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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09-02-27 19:24:06, Hit : 612)
전시 2.27



천경우 개인展 ˝BreaThings˝ / 천경우 개인展 ˝Thousands˝



가인갤러리 (02-394-3631) 2009-03-02 ~ 2009-03-28
토탈미술관 (02-379-7037) 2009-03-03 ~ 2009-03-29

Ⅰ. BreaThings
영어의 두 단어 ´호흡(Breathing)´과 ´사물들(Things)´이 혼합된 암시적인 제목으로 누군가 어떠한 사물을 몸 가까이 들고 오랜 시간 숨을 쉬는 동안 카메라에 축적된 이미지의 사진입니다. 이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그 시간 동안 카메라의 노출을 유지함으로써 미세한 움직임이 중첩되어 희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초상 사진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고유한 기법이 적용된 사진입니다. 그러나, 는 그간 작가의 초상 사진들과는 달리 피사체의 얼굴이 아닌 손과 팔, 몸의 일부분이 등장하며 그보다 중심이 되는 것은 그들이 들고 있는 ´사물들´이 됩니다. 다만, 그 사물들은 본래의 쓰임새에서 떨어져 나와 그것을 들고 있는 그 사람에게 속하여 그들의 호흡에 따라 함께 숨쉬면서 특별한 무엇이 됩니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마치 자신의 신체의 일부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이 하나씩은 있음을 생각해보면 작가의 작업 동기를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에 존재하는 오브제들이 누군가에게 소유됨으로써 생기는 생명력에 대한 관심인 것입니다.
사물들은 책, 야구공, 작은 의자, 꽃병, 장난감, 기념품 등 매우 다양합니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지만, 하나같이 각자에게는 의미 있는 일상의 물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흔들리듯 희미한 이미지 때문에 어떤 사물은 그 정체를 알 수 없기도 하지만, 오히려 관람자는 그 사물을 각자 자신의 기준에서 인지하여 보다 풍부한 감상이 가능하게 됩니다.) 누군가 그 사물을 들고 오랜 시간 숨을 쉼으로써 생기는 미세한 떨림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희미한 사물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숨쉬는 존재임을 체험하도록 하며 사물들에게는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2. Thousands
천경우는 자신의 중시조(中始祖)격인 ‘천만리(千萬里)’ 장군의 이름을 따와 프로젝트의 워킹타이틀로 사용하였다. 천만리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황명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명나라 장군으로, 이후 조선에 머물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천씨(氏)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천경우는 천만리 장군이 태어난 곳이자 현재에도 수 천명의 천씨(氏)가 모여 살고 있는 중국 허난성의 3개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과 지내며 사진, 인터뷰, 비디오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진행해 왔다. 천경우는 작가의 성씨인 ‘천(千)’씨에서 출발한 지극히 개인사적인 이야기에 머무를 수 있는 소재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매체와 퍼포먼스를 활용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작품을 통해 인류의 이주와 확산이라는 보다 크고 보편적인 주제로 이끌어간다.
특히 퍼포머티브한 형식으로 진행된 는 이러한 작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국과 중국에서 찾아 다닌 마을에서 만난 천명의 주민들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인편(人便)과 낱장의 우편을 통해 독일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로 보냈다. 작업실에 도착한 사진들은 토탈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인데, 물론 배달과정에서의 분실이나 훼손 등과 같은 예기치 못했던 상황들까지도 모두 포괄하고 있는 이 작업은 천(千)씨라는 하나의 예를 통해서 전세계로 확산되고 이주하는 인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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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거짓말

송준호展 / SONGJUNHO / 宋俊昊 / painting.sculpture.installation

2009_0226 ▶ 2009_0325 / 일요일 휴관



송준호_아무도 모르는거짓말_브론즈, 나무, 유리안구_104×79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607b | 송준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22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_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_CAI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9-5번지 제2전시관
Tel. +82.2.511.0668
www.caisgallery.com






20세기에 들어서 미술은 형식보다 내용에 치중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무엇을 그렸는가(what)’하는 것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why)’ 하는 것이 중요하며, 표면에 보여지는 것보다 그 안에 숨어있는 상징성에 깊은 가치를 두었다. 눈에 보여지는 '작품의 형태'를 이해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의미'를 읽어야 하는 현대미술은 그래서 관객들에게 어렵고 막연한 대상이며, 때로는 작가가 의도하였던 것과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되기도 하였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이러한 현상을 '작가의 죽음 The death of author' 이라 부르며 현대미술의 구조적인 모호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송준호의 작품은 작품의 형식과 형태를 떠나 작가가 의도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매채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 송준호는 그의 작업을 '버려진 것들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의미였을 버려진 물건들’에 대하여 작가가 느끼는 안타까운 감정들은 그 물건들을 고치고 다시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로서 정화가 되었다.




송준호_악몽_나무, 합성수지 캐스팅_각 30×30cm_가변설치_2008


이러한 자조적 연민은 후의 그의 작업들에 모태가 되었으며, 버려진 사물을 통한 개인적인 감정의 대입은 지금까지도 그의 작업에 주요한 모티브이 되고 있다. ● 송준호의 작품을 소재에 따라 구분해 본다면, 버려진 재료를 사용한 작품, 사슬을 이용한 작품 그리고 유리 안구를 사용한 인물 작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학창시절부터 버려진 물건이나 고장난 물건들을 고쳐나가기 시작하면서, 그의 수리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다. 5년 동안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방치되어온 벤치에 '들어올리기'라는 조각을 만들어 괴어놓거나, 각기 다른 이유로 버려진 나무들을 서로 이어 붙여서 조각상을 만들면서 그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지금도, 송준호는 주변에서 작품의 재료를 찾아낸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재료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낸 재료로 작품을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서 더욱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송준호_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을때 아무도없었다_나무에 채색, 유리안구_36×65×30cm_2008


사슬을 늘여뜨려 만들어진 레이어로 사물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작업은, 송준호가 가지고있는 '사라진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심도있게 보여준다. 그가 재현한 고대건축물의 기둥, 갑옷, 비파와 같은 대상은 오늘날 형태는 남아있지만 그 고유의 존재적 가치는 사라진 대상들이다. 건물을 지탱시키는 기둥은 이제 건물에 의지하는 존재가 되었고, 강한 소리를 내는 비파는 연주법 전해지지 않으면서 그 소리를 잃었으며, 갑옷은 더 이상 인간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었다. 송준호는 이렇게 고유의 기능과 존재적 가치를 잃어버린 사물들을 길게 늘어뜨린 사슬로 표현함으로써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형태를 재현하였다. 그러나 재현된 사물의 형태는 마치 그 역할이 사라지듯 유약하고 유동적인 사슬들로 분해가 되었다 조합이 되었다 한다. 이는 작가가 (형태는) 존재하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에 대한 연민과 아쉬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개인적 감정을 작품에 이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 최근, 송준호는 유리안구를 사용한 인물상의 작업을 진행하여 왔다.




송준호_그대로부터의 외로움_합성수지 캐스팅에 유채, 유리안구_60×52cm_2009


반구 형태의 유리알 안에 그려진 눈동자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 이는 일차적으로 관찰의 대상이 작품에서 관객으로의 전이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이야기 하기 전에, 자아의 관찰을 유도하고 있다. 곧 관객이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관객 즉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관찰의 대상이 되어진 '내 안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통해 작가는 진정한 자신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송준호의 작업은 그의 주변의 사사로운 일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주변의 사물, 작은 사건, 소소한 경험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일상의 사건들로 좌절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 적절한 방법으로 적응하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일을 힘겨워 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일상’에 관한 자세는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연결 되어 마치 그의 일기를 보듯 작품은 작가의 삶을 적절히 기록하고 있다.




송준호_멀고 먼 다른 날 밤 꿈_주입성형, 레진, 유리안구_10×40×10cm_2009


송준호는 그의 작업노트에서 그의 작업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나는 미시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통하여 거시적이거나 보편적인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일상의 작은 사건이지만 그것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통로이며 또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비개인적인 가치로 만드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했을 때, 나의 작업은 개인과 비개인의 경계를 탐색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송준호의 개인전『우리가 모르는 거짓말』展에서 작가는 그의 작업을 ‘외로움’이라고 함축해서 말하고 있다. 이는 그가 개인적으로 겪은 가족과의 이별, 타지에서의 생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외롭고 두려운 감정들을 가지고 작품을 표현하였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어두운 감정들은 숨어 있지 않고 작품을 통해 ‘대응’하고 ‘응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아무도 모르는 거짓말」그리고「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을 때, 아무도 없었다」는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Medusa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메두사는 본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테나의 질투로 저주를 받게 되는 인물로 메두사의 아름다운 머릿결은 모두 뱀이 되었고, 그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돌로 변하였다. 그래서 어두운 곳에서 외롭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 신화의 인물은 어쩌면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었던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송준호_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_브론즈 캐스팅, 나무, 유리안구_36×29×12cm_2008


타인의 질투, 고통과 열망, 전염되는 두려움, 그래서 회피하고 외로워지는 현대인들의 절망감을 송준호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메두사라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는 이러한 외로움에 대처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외로움을 감추려고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마치 유전되어 온 것처럼 본능적인 대처 방법이나, 마치 강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듯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 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체적인subjective 방법이라면,「악몽」그리고 「그대로부터의 외로움」은 객체적인 objective 대처 방법으로 그들(타인)은 항시 ‘나’를 응시하고 있으나 눈을 마주치지 않는 한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회피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이번 작업에서 작가가 이끌어온 주제에 대한 자조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송준호_하고싶은일과 할수있는일, 그리고 해야하는일_나무, 유리안구_220×63×58cm_2009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미련,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열망,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한 무게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시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개인이 가지는 다양한 감성으로도 해석 할 수도 있다. 다만,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개인적 감정을 억제하고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강한 로봇과 같이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단지 작가 개인의 감성과 경험의 표현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감추고 살아가는 나약함과 외로움을 시사함으로써 관객과 공감하고 더 나아가 함께 위안받는 치유의 기회가 될 것이다. ● 송준호에게 작업은 삶을 통한 치유의 방법이다. 그리움과 외로움, 허무함과 공허함, 소외감과 열등감으로 가득 찬 보통사람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 송준호의 작업이며, 그가 외롭게 그렇지만 꿋꿋하게 작업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 민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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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정원

연수展 / YEONSU / 蓮樹 / sculpture

2009_0228 ▶ 2009_0307



연수_항아리_우레탄, 표백한 잎사귀_26×26×72cm, 27×27×40cm, 30×20×30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연수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228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요기가 표현 갤러리
EXPRESSION GALLERY YOGIGA
서울 마포구 합정동 412-1번지 세원빌딩 B1
Tel. +82.2.3141.2603
www.yogiga.com






연수의 첫 번째 개인전, 『흐르는 정원』展은 식물성, 혹은 식물형이라 규정할 수 있다. 작품의 외형이전에 우선 작품의 탄생에서 식물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근원적인 태생을 의미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자연의 것,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하여, 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연 자체를 그대로 옮기거나,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외심이 아니라, 자연의 뿌리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순수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연의 본질, 혹은 원초적인 요소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 시도의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연수_달팽이_우레탄, 표백한 잎사귀_40×20×40cm_2009



연수_쏠베감팽_우레탄_80×80×50cm_2008


작가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동물의 뼈, 원시 물고기, 혹은 달팽이처럼 인간의 시간경계를 넘어선 것들이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근원성과 초월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작업의 대상은 동물이나 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항아리 역시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아주 오래된 기억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확장된다. 그리고 발레리나에 도착해서는 그 형태나 의미를 과감히 벗어버린다. 즉, 작업의 형상에 대한 집착은 마치 반전을 기한 스릴러처럼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초월한 기저로 다가간다. 이것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나무형 사유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나무형 즉, 중심성과 초월성을 지닌 하나의 체계인 것이다. 하지만, 나무형 만으로는 연수의 작업을 설명하기가 부족하다. ● 연수의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요소는, 대상의 실물적인 존재를 넘어서서 직접적인 표현 방식에 있다. 작품의 재료가 되는 우레탄 본연의 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우레탄의 특성상 경화시간이 짧아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자연현상 자체가 작품 속에 녹아있다. 게다가 달팽이의 껍질로 활용된 나뭇잎은 탈색 과정을 통해 잎맥만 남은 강제적인 본연의 것들이다. 결국, 물고기라는 하나의 형체와 물고기를 이루는 재료의 접속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나무형과는 상반되는 리좀형 사유로 통한다. 그것은 바로 작품의 형상과 외형의 탈색으로 빚어지는 이질적인 접속이다.




연수_꽃씨 뿌리다 2_우레탄, 말린 꽃_45×15×25cm_2009



연수_발레리나_우레탄_30×30×45cm_2008


그러나 앞서 그녀의 작업을 식물형이라 명명한 이유는, 더욱 넓은 의미의 식물적 가치에서 비롯된다. 나무가 뿌리, 줄기, 잎의 정확한 구분을 의미하고, 리좀이 뿌리, 줄기, 잎의 동등한 접목을 의미한다면, 식물은 체계적인 구분이나 접목을 모두 포함하는 그 자체의 생명을 의미한다. 가지, 잎, 뿌리, 껍질, 꽃, 풀 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몽상적 식물학은 어느 새 독특한 규칙성의 이미지를 심게 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식물적 가치가 작가의 무의식 밑바닥에 깔린 내적 식물도감을 통해, 그 속에서 부드럽고 완만한 힘이 연속성과 끈질김으로 탄생하는 것이다.(가스통 바슐라르 「풍경 역학」) ● 뼈밖에 남지 않은 동물과 심해에 떠있는 물고기, 세대를 넘어 제 자리를 지키는 항아리 역시 식물적 가치의 정적인 움직임을 내포하지만, 무색 자체에서 서서히 시작되는 색의 변화야 말로 (우레탄의 흰색 역시 더 이상 흰색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운동을 하는 식물적 가치의 발현인 것이다. 즉, 자연의 섭리대로 본래의 무색에서 또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정적인 진행 과정이 작가가 명명한 ‘흐르는 정원’의 의미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마치 식물처럼, 우리가 즉각적으로 느끼는 시간을 넘어서는 그녀의 정원은 아주 천천히, 마치 태고 적부터 살아온 생명체처럼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작업은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수집이며 정리라는 작가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작업의 의미는 더욱 분명하다. ■ 斜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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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된꿈_guided dream

김효정展 / KIMHYOJUNG / 金孝廷 / painting

2009_0302 ▶ 2009_0309



김효정_consola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4×130.3cm_2009




초대일시_2009_0302_월요일_06:00pm

갤러리 담 기획展

관람시간 / 월~토_11:00am~06:00pm / 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_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cafe.daum.net/gallerydam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 /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누구나 몽환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 의식은 깨어나고 있으나, 눈은 떠지지 않은 상태. // 나는 이 같은 무의식 상태에서 감지되는 / 미세한 소리나 부드럽고 은밀한 움직임에 유독 민감해지곤 한다. / 또 가끔씩은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 휘감겨오는 듯한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김효정_another do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0.6cm_2008


곧 환한 빛이 방 안에 쏟아지고, 또렷한 의식이 돌아와 / 그 미세한 느낌을 기억해 내고자 할 때면 /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 특히 내 몸을 휘감아, 내 전율의 잔상처럼 비틀어져 있는 시트의 주름은 / 나를 또 다른 의식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 지난밤 나의 잔상을 기록하고 있는 주름진 시트는 어쩐지 낯설고 기이하다. / 그 안에는 내 몸의 흔적, 촉감, 기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 심지어 거짓과 금지된 것에 대한 동경까지도...




김효정_guided drea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3×53cm_2008



김효정_3a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0.6cm_2008


몸짓의 언어는 기억될 수 없어 순간적이고 허탈하다. / 그러나 시트의 주름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몸의 기억들을 되살려준다. / 외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지속되는 잔상처럼... // 주름은 우리 의식 저 너머 불가능한 장치 안에 있는 새로운 공간이다. / 몸짓으로 만들어진 주름은 접힘과 펼쳐짐을 반복하며 / 기이하고 추상적인,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으로 점철되어 진다.




김효정_enter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6×56cm_2007


낯익음 속에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몸짓. / 이 몸짓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기 속을 부유하며, / 내 무의식 속에 살아있는 감정의 리듬을 주름을 통해서 기록해 나간다. / 열망과 섬세한 떨림의 감성을 표현해 주는 신비로운 몸의 언어들을... // 난 주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 내가 쏟아내고 싶은 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 내 끓어오르는 열망의 완벽한 산화를 바란다. / 내 깊이 가라앉은 삶의 무게를 던져버릴 수 있길 바란다. ■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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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수展 / KIMJUSU / 金珠樹 / installation.drawing

2009_0304 ▶ 2009_0312



김주수_일기를 그리다 I-두번째피부_설치_가변크기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주수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DIGITAL KEPCO PLAZA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1층
Tel. +82.2.2105.8190
www.kepco.co.kr/plaza






일기를 그리다 - 상처 후 성장, '아브락사스' ● 성장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변화이지만 그것은 그저 자연스레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 즉 자아와 자기만의 세계를 깨는 고통이 뒤따른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고 썼다.




김주수_일기를 그리다 I-두번째피부_설치_가변크기_2008


자아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과 타자를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성장일 것이고, 이 성장은 흔적과 상처 자국을 남긴다. 어릴 적 생긴 흉터, 여드름 자국, 부모님의 얼굴을 떠오르게 하는 내 코와 눈썹, 웃어서 생긴 눈가의 주름이나 찡그려서 생긴 미간 주름 등이 개인사의 흔적으로 남게 된다. 지난 일기를 들춰 보듯, 내 얼굴과 몸의 자국들은 잊고 싶거나 잊고 지낸 과거를 떠오르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 흔적이 내 일부임을 인정하게 되고 점차 그것을 의식조차 하기 힘들어지겠지만, 그건 언제나 성장통을 겪고 난 다음의 일이다. 자아라는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은 내가 홀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데서 생겨나기도 한다. 즉 나에 대한 포기, 나라는 강하고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포기이다. 나는 내게 상처를 주는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인 것이 아니다. 나는 너에 의해, 그에 의해, 그녀를 위해, 그들의 시선 아래에서, 그와 함께함으로, 그들의 보살핌과 도움, 그들과의 다툼과 갈등을 거친 후에, 그제서야 나는 내가 되는 것이다.




김주수_일기를 그리다 I-거울속_설치_가변크기_2008



김주수_기억 속 걷기 I_29×12×6cm_2008


내 사고에 균열을 가져오고 홈을 파고 그 틈새를 벌리고 결국은 자국을 남기는 것, 내 얼굴에 주름과 흉터를 만드는 것, 그것은 이제 과거가 되어 버린 사건들 - 사랑과 상실과 실패와 환희의 순간들 - 일 것이다. 타자의 흔적으로 가득 찬 일기는 내가 영원한 성장 중에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평면 드로잉 작업을 설치 작업으로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고민이 때늦은 여드름이 되어 얼굴에 솟아올랐고, 그 여드름이 사라질 때쯤 작업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는 작가의 경험은 이 작품들 속에 흉터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과거의 기억, 스쳐간 타자들, 작업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표현하고 있는 김주수의 작품은 오랫동안 혼자임을 고집했던 한 인간의 고통스런 비명이었다가, 점점 '나는 타자이다je est un autre'라는 랭보 식의 환대와 열림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타자를 내포한 균열된 자아는 얼마든지 다중의 의미를 동시에 긍정할 수 있다. 김주수는 전시 계획안에서 사람들마다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레이스 천으로 얼굴을 만들어서 뒷배경에 따라 그 얼굴이 다른 색과 모습을 가지도록 의도했고, 부동의 완결체가 아니라 움직이면서 각도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덧칠되고 변형되도록 작업했다.




김주수_일기를 그리다 I_설치_가변크기_2008_부분



김주수_두번째 피부_종이에 연필_25×35cm_2008


이 작업의 결과는 자연히 삶과 죽음, 저주와 축복, 참과 거짓, 빛과 어둠, 수동과 능동, 자아와 비자아 등 양극적인 것을 포괄하는 신성인 아브락사스를 떠오르게 한다. 상처와 균열을 경험한 작가가 도달한 세계의 전체성과 유기성의 차원에 대한 사색은 작가의 작업 테크닉art일까, 아니면 작가가 마련한 인생의 기술art일까? ■ 신지은




김주수_일기를 그리다 I_설치_가변크기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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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된 풍경-SEQUENCE

함수연展 / HAMSOOYUN / 咸受延 / painting

2009_0304 ▶ 2009_0313



함수연_아는 사람의 집에서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 070623f | 함수연 회화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3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김진혜 갤러리_Kim.jinhye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2,3층
Tel. +82.2.725.6751
www.kimjinhyegallery.com






함수연 회화전 : 연속된 풍경-SEQUENCE ● 유독 이야기가 들리는 그림이 있다. 가만가만 읊조리는 이야기. 그것은 바람에 몸을 맡긴 연둣빛 잎사귀들이 서로를 부딪치며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입술이 아닌 눈으로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하며, 세상을 비치는 조그만 창문이 하얗게 단장한 캔버스를 향해 비밀스레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 함수연은 자신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 이야기들을 우연처럼 맞이한 색을 빌어 화면에 펼쳐놓는다. ● 화면을 물들인 색은 고요하지만 차갑지 않은 정서를 자아낸다. 그것은 특별한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연상시키기 위한 색은 아니다. 화면 속 형상들 또한 작가의 차분하고도 집요한 시선을 담고 있긴 하지만 감상적이거나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는 드러내는 대신 그저 보여줄 뿐이다.




함수연_일요일, 이웃의 방에서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8



함수연_일요일, 이웃의 방에서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8


자신의 삶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미지들을 가장 간결하고 담담한 방식으로. 작가가 보여주는 연속된 풍경이란, 사실적인 풍경과 얼마나 닮았는가의 표면적인 방식을 넘어 한 사람의 고유한 시선을 밀도 있게 표현하는 재현의 문제로 귀결된다. ●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실내에서 내다보는 실외풍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창가에 선 작가는 익숙한 일상의 풍경들을 관찰한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특유의 낯선 시선으로. 생명력 넘치는 연둣빛 나뭇잎으로부터 시작된 시선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어딘가를 망연히 응시하는 사람들에게로, 사람들이 잠시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로, 자동차 옆 반듯하게 솟은 건물로, 건물 앞을 산책하는 이웃의 얼굴로 그리고 종내 작가 자신에게로 향한다.




함수연_225호에서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8



함수연_225호에서_캔버스에 유채_91×73cm_2008


작가의 눈에 담긴 일상의 풍경들은 화면에 옮겨지며 어딘지 모르게 현실에서 부유하는 듯한 장면으로 연속된다. ● 바라건대, 작가의 그림 앞에 서면 우선은 모든 판단과 평가를 유보한 채 팔, 다리를 쭉 늘어뜨리고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있는 어떤 것이 나지막이 건네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여주길. 어쩌면 그 작고도 사소한 시도로 오래 전 당신이 잃어버린 계절과 낮잠, 시와 나무 혹은 선물처럼 다가오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 홍희정




함수연_토요일_캔버스에 유채_50×72.7cm_2008



함수연_토요일_캔버스에 유채_80×116.7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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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정남녀

변윤희展 / BYUNYOONHEE / 邊允希 / painting

2009_0304 ▶ 2009_0317



변윤희_열혈남아_장지에 혼합재료_130×324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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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3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올_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2층
Tel. +83.2.739.1405~6
www.gallerydoll.com






일정한 규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원초적인 욕구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소 불편한 소재거리가 되어 왔다. 더욱이 윤리와 통념이 강조되는 사회일수록 자제하지 못하는 식욕이나 섹스와 같은 욕구들은 불온하게 여겨지며, 여기에 가해지는 제약이나 은폐 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상에서의 표현의 영역은 윤리나 통념에 의한 자기검열로 이어지는 구조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지난해에 ‘식욕스트레스’란 제목의 전시를 통해서 현대인들이 겪는 불안과 과도한 경쟁관계에 놓인 상황을 식욕에 빗대어 보여준 바 있다.




변윤희_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_장지에 혼합재료_112×324cm_2008



변윤희_5242소_장지에 혼합재료_53×45cm_2008


『욕정남녀』전은 『식욕스트레스』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전시이다. 여기에 출품될 작품들은 일상 속에 잠재된 성적인 욕구를 과장 또는,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를 통해 인간의 욕구가 억압으로 인해 왜곡되는 구조를 드러내고 나아가 이미지적인 상상력의 폭을 확장하고자한다.




변윤희_이러다 죽겠어요_장지에 혼합재료_91×73cm_2008



변윤희_나를 자신 있게 하는 건 자동차 그리고 이것입니다_장지에 혼합재료_106×160cm_2008



변윤희_가지밭 情人_장지에 혼합재료_160×55cm_2009


표현 방법은 한국화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 온 원색계열의 색과 채색의 농담(濃淡)이 혼용될 것이다. 또한 데포르마숑이 도입된 다양한 군상들에 각각의 이야기와 표정이 더해져서 대중들과 좀 더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가고자 한다. ■ 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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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노리 요코오展 / TADANORI YOKOO / 横尾忠則 / painting

2009_0304 ▶ 2009_0412 / 월요일 휴관



타다노리 요코오_A Dark Night's Flashing-Double Darkness_캔버스에 유채_162.1×227.3cm_2001




초대일시_2009_03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화~일요일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서울_ARARIO SEOUL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9-2번지
Tel. +82.2.723.6190
www.ararioseoul.com






1960년대 전 후 일본 팝 문화의 선두주자로서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회화, 광고, 영화, 디지털 아트 등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는 거장 타다노리 요코오(74)의 개인전을 아라리오 서울에서 선보인다. ‘일본의 앤디 워홀’ 이라고 불리는 요코오는 현재 활동하는 J- Pop 아티스트들의 모태로서 일본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조명 받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기존에 국내에서 소개된 바 있는 1970년대 전후의 포스터 작품들을 비롯하여 2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Y- Junction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재료와 소재를 통해 작가의 지치지 않는 상상력과 열정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 ● 요코오와 같이 패전국의 젊은이로 교육받은 1930년대 생들은 구시대의 일본적 가치관과 패전 후 몰려든 미국적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했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일본의 GNP는 고도경제성장을 통해 미국에 이어 제 2위가 되었다.




타다노리 요코오_A Dark Night's Flashing-From the Red Darkness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259cm_2001


청년 요쿄오는 이러한 일본의 시대성을 반영하는 혁신적인 포스터를 선보였으며 196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말과 이미지』展에 전시 되었던 요코오의 포스터들은 시대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팝 아티스트라는 환호를 얻어냈다. 이후 요코오의 포스터는 핀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중국 등의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와 수많은 전시들을 통하여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 1974년 산타나 (Santana)의 앨범「Lotus」, 1977년 비틀즈의 앨범「Star Club」등의 커버를 디자인 하며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떨쳤다. 1980년대부터는 유화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따른 신비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의 유화 작업들은 최근 2006년 파리의 까르티에 재단에서 소개된 바 있다. ● 이번 전시의 주가 되는 「Y Junction」시리즈는 이전의 포스터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회화 그룹으로 작가가 최근 가장 다양한 연구와 변화의 노력을 쏟은 작품 군이다.




타다노리 요코오_Red Vap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1cm_2002


작가의 이름 Yokoo 의 앞 글자를 딴,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작품 시리즈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이 작업은 현대사회를 사는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풍경을 담고 있다. 햇볕이나 노을과 같은 자연의 빛이 아닌 가로등이나 형광간판, 자동차 헤드라이트 등의 가공적 조명을 받은 골목 풍경은 타다노리 특유의 반-자연적인 색감으로 덮여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뒷골목의 풍경들, 그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도 오묘하고 신비한 가공적 공간으로 변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타다노리 요코오_Colorless Mi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1cm_2002


타다노리는 1995년 일본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수여되는 마이니치 예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7년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금상 (이후 2000년도에는 아트 디렉터스 클럽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여 월트 디즈니, 앤디 워홀과 같은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02년 체코 국제 그래픽 디자인 비엔날레 특별상, 2005년 핀란드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그랑프리, 2006년 일본문화디자인 그랑프리 등 다수의 명예를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폴 게티 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등 전세계 주요 미술기관 80여 곳에 소장되어 있다. ■ 아라리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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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 RETURNS

미술작품 속으로 뛰어든 만화 속 영웅 모음展

2009_0305 ▶ 2009_0321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_2009_0305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석_김명화_성태진_위영일_이철현_찰스장_한상윤_현태준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빛갤러리_VIT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76번지 인곡빌딩 B1
Tel. +82.2.720.2250
Vitgallery.com






난세를 구할 영웅은 누구인가? ● 전 지구적인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여기저기서 힘들다고들 아우성입니다. 이럴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이 난국을 극적으로 수습해줄 영웅과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면 언제나 사람들은 영웅을 간절히 찾게 되는데 이따금씩 영웅을 자처하며 난국을 수습해보겠다고 나서는 자 없지 않지만 세상은 쉽게 평온과 안녕을 되찾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만나지 못한 영웅들을 대신해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만화 속에서 뛰고 날던 영웅들을 상상하며 아쉬움을 달래게 됩니다.




김명화_untitled



김석_hero_series



성태진_분향미래일자



위영일_고뇌하는 짬뽕맨


울트라 슈퍼 맨 & 우먼 & 로봇들의 귀환 ● 요즘 들어 만화장르의 미술장르로의 편입이 가속화 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술계에 견고하게 존재해왔던 장르간의 벽이라는 것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만화 속 슈퍼 영웅들과 초강력 로봇들이 미술작품 속에 대거 등장하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 못해 이채롭기까지 합니다. ● 주지하듯이 만화장르의 미술장르로의 급속한 편입이 경계가 허물어져 가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만화 속 슈퍼 영웅들과 초강력 로봇들의 귀환은 요즘 같은 위기의 시대 속에서 난세를 구해줄 영웅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 인간심리의 무의식적인 반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이철현_SuperstarⅡ



한상윤_배통맨(배트맨+루이비통)



현태준_우주소년아~~리아리랑


너무나 인간적인 영웅 혹은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 ●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미술작품 속으로 뛰어든 만화 속 영웅들이 그동안 우리가 기억하며 상상해 왔던 절대 영웅의 모습이 아닌 매우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특별히 2000년대 이후 한국적 팝아트 작가들로 불리면서 만화적 소재와 감성을 미술작품 속에 담아온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슈퍼 영웅들과 초강력 로봇들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강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초인적인 영웅들의 모습이 아닌 인간과 마찬가지로 욕망하며 고뇌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통해 만화 속 슈퍼 영웅들과 초강력 로봇들은 어쩌면 인간을 구원해 줄 초월적인 어떤 신적 존재라기보다는 고뇌하는 인간의 그림자요 욕망하는 인간의 심리적 투영물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렇듯 시대상황과 인간심리의 상관관계 속에서 귀환하고 있는 영웅들의 모습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 이번 전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거 미술작품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만화 속 슈퍼 영웅들과 초강력 로봇들을 중심으로 만화적 소재와 감성에 푹 빠져 있는 한국적 팝아트의 한 양상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주요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만화와 미술의 경계 허물기, 그 회고와 전망이라는 관점에서 펼쳐보고자 합니다. 또한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벌어지고 있는 혼란과 어려움을 해결해 줄 영웅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진정한 영웅은 어떤 존재인지 혹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는 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 주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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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ing on the Flat

송명진展 / SONGMYUNGJIN / 宋明眞 / painting

2009_0305 ▶ 2009_0405 / 월요일 휴관



송명진_Soft monument 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3×162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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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305_목요일_05:00pm

성곡미술관 2008 내일의 작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_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경계에 위치한 회화 ● 송명진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식물/동물, 자연/인공, 멈춤/움직임, 평면/입체 등 끊임없이 경계선 상에서 모호하게 서 있는 것을 즐긴다”고 하였다. 사실 작가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최근 일련의 연작들에서 잘 드러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연기의 움직임에서 순간적인 형태를 포착함으로써 움직임과 정지의 중간단계에 서 있고자 했으며, 그 형태조차도 유연한 기체나 액체의 형태가 아니라 매우 견고하고 딱딱한 조각적인 형태를 취하게 함으로써 기체, 액체, 고체의 물질성의 경계에 머물고자 하였다. 그녀의 잔디나 나무는 작가의 표현처럼 극악스러운 동물성을 드러내며 식물과 동물의 중간에 머무르고자 하고, 역으로 동물들, 특히 인간들의 형상은 진화의 초기 단계로 후퇴하여 기능이 분화하기 전의 형태, 즉 식물적인 단순한 손가락 인간들로 퇴행한다. 그리고 그녀의 풍경들은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동시에 공존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강한 폭풍이 휘몰아치는 험한 원시림이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전혀 다른 우주 속의 자연을 연상케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식할 듯이 엄격한 규칙에 종속된 인공적 풍경처럼 드러난다. 그러면서 자연은 인공에게 그 자연성을 제공하고 역으로 인공은 자연에 그 인공성을 빌려줌으로써 자연은 더 이상 주어진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고, 인공물 역시 그 본래의 유용성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기괴한 형상으로 변모한다. 그녀가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천착하고자 한 평면성과 이미지의 관계에서도 무한 공간의 상징으로서 우주적 질서를 내포한 단일한 색조의 평면, 즉 아플라와 그 아플라로부터 분할하거나 폭발하듯이 솟아나는 또 다른 평면이 무한한 공간감과 함께 극히 얇은 표면성을 공유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눈도 마치 적록 색맹에 걸린 것처럼 색채의 혼합과 혼란을 극도로 회피하고 모노크롬의 세계로 흡수되기 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에 적과 녹은 이제 거의 구분이 필요 없는 상태이다. ●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모든 작품들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그 현란한 변화가 극치에 이르렀다. 이제 그녀 나름대로의 상징적 체계가 그 폭과 깊이를 한층 더하여 우리를 오묘한 상징의 숲 한 가운데로 인도해주는 것 같다.




송명진_Duck's cros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3×363.6cm_2008


모든 예술의 기본은 낯설게 하기 속에 들어 있다.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허무맹랑해 보이는 아라비안나이트가 그렇게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작이란 한 예술가의 독특한 세계관이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조립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 시선이 포착하는 세계는 예술가의 상상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을 겪는다. 그러한 변형 작업을 통해서 렘브란트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고호의 세계가 만들어지며 세잔느나 피카소의 전혀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독특한 시선을 가진 예술가들 덕분에 자신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하나 더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에는 일종의 무언의 계약이 체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한 작가의 세계관을 용납해주고 거기에 잠시 거주한다는 것이다. ● 송명진은 일찌감치 이러한 낯설게 하기 수법의 필연성과, 그에 따른 작가와 관객 사이의 무언의 예술적 계약 관계를 파악하였다. 그래서 초창기의 작품부터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파악하기 위한 격한 몸부림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녀는 맹목적인 낯설게 하기가 자신의 그림들을 너무 거칠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한 수법의 상투적 남용은 자칫 기괴함이나 무의식 세계의 탐사, 동화적인 상상 세계, 꿈과 같은 허무맹랑한 세계 속으로 안주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다시 피상적으로 초현실주의를 답습하도록 할 위험이 있다.




송명진_a foolish step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227.3cm_2008


송명진 회화의 최근 전개 과정을 보면 그녀가 피상적인 낯설게 하기 수법을 벗어나 이제는 일관되게 자신과 회화와의 관계, 더 나아가서 회화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고심하고 있으며 그 문제를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찰의 단계에까지 끌어올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바탕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만을 주기를 원치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어떤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만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그녀가 손가락 인간들의 역사를 우스꽝스러운 바보짓으로 기술하였다고 해서 그 서술적 기능만을 읽어내려고 하는 것은 그녀의 회화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회화 속에서 철학적 메시지란 결국 사물을 마음으로부터 다르게 보기 위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진정으로 그 낯선 모습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을 주어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 즉 경계선 상에 위치한 눈으로 보게 되면 사물들이 가지는 거대한 은유의 세계가 드러나게 되며 숨겨진 새로운 의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송명진의 회화는 바로 이 독특한 은유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 곳에서 사물들은 공통의 것을 교환하고 다름을 더욱 다르게 한다. ■ 성곡미술관




송명진_a foolish step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181.8cm_2008


그림 속 그림에 대한 이야기, 혹은 어떻게 다른 차원의 회화적 문제들이 결합하는가?1. 짧은 리뷰 ● 기억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지난 2005년 송명진의 금호미술관 개인전, 『풍경의 표면』에 붙인 서문에서, 이 작가의 당시 그림들을 그린버그식 형식주의 미술(Greenbergian Formalism)에 ‘샛길’을 내는 젊은 세대 회화 중 한 시도로 분석했다. 요컨대 그때의 송명진 그림은 모더니즘 미술 문법이 회화의 본질적 속성으로 정의한 ‘평면성(flatness)’을 다루되, 고도의 추상이나 물질성이 아니라 관객의 사고를 자극하는 모호한 형상을 통해서 단색의 평면을 강화하거나 간섭함으로써, 그 회화적 조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한다고 본 것이다. 예컨대 전체가 불투명 녹색(‘opaque oxide of chromium’)으로 칠해진 화면에, 마치 그 화면을 잘라 뒤로 젖혀놓은 것 같이 보이는 면(面)들을 그린 그림이 있다.(「some trace Ⅳ」) 여기서 그녀의 그림은, 형상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면’이라는 회화적 정체성을 개념적으로 의식한 것이었다. 부득불 주종관계로 이를 표현하자면, ‘회화의 평면성’이라는 것이 주(主)-개념이고 ‘묘사된 형상’은 종(從)-모티브가 되면서, 그림의 ‘부분 요소’인 형상이 그림의 지적 차원과 감각적 차원 모두를 포괄한 ‘전체 구성’에 기여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송명진의 그림은 좀 다른 방향으로 변화했다. ●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그림들에서는 형상의 묘사 또는 이미지로 묘사된 사건이 주를 이루고, 회화의 평면성을 문제시하는 개념적 차원은 뒤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시기의 송명진 그림이 더 좋고 나쁜지에 대한 평가를 하고자 이러한 분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림이란 그것을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들의 구성이라 할 때, 한 작가의 회화가 각 시기마다 어떤 변별점을 갖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어 서다. 나는 송명진의 2006-2007년 그림들은 그림 속 이야기의 내용이 많아지고, 대신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메타 개념(meta concept)은 약화됐다고 본다. 후자의 약화에서 결정적 요인이 역설적이게도 전자, 즉 ‘그림 속 사건을 묘사하는 디테일 이미지의 매력’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말하자면 감상자의 입장에서 이 시기 그림들은, 그림을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그림 속 이미지’에서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는, 그런 디테일로 채워진 그림으로서 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이즈음부터 그녀의 작품에, ‘그림 속 세상의 행위자’로 등장한 가상의 캐릭터가 한몫했을 것이다. 엉덩이와 다리로 이뤄진 하체만 있는 인간처럼 보이는 이 캐릭터를 작가는 ‘손가락 인간’이라 부르는데, 말하자면 송명진의 그림은 이 우둔하고 이상하게 생긴 생명체들의 좌충우돌 생활기를―물론 작가가 지어낸 그림 속 삶의 우화(寓話, allegory)로서―만화경처럼 보여주는 장(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손가락 인간 캐릭터와 그들의 공상적 세계가 디테일하게 화면의 매력적인 이미지로 풀리는 가운데, 송명진의 작품들에서 ‘회화’에 대한 메타적 차원의 주제들, 개념적 사고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송명진_a foolish step 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59cm_2009


2. 액자 구조, 메타 내러티브의 디테일 ● 그렇다고 작가 송명진이 자신의 미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회화의 구조적 조건을 개념적으로 떠안고 가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는 첫째, 작가의 초창기 작업에서부터 그 개념적 측면이 형상과 더불어 해결될 기미를 보인다는 데 큰 흥미와 기대를 가졌기 때문에 앞서와 같은 맥락의 변화를 언급했다. 둘째,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고, 이번 성곡미술관 전시에 선보일 새로운 그녀의 그림들에서 다시 한 번 ‘평면성과 삽화적 이미지의 결합/결합불가능성’의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그 점에서 송명진 스스로가 여전히 이 주제를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때문에 우리 또한 여전히 이 논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송명진의 작품이 또 다르게 변화의 양상을 보여준 만큼,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겠지만. ● ‘그림 속에서 삽화적 디테일이 무엇으로 작용하는가, 단순한 볼거리인가? 아니면 한 눈에 파악하기에는 쉽지 않은 작품의 개념적 성격을 알레고리적으로 전달하는 형상들인가?’가 이제부터 우리가 보려고 하는 송명진의 최근작에 대한 비평 포인트이다. 핵심을 먼저 말하자면, 이 그림들에서는 ‘평면’이라는 회화의 물리적 조건이 그림 내부 이야기의 차원과 동시에 그림 외부 메타 개념의 차원에 두루 관여한다. 이를테면 여전히 송명진의 그림은 예의 ‘손가락 인간’이 등장하는 우화처럼 보이는데, 그 알레고리가 지시하는 의미가 ‘회화 일반’ 또는 좁혀서 ‘모더니즘 미술이 정의한 회화’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회화란 2차원 평면에 물감과 붓(또는 그 밖의 질료와 도구)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 또는 그러한 행위의 결과물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청각이나 촉각 같은 감각보다는 시각이 우선시된다. 달리 말해서 회화는 소리가 없고, 만질 수 없으며, 오로지 평평한 표면 위에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일반적 조건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게다가 그린버그가 모더니스트 회화에서 터부시한 ‘환영을 유발하는 재현 형상’과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는 회화 바깥에서 회화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달리 말해서, 메타 크리틱(meta critic)할 수 있을까? ● 송명진이 구축한 해법은 ‘액자 구조’이다. 그림 속에서 펼쳐지는 우화의 내용이 곧 ‘회화(일반)에 대한 논평’이 되고, 그 논평이 ‘말’이 아닌 ‘화면 자체의 이미지’로 구현되는 이 그림들은, 다름 아닌 액자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는 액자구조는 가시적으로 그림 속에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고, 우리가 그림의 주제를 이해하려 할 때 내용상의 의미에서이다. 이 구조가 바로, 송명진의 지난 2006-2007년 그림들과 이후 현재까지 그린 그림들을 분리시키는 계기인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전자에서 누릴 수 있는 시각적 만족과는 다른, ‘우화적 이미지를 통한 지적 유희의 가능성’을 후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인이다. 작품을 보며 이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하자.




송명진_Two person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648cm_2008_부분


3. 알레고리의 디테일과 평면 회화의 원칙 ● 「a foolish step 1」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처음 보면,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담하게 화면의 거의 8할 정도에 걸쳐 칠해진 녹색의 평면에 눈이 갈 것이다. 그런데 이 면은 실제 캔버스 자체의 2차원 공간인 동시에, 그림 속에 묘사된 내용으로서 녹색종이 갈피들이 허공에 그물 같이 매달려있어 보이는 3차원 공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림 윗부분에서는 색면회화(color field painting)처럼 단지 녹색으로 칠해진 면들이 점차 화면 아래로 내려오면서는 재현된 사물, 즉 성긴 녹색종이 벽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라고 말할 수 없이, 이 그림에서 실제 물리적 공간은 가상의 이미지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송명진의 「...step 1」은 그림에 이미 주어진 조건으로서 현실의 캔버스가 가진 2차원 공간성을 자기 지시하면서, 그 순간 또 다르게 3차원처럼 재현된 공간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이 그림에는 회화(일반)에 대한 논평이 그림 속 알레고리로 곳곳에 현상돼 있다. 예를 들면 녹색종이 쪽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캔버스의 흰색 바탕 위에, ‘드로잉 선’을 연상시키는 흔적을 그려 넣은 것이 그렇다. 또 모더니즘 회화가 작가의 현존이자 그림의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으로 숭배했던 ‘붓질(brushstroke)’, 그 붓질을 패러디한 하단의 우화적 형상들이 그렇다. 짧은 붓 터치 모양을 한 그것들은 바야흐로 녹색종이 그물 벽에서 카드 정도 크기의 그 종이들을 떼어 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인데, 이는 분명 그림이 그려진 얇은 이미지의 표피를 제거하고 액면 그대로의 캔버스를 드러내려는 작가 의도가 투사된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내가 말한 송명진의 ‘액자 구조’는 그림 속에 묘사된 형상들의 디테일이, 바로 메타 차원에서 ‘회화의 정체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창작 행위가 되는 ‘이미지-개념 결합방식’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이 「Two Persons」나 「a foolish step 2」, 「Passing through」에서도 반복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느 것에는 우화의 성격과 디테일한 사물의 묘사 정도가 더 짙고, 어떤 것에서는 모더니즘 회화 문법에 대한 코멘트의 성격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 이상에서 논한 내용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회화의 조건을 문제시한 그림들이 「Soft monument 1-5」 연작이다. 여기서 중점적인 문제는 앞서와 같은 ‘회화 공간’의 차원이 아니라, 회화에서 주변적이거나 취약한 감각인 ‘촉각’이다. 작가가 자신의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길에 마주치게 되는 벽제 지역의 석재 공장 앞에 전시된 기념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이 그림의 주요 모티브는 다름 아닌 기이한 형태의 돌조각이다. 분명히 좌대 위에 번듯하게 올라 있으니 ‘조각’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이 형상들은 생기다만듯한 모습이고, 보는 이가 거의 본능적으로 피부에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만큼 물컹하고 푹신해 보인다. 쭈글쭈글한 뇌같이도 보이고, 혀가 구부러져 꽁꽁 매져 있는 것으로도 보이며, 토끼처럼 긴 귀를 여러 개 가진 머리와 엉덩이가 맞붙어 있는 괴생물체처럼도 보이는 이 일련의 그림들이 감상자에게 주는 느낌은 분명 시각을 통해 전달됨에도 불구하고 매우 촉각적인 것이다. 마치 눈으로 캔버스의 표면을 더듬을 수 있다는 듯이, 혹은 어루만져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부드러운 기념비’들이 그려진 그림들에서, 시각 중심의 회화라는 고정 관념은 다시 한 번 그 전제를 의심받으며 우리 감상자의 의식 뒤로 물러난다. ● 다른 한편 여기서도 우리는 앞서 논한 그림들과 마찬가지의 액자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이 시리즈의 그림에서 시각만이 아니라 시각이 곧 촉각과 연결되는 회화의 조건을 우리는 그림을 보며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림 속에서 펼쳐지는 우화적 형상들의 행위 또한 시각이 촉각적으로 ‘경험’되고, 촉각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감각에 대해 은유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감상자는 그림 앞에서 부지불식간에 ‘느끼는’ 것이다. 특히 「Soft monument 3」이 그러한데, 여기서 예의 ‘손가락 인간들’은 하얗고 가는 실로 좌대 위의 부드러운 기념비를 꽁꽁 묶는 기이한 행동을 연출함으로써, 그 재현된 기념비가 부드럽고 푹신푹신하다는 점을 감상자에게 인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송명진_Passing throug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3×363.6cm_2008


이상과 같이 송명진의 최근 그림들을 둘러보건대, 우리는 이 작가가 다시 한 번, 그러나 초기의 방법론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회화에 대한 메타 내러티브와 삽화적 이미지’를 관계 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명진은 얼핏 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림 내부의 이야기’와 ‘회화(일반)에 대한 메타 이야기’라는 다른 차원의 두 문제를 연결시키기 때문에 복잡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결합을 통해, 커다란 회화세계에 자기만의 그림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 그 과정은 내가 보기에 우화에 경사된 표현과 디테일 이미지로 평범해지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또 어떤 그림은 디테일이 주는 시각적 재미와 매력이 보다 강해서, 감상자가 다른 어떤 생각, 이를테면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구성이라든가, 그림의 요소라든가, 시청각적 경험에 대해 반추할 계기를 갖기 힘들게 한다. 물론 그림의 성공적인 디테일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바르트(R. Barthes)가 『작가 솔레르스 Sollers écrivain』에서 “경이는 환희의 수줍은 시작”이라 쓴 말은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전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송명진의 최근작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 감상의 환희는 우리가 그림의 여러 차원들을 읽고, 의미를 꿰고, 구조를 재구성할 수 있는 터전(이미지의 표면) 위에서 이루어질 때 보다 풍요롭고 충만한 것이 된다. 문학작품을 읽으며 눈에 보이듯 장면을 떠올리고, 상상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와중에 세계를 경험해 가듯이. ■ 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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