었는가 보다는 그 시간과 공간에 존재했던 내 자아의 모습이 계속해서 진화해 나가길 바라는, 좀 더 나다워질 수 있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단계이다. ■ 김승민




최옥희_그래, 때로는 거짓이 세상을 아름답게하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1cm_2008



최옥희_그들은 우리를 전멸시킬수 없고, 또 쓸어버릴 수 없습니다_장지에 혼합재료_70×88cm_2009



최옥희_대충 당혹스런 것들이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5×45cm_2009


사람들은 활자에 큰 믿음을 갖는다. 신문, 텍스트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진실성이나 모순 또한 범할 수 있는 오류가 많다. 우리가 습득하고 학습했던 모든 사실은 사전적 의미와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의 수많은 언어는 그 의미들을 모를 때가 많다. 우리말 중에는 둥근 말이 있는 것처럼, 타자와 나를 구분 짓지 않는, 밖과 안을 구분하지 않는 이분법적이지 않은 사고들이 우리에게는 녹아 있다. 내 작품의 이미지들은 고정된 사물의 형태를 확실히 그리지 않는다.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가 매우 어렵고 하기 싫은 일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최옥희




김애정_공부를 열심히 하자_장지에 혼합재료_81×100cm_2008



김애정_다시_장지에 혼합재료_137×210cm_2008



김애정_까불면 다죽어!_장지에 채색_160×91cm_2008


이야기가 있기를 바라고, 드로잉의 연장선상에 있기를 바라고 심각하지 않으며 가볍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그림이 되길 바란다. 나는 이런 것들을 캐릭터를 이용해 보여준다. 캐릭터는 현실의 제약을 받지 않는 존재이며 나를 대신해 말하고 행동하고 보여주며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저지른다.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통쾌함을 맛보길 바란다. ■ 김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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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of One's Own

이혜선展 / LEEHEYSUN / 李惠善 / painting

2009_0325 ▶ 2009_0331



이혜선_Destiny_장지에 채색_97×130.3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40821a | 이혜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_10:00am~06:00pm




갤러리 가이아_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관훈동 145번지
Tel. +82.2.733.3373
www.galerie-gaia.net






A Room of One's Own ● 일상의 감동적이거나 충격적인 또는 재미있는 사물, 사건이나 이야기를 만났을 때, 이와는 반대로 그 일상이 사무치도록 지루하고 지겹게 느껴질 때, 또는 주체할 수 없는 감성지수가 솟구칠 때, 창의적 행위의 자연스러운 자행이 시작된다.




이혜선_Waiting_장지에 채색_97×130.3cm_2009



이혜선_The Voyage Out_장지에 채색_91×116.7cm_2009


일상의 틀에 얽매어 하루하루를 힘겹게만 살 때, 나 이외의 가족, 친구, 애인, 많은 대인 관계가 원활하게 진행될 때에는 나의 삶에 그들과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내가 존재하며 지내게 된다. 좀 더 일상에 지쳐 한 발짝 물러서 있을 때, 권태와 예기치 못한 여유로움이 닥쳤을 때야 비로소 ‘나의 삶’이라는 실존적 물음이나 고독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 라는 자아에 대한 인식은, 그것이 긍정의 형식이든 부정의 형식이든, 나 자신이 스스로를 고요히 바라볼 수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바로 그러한 순간들, 온전히 스스로를 관찰하고 사색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완벽한 고독과 고요 속에 엎질러진, 완전히 방치된 순수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아늑하고도 편안하고도 지겹고도 익숙한 공간. 나만의 방은 나의 존재를, 나의 물질들을 생각 할 수 있는 온전히 개인적인 공간인 것이다.




이혜선_Cold Coffee_장지에 채색_72.7×60.6cm_2009


하지만 현대 사회 대부분의 여성은, 인간 굴레의 일부이며 커다란 굴레가 잘 굴러가기 위해 서로가 얽혀 있는 그 통시적 관계 속의 여성, 의존적 존재로서의 이미지, 인간관계를 포괄하는 이미지, 가족을 감싸는 이미지, 대지와 같이 풍요롭고 너그럽게 포용하는 이미지에 의해 온전히 독립된 존재로 남을 수 없다. 때문에 관계 속에 함몰된 그녀들은 아이를 양육하고 가족을 보살피며 수많은 가사 노동을 해야만 한다. 이미지와 관계에 함몰된 그녀들에게 그녀의 방은 온전히 ‘자아’의 공간일 수 없다.




이혜선_The Chair_장지에 채색_72.7×60.6cm_2009


그녀가 하루 중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얼마나 될까? 그녀가 타자의 삶 속에서 온전한 ‘자아’를 발견하고 사색하기 위해 그녀의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신을 위해 비싼 펜을 사고 자신을 위해 침구를 사고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듯, 내가 진정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욕구에 얼마나 투자를 하며 살고 있을까? 자기만의 방에 많은 나의 취향이 묻어나는 것들-말라비틀어져 누렇게 변색한 부케까지-이 널브러져 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한 부분이다. 나만의 방에서 내 물건의 가치를 부정하고 나의 행동을 쓸모없는 행위로 판단하여 부정의 의사를 건넬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만의 방은 온전히 나의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을 무한대로 넓혀 줄 수 있는 곳이다.




이혜선_Gift_장지에 채색_72.7×60.6cm_2009


자유로운 사고는 일견 시공간에서 자유로울 때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듯하지만, 의외로 자신의 틀에 박혀 더욱 고립되어 그 고립을 즐길 수 있을 때 오히려 배가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고독한 개체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양식, 그리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써의 사회적 인정과 관심, 사랑을 좇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 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순간의 자아, 실존을 만나는 순간은 철저한 고독과 고요 속에 방치된, 타자 속에 함몰된 자아를 온전히 발견하는 순간이리라.




이혜선_Rest_장지에 채색_72.7×60.6cm_2009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나에게 권태와 창작의 반복된 삶이 걸어 가야할 아포리아이다. ■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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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진 京

이여운展 / LEEYUWOON / 李汝云 / painting

2009_0325 ▶ 2009_0331



이여운_비온 뒤-구의시장_한지에 수간채색_140×182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여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25_수요일_06:00pm

갤러리 갈라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갈라_GALLERY GALA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35번지
Tel. +82.2.725.4250
blog.naver.com/joychamm






이번 전시를 끌어가는 하나의 테마는 필요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공간에 대한 이미지화이다. 작가들이라면, 또 집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흔히 겪게 되는 작업실구하기, 또는 집구하기 프로젝트- 요즘은 무언가 필요에 의해 장소를 구하고자 한다면 보통의 경우, 부동산을 통해 각 지역을 돌며 본인의 상황에 가장 알맞다고 생각되는 곳을 구하게 된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보다 많은 비슷한 환경들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는데 그 한계에 있어서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비교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은 것은 보다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게 되며, 네트워크로 되어져 있는 오늘날의 시스템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 있다. ● 서울의 각 구역별로 나뉘어진 장소들은 일정한 상황과 한계 내에서의 공통분모를 가진 공간들이다.




이여운_대조된 푸른 하늘-논현동_한지에 수간채색_140×182cm_2009



이여운_나의 꿈은 어디에-논현동_한지에 수간채색_162×240cm_2009


예를 들자면 일정한 보증금과 월세를 가지고 사무실이나 원룸, 오피스텔을 구하러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지역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과 한계가 더 중요시되는 아이러니를 가지게 된다. ● 태어나면서 살아지게 되는 고향이나 집이라는 정서적 의미보다는 필요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어떤 장소라는 의미가 더 강해지는 것이다. 특히나 목적성을 가진 공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작업실이라는 목적성 공간이 가지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작가들에게 여러 가지 부르주아적인 조건을 강요하게 되는데 넒은 공간은 말할 것도 없고 넒은 복도와 높은 천장, 그리고 크고 높은 문이다.




이여운_평온한 비극-건대입구_한지에 수간채색_73×110cm_2009


이는 시대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나 오래된 건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통상적인 개념의 생산과는 또 다른(?) 생산을 하는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그 부르주아적인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업 안에서 보여 지는 상호 속 텍스트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과 환경을 대변해 주고 있다. ● 이미지의 표현에 있어서도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시점에서 바라본 같은 장소를 한 화면 안에 구성함으로써 작가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여러 시점을 보여 준다.




이여운_낯선 자의 방문-논현동_한지에 수간채색_73×110cm_2008


화면 안에 레이어처럼 겹쳐지는 이미지들은 같은 장소를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시각의 또 다른 평면화이다. 직선, 딱딱함, 단조로움, 반복. ● 그림을 그리면서 나 자신이 좋아하는 성향들이다. 도시에서 느껴지는 획일적이고 고정된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에 아직 질리지 않았다는 것-일상에서 부딪히는 모든 이미지들에서, 나아가서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감성의 반영이다. 고정된 투시와 직선적 이미지의 반복적 사용들은 그것을 극대화 시킨다. ■ 이여운




이여운_지하 밀실이 있는 방-구의동_한지에 수간채색_110×63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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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t Reality

장유정展 / CHANGYUJUNG / 張有廷 / photography

2009_0226 ▶ 2009_0325 / 월요일 휴관



장유정_잠재력_디지털 프린트에 혼합재료에 과슈, 아크릴채색_130×106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417f | 장유정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226_목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기획展

관람시간 / 화~금요일_10:00am∼07:00pm / 토~일요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_GALLERY skape
서울 종로구 가회동 72-1번지
Tel. +82.2.747.4675
www.skape.co.kr






공간에 대한 일반적인 지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방법으로 질문을 던지는 장유정은 이번 전시에서 한층 더 깊어진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품을 통해 기법적으로는 회화와 사진의 경계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일루전과 눈속임이 가득한 이미지들을 통해 공간과 물체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의문과 진실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장유정_출발점_디지털 프린트에 아크릴채색_116.3×140cm_2009


찰나 보다 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작된 사진은 우리 눈이 인지하는 대로 대상을 담아내고자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뇌로 전달되어 기억 장치에 저장되듯,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 화학장치를 거쳐 인화지에 저장된다. 눈이 그러하듯 3차원의 입체적 인식은 아닐지언정 사진은 대상을 렌즈가 인식하는 대로 충실히 평면에 저장한다. 그러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객관적 행위와 결과물로 얻어지는 사진 사이에는 언제나 사진을 찍는 주체의 주관성이 함축되어 있다. 대상이 필름에 각인되는 짧은 시간 동안 대상은 스스로의 성질을 버리고 찍는 주체의 의도대로 변형되어 그것을 보게 될 제 삼자의 눈에 전달된다.




장유정_가벼운 마음_디지털 프린트에 혼합재료, 과슈, 아크릴채색_143×179cm_2009



장유정_이타적인 사랑_디지털 프린트에 아크릴채색_49.5×75cm_2009


고대 로마의 플리니우스는 데생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곧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젊은이를 사랑하는 한 여인이 그와의 이별에 앞서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사랑하는 이의 얼굴과 그 디테일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데생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얼굴 그림자를 따라 그리는 것에서 기인한 이 이야기는 회화의 기원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실루엣이자 주체의 쌍둥이와도 같은 그림자는 주체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증명하고, 미래에는 사라질 지 모를 그것의 잠재적 존재감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선을 통해 변형의 과정을 겪고 주체가 없이도 주체의 존재감을 상징할 수 있는 독자적 존재로 자립한다. 도플갱어적으로 자립한 그림자는 주체와 결코 분리 될 수 없으나 주체의 모든 특성까지 내포하지는 않은 채로 독립적인 존재로 우뚝 선다.




장유정_참석_디지털 프린트에 혼합재료, 과슈, 아크릴채색_82.5×105cm_2009



장유정_평화의 기반_디지털 프린트에 과슈_100×125cm_2009


‘당연한 풍경’을 분석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장유정의 작품의 핵심에는 일루전이 있다. 우리 눈에 명백하고 논리적으로 보이는 공간과 상황들에 작가는 주체적으로 개입하여 일루전을 만들어 낸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울들 속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간에 대한 확장이 마치 벽 너머로 무한히 이어질 것 같은 공간을 상상하게끔 하는 풍경을 좋아하는 작가는 ‘당연해 보이는 풍경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바꾸어 보았다’고 말하며 실제하는 풍경의 의미와 구조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작가에 의해 위치, 중력의 방향, 스케일 등이 혼란되어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은 우리 눈에는 익숙한 풍경들을 비합리적인, 이질적인 관계들로 변형시킨다. 과학적 시각에서 당연히 물체와 공간의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그림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독립적으로 전개되고 눈에 보일 듯 말 듯 하나 의도적으로 어색하게 변형된 이미지들은 새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공간이, 이 물체가 처해진 상황에서의 진실성은 작가의 개입에 의해 새로운 진실성으로 탈바꿈한다. 작가가 인지한 공간과 사물들은 미장센(mise-en-scene)을 거쳐 사진으로 기록되고 인화된 사진은 작가의 붓 끝을 통해 다시 한번 가공된다. 여러 번의 ‘공정’을 거치는 동안 작가가 행하는 ‘불필요한 행위’의 필요성은 일반적 사실 인식을 ‘비꼬는 것’을 위한 작가의 적극적 개입으로 이해된다. 여기에서 현실,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사진과 회화의 초기 목적성은 가상과 상상과 결합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목적을 띄게 되고, 보는 이는 이를 통하여 ‘이질적’ 인식을 경험하게 된다. 장유정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는 일루전의 문제는 헷갈리는 상황을 제시 함으로서 진짜, 가짜의 문제, 그것을 추리하여 퀴즈를 푸는 듯한 느낌의 묘미를 제공하고 어색한 인식의 원인 규명을 위한 일종의 두뇌 반전 게임이 된다. ■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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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탈도 하루이틀

조장은展 / CHOJANGEUN / 趙章恩 / painting

2009_0325 ▶ 2009_0424 / 일요일 휴관



조장은_피가 거꾸로 솟는다_장지에 채색_117×91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조장은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25_수요일_05:00pm

대안공간 충정각 기획_조장은 3nd 그림일기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대안공간 충정각
ALTERNATIVE SPACE CHENGJEONGGAK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360-22번지
Tel. +82.2.363.2093
www.chungjeonggak.com






당신의 20대는 어떠했습니까? ● 돌아보면 고동치는 가슴과 넘치는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탐험가의 눈으로 세상을 탐색하였고 당치 않는 자부심으로 의욕이 앞서 실수도 곧잘 하던 시절이었다. 한편, 뜨거운 가슴은 설익은 사과의 신맛처럼 가슴 속에 아련히 남아있기도 하다. ● 작가 조장은은 현재 그런 20대를 즐기고 있는 꽃다운 나이의 여성 화가이다. 연애도 일도 척척 해나갈 것 같은 야무진 그녀도 좌충우돌 명랑한 사건들을 벌인다.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은 화면 속에서 작가는 연애 문제로 고민하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사이에서 좌절하지만, 때론 작은 일에서 큰 기쁨을 찾아내기도 한다.




조장은_가랭이 찢어질라_장지에 채색_80×80cm_2009



조장은_개념아 어딨니_장지에 채색_91×72.5cm_2008



조장은_나쁜년_장지에 채색_80×80cm_2008



조장은_미련이 길어서_장지에 채색_108.5×126cm_2009



조장은_쥐뿔도 없어서_장지에 채색_60.5×60.5cm_2008



조장은_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_장지에 채색_60.5×60.5cm_2009


이러한 리얼 스토리는 현세대를 살아가는 청춘을 대변한다. ● 어린 시절 매일매일 졸린 눈을 비비며 적어야 했던 그림일기...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얼굴을 붉히며 펼친 그 속에는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본인의 달콤 쌉싸름한 20대를 기록하려 했을 것이다. 지긋이 나이가 든 후 삶이 닮긴 그림일기를 들춰보며 철없던 그때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작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20대를 관통하고 있거나 관통했던 우리들의 하는 청춘일기이다. ■ 대안공간 충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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